기업 밸류업 어려운 첫 단추...인센티브만 제공하고 기업자율로
기업 밸류업 어려운 첫 단추...인센티브만 제공하고 기업자율로
  • 고수아 기자
  • 승인 2024.02.26 20:15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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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 밸류업 1차 세미나 개최 및 발표
모든 상장사 대상, 강제성 없이 7월부터 자율공시
정부 긴 호흡, 중장기적 과제 추진
추가적 지원방안, 기업 참여 관심
26일 오전 서울 여의도 한국거래소에서 열린 '한국 증시 도약을 위한 기업 밸류업 지원방안 1차 세미나'에서 이효섭 자본시장연구원 금융산업실장이 발표를 하고 있다. 사진=화이트페이퍼 

[화이트페이퍼=고수아 기자] 1306조원→2558조원, 1831개→2558개. 2013년에서 2023년 말 기준 한국 주식시장 시가총액과 상장기업수 변화다. 순위로는 현재 주요국 13위, 7위에 해당한다. 하지만 코스피는 2011년 이후 2024년 1월 말까지 총 21.7% 오르는 데 그쳤다.

그간 시장의 큰 기대를 모았던 정부의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이 인센티브를 제공하고 시장 자율에 맡기는 방향으로 베일을 벗었다. 다만 이날 발표 첫날 시장 반응은 '기대 이하'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성패는 후속 대책과 실질적인 기업 참여가 가를 전망이다. 

■ 상장사 자율 공시, 우등생 ETF 출시

금융위원회는 26일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 관련 1차 세미나를 열고 세부방안을 공개했다. 세부안은 ▶상장기업의 자발적 기업가치 제고 ▶투자자의 시장평가 및 투자 유도▶거래소와 유관기관의 밸류업 지원체계 구축 등 크게 3개 축을 골자로 한다. 

정부가 제시한 기본방향은 상장사가 스스로 중장기적 관점에서 각 사에 적합한 '기업가치 제고 계획'을 이사회가 중심이 돼 수립·이행하는 것이다. 기업가치 제고 계획에는 '현황 진단→목표 설정→계획 수립→이행 평가→투자자 소통'과 관련한 내용이 담길 전망이다. 

공시 대상은 상장기업 전체(작년 말 기준 코스피 809곳, 코스닥 1598곳)다. 연 1회 공시를 기본으로 2년차부터는 전년도 계획과 이행 평가를 포함한다. 공시 원칙과 내용, 방법 등의 최종 가이드라인은 오는 5월 2차 세미나를 거쳐 6월 확정·발표한다.

상장사들은 이를 참고해 하반기부터 자율 공시에 나서게 된다. 밸류업 과정을 각 사 홈페이지에 공표하고 거래소에 자율 공시하게 된다. 준비된 기업들은 오는 7월부터 참여할 수 있다. 정부는 인센티브로 기업가치 제고 '우등생'을 선정하고, 세제지원을 제공할 방침이다. 

자료=한국거래소 

이처럼 기업가치 제고 계획 관련 공시는 의무가 아닌 권고사항이다. 그 대신 세제지원, 우수기업 표창, IR 등 다양한 인센티브를 통해 기업의 자발적 행동 변화를 유도한다는 것이 핵심이다.

세제지원은 매년 5월 기업가치 우수기업 10여곳을 선정해 밸류업 표창을 수여한다. 이들에게는 모범납세자 선정 우대, 연구개발(R&D) 세액공제 사전심사 우대, 법인세 공제·감면 컨설팅 우대, 부가·법인세 경정청구 우대, 가업승계 컨설팅 등 5종 세정지원이 주어진다. 

김소영 금융위 부위원장은 같은 날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브리핑에서 "인센티브가 풍부한 대신 패널티가 하나도 없다는 게 일본판 '밸류업 프로그램'와 크게 다른 점"이라며 "대상은 코스피와 코스닥 모두로 설정했지만 진정성이 중요하기 때문에 당장 여력 안 되는 기업들은 참여 안 해도 된다"고 밝혔다. 

26일 세미나에서 정지헌 한국거래소 유가증권시장본부 상무가 기업 밸류업 지원방안을 발표하고 있다. 
26일 세미나에서 정지헌 한국거래소 유가증권시장본부 상무가 기업 밸류업 지원방안을 발표하고 있다. 사진=화이트페이퍼

다른 큰 축은 투자자를 지원하는 것이다. 지속적 수익창출과 주주환원을 통한 기업가치 성장이 예상되는 상장사들로 구성된 '코리아 밸류업 지수'를 오는 9월 개발해 기관·외국인 투자자들이 벤치마크 지표로 활용하게 된다. 이른바 '우등생' 종목을 편입한다. 

또 이 지수를 추종하는 상장지수펀드(ETF)도 오는 12월 출시·상장돼 일반투자자들도 투자할 수 있게 된다. 분기별로 각 기업의 주요 투자지표(PBR·PER·ROE)를 거래소 홈페이지에 비교 공표하는 내용도 담겼다. 

연기금 등 기관투자자의 투자판단에도 기업가치 제고 노력을 감안하도록 스튜어드십 코드에 반영하고, 거래소 내 전담부서와 외부 자문단을 구성해 중견·중소기업 등의 밸류업을 지원한다. 정보공개를 위한 밸류업 통합 홈페이지도 개설될 예정이다.  

