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안 괜찮다는데’...금융당국 탁상공론에 은행은 답답하다
[기자수첩] ‘안 괜찮다는데’...금융당국 탁상공론에 은행은 답답하다
  • 장하은 기자
  • 승인 2020.08.19 17:1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화이트페이퍼=장하은기자] 코로나발(發) 실물경제 위기가 쓰나미로 덮치는 가운데 ‘자의반 타의반’ 해결사로 최전방에 나선 곳은 은행권이다. 은행들은 지난 2월부터 대출 원금 및 이자 유예 조치를 통해 소상공인과 중소기업들의 유동성 위기를 극복하도록 돕고 있다. 유예 기한을 한 달여 앞둔 은행권은 금융당국의 무조건적인 ‘대출 재연장’ 압박에 말 못할 속앓이를 하고 있다.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 등 5대 시중은행이 올해 2월부터 이달 13일까지 만기를 연장해준 대출(재약정 포함) 잔액은 모두 35조792억원으로 집계됐다. 이와 더불어 은행은 대출 원금을 나눠 갚고 있던 기업의 '분할 납부액' 4조280억원도 받지 않고 미뤄줬고, 같은 기간 이자 308억원도 유예했다. 여러 형태로 납기가 연장된 대출과 이자 총액이 39조1380억원에 이르는 셈이다.

19일 한국인행이 발표한 ‘2분기 가계신용’ 통계를 보면 2분기 말 현재 가계신용잔액은 1637조3000억원으로 통계 작성을 시작한 2002년 4분기 이래 가장 많았다. 2002년 이전 가계신용 규모는 지금보다 훨씬 작았기 때문에 사상 최대 기록인 것. 가계신용은 가계가 은행·보험사·대부업체·공적 금융기관 등에서 받은 대출에 결제 전 카드 사용금액(판매신용)까지 더한 '포괄적 가계 빚(부채)'을 말한다.

신용대출 급증과 실물경제 하락 등 위기 대비를 위해 금융권은 충당금 쌓기에 돌입했다. 5대 금융지주는 올 상반기에만 2조6500여억원의 대손충당금을 적립했는데 이는 작년 동기 대비 2배 규모에 달하는 규모다. ‘코로나 대출’이 부실대출로 연결될 수 있다는 불안감이 그만큼 크다는 것을 방증하는 셈이다. 하지만 금융권은 부실대출이 현실화하면 이 마저도 턱없이 부족할 수밖에 없다고 보고 있다.

그럼에도 최근 금융당국은 대출 원금 만기 및 이자 유예를 한 차례 더 연장하라고 압박한다. 유예 기한이 한 달 앞으로 다가오자 은행을 향한 금융당국의 재연장 압박은 점차 노골적으로 변하고 있다.

금융권은 당국의 재연장 압박에 코로나19 장기화와 실물경제 어려움 등 국난을 함께 이겨내야 한다는 취지에는 공감하면서도 적지 않은 불만을 토로한다. 사실상 눈앞에 보이는 빙산의 일각만을 해결하기 급급하다는 지적이다.

그러면서도 금융권은 금융당국의 재연장 압박에 일조하는 분위기다. 앞서 지난달 24일 은성수 금융위원장과 5대 금융지주 수장들은 비공개 조찬 간담회를 가졌는데, 이 자리에서 은 위원장과 금융 수장들은 원금 만기 및 이자 유예 조치를 재연장하는 쪽으로 의견을 모았다.

‘NO'를 외칠 이유가 없어서가 아닌 'NO'를 외치기 어려운 자리였기 때문은 아니었을까하는 생각이 기자만의 상상은 아닌 듯싶다. 리스크관리 명목으로 당국에서 내려지는 압박을 무시할 수 있는 금융기관은 없을 것이라는 데에 다수 금융권 관계자들이 입을 모았다.

당국은 은행의 건전성 악화에 대한 우려에 ‘비 오는데 우산을 뺏지 말라’라는 식의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 특히 "이자 유예 재연장은 건전성 측면에서 위험한 조치"라는 은행 실무자들의 의견에 “은행의 건전성은 아직 괜찮다”는 태도를 유지하고 있다. 안 괜찮다고 외치는 현장과 그 현장에 대한 금융당국의 진단에서 오는 괴리, 현실을 고려하지 못하는 당국의 ‘탁상공론(卓上空論)’에 은행은 답답할 뿐이다.

익명을 요구한 금융권 관계자는 “코로나19 사태로 애초에 대출 대상에 포함되지 않는 대상들에도 여신지원이 됐다”라며 “마냥 계속해서 연장해 줄 수는 없는 노릇인데 이 기간이 끝난 이후 대출자들의 상환여력이 뒷받침 될 수 있을지가 핵심이지만 이는 실물경제가 아주 갑자기 좋아져야 가능한 시나리오”라고 말했다. 이어 “대출 원금·이자 유예 모두 재연장하는 방식은 코로나발 위기 해결을 은행에만 떠넘기는 무책임한 행위”라며 “은행 리스크관리에 위기가 오면 그건 그것대로 또 다른 압박이 올 것”이라고 꼬집었다.

화이트페이퍼, WHITEPAPER

관련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