■ '밸류업 선배' 일본과 차별화 내세워 

이 같은 한국의 밸류업 정책은 먼저 기업가치 제고 노력을 추진해온 일본과 비교했을 때 공통점과 차별점이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자료=이효섭 자본시장연구원 금융산업실장 발표(기업가치 제고 관련 해외사례 및 시사점) 일부

이효섭 자본시장연구원 금융산업실장은 "일본 정부는 일본 경제의 중장기 잠재성장률 제고를 위해 기업 수익성을 높이고 가계소득 증대를 도모하고자 10년에 걸쳐 기업가치 제고 노력을 추진해 왔다. 2023년 3월 동경증권거래소가 상장법인에 대해 '자본비용 및 주가를 의식한 경영 실현을 위한 대응' 공시를 사업보고서, 경영 전략, 자사 홈페이지 등에 자율 공시 방법으로 요청한 것이 대표적"이라고 설명했다. 

이 실장은 "자본효율성과 투자지표를 점검한 점, 중장기 수익성과 성장성 제고를 권고한 점, 자율공시를 유도한 점들은 공통점인 반면, 기업가치 제고와 관련한 다양한 공시 방법을 상세 가이드라인에 포함한 점, 패널티를 주기보다 세제 혜택 등 과감한 인센티브를 제시한 점, 한국형 밸류업 지수 출시를 통해 연기금의 참여를 적극 독려한 부분, 스튜어드십 코드 반영,  거래소 전담 지원 체계 제공이 상당한 차별점"이라고 말했다. 

■ 중장기 기대감 있지만…'맹탕' 대책 비판도... 증시 털썩   

다만, 정부가 발표한 세부안을 놓고 시장에서는 구체적인 지원안이 누락되면서 '맹탕'이라는 반응도 나오고 있다. 기업들이 밸류업 방안에 참여해야 하는 강제성이 전혀 없는 만큼 자발적 참여를 이끌어내기 위해선 그만큼 당근이 어떨지가 중요했기 때문이다. 

박소연 신영증권 연구원은 "시장에서 기대했던 것은 상법 개정 로드맵이나 자사주 소각 관련 법인세 혜택, 배당소득 분리 등의 구체성 있는 조치였으나 관련 제도 정비에 필요한 물리적 시간의 문제, 기업들의 반발, 세수 감소 등 문제가 복합적으로 영향을 미쳐 내용이 모두 제외됐다"고 밝혔다. 

이날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코스피 종가는 전날보다 20.62포인트(0.77%) 내린 2647.08로 집계됐다. 밸류업 프로그램 발표 직후에는 장중 2620선까지 밀리기도 했다. 

26일 오전 10시 37분 기준 코스피가 전장보다 27.87포인트 하락한 2639선을 가리키고 있다. 사진=화이트페이퍼 

패널토론에서도 참석자들이 밸류업 대책 방향성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분위기가 있었지만, 세부내용 일부는 강제성을 띄는 정책이나 더 강한 세제 지원이 필요하다는 제언 등이 나왔다.  

김두남 삼성자산운용 상무는 "결국 기업가치 제고 방안은 문화로써 자리 잡아야 된다는 생각인데, 이날 발표한 내용 그대로만 된다고 하면 저는 아무런 문제가 없을 것 같다"며 "일본 기업들이 공시한 내용들을 봐도 기업 가치제고 방안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기업 성장을 위한 어떤 계획을 가지고 있느냐가 더 주된 내용"이라고 말했다. 

김동양 NH투자증권 연구원도 "우리나라 밸류업 프로그램은 모든 상장사를 대상으로 하고, 밸류업 계획 공표 관련 가이드라인과 거래소에서의 지원을 약속하고 있어 참여율이 훨씬 높을 거라고 기대한다"고 말했다. 

다만 김 연구원은 "PBR 1배라든가 ROE 8% 등 어떤 저평가와 고평가의 경계선에 대한 기준을 명시적으로 제공하면 기업들이 밸류업 프로그램을 공표하고 이행 평가를 할 때 목표 설정 부분에서 상당히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한다"고 제언했다. 

이준서 동국대 경영학과 교수는 효과적인 주주환원책으로 자사주 매입 시 발행주식수가 아닌 유통주식수 기준으로 시가총액을 산정하는 제도개선의 필요성을 제안했다. 

이 교수는 "상속세·증여세 감면, 기관투자자 등의 장기투자 인센티브 부여, 기업 유휴자금 최소화 등을 위한 정책도 중요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이날 오전 정부서울청사에서 비상경제장관회의를 열고 "기업·투자자 등과 충분히 소통하며 '코리아 디스카운트'라는 단어가 없어질 때까지 구체적인 내용을 지속적이고 단계적으로 발전시켜 나가겠다"며 "기업가치 제고와 주주 환원 확대에 대한 다양한 세제지원 방안도 마련하겠다"고 전했다. 

김주현 금융위원장도 세미나 축사에서 "국민 여러분께서도 긴 호흡으로 기업 밸류업 지원방안을 지켜봐 주시고 성원해 주시길 당부 드린다"며 "정부도 세제 개선, 상법 개정 등 추가적인 지원방안을 마련해 나갈 계획"이라고 전했다. 

정의정 한국주식투자자연합회 대표는 "지난 수십년 개인투자자들은 황야에 방치됐는데, 만시지탄이지만 비정상의 정상화를 위한 첫 걸음"이라며 밸류업 정책 도입을 환영했다.

정 대표는 "주가 상승으로 기업가치가 올라가고 1400만 투자자들이 주식시장에서 수익을 낸다는 것은 국가 경제에도 도움이 되어 진정한 선진국으로 발돋움하는 초석이 될 것"이라며 "차제에 PBR 1.0 이하인 회사의 상속세 기준을 ‘시가’가 아닌 ‘순자산가치’로 변경하고, 배당소득에 대한 분리과세를 시행하면 박스피라는 어둠의 터널을 벗어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화이트페이퍼, WHITEPAP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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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아상존 2024-02-26 23:35:17
코리아디스카운트 이제 그 불행한 시대에 종말을 기하고 국민이 잘사는 나라를 만듭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