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제사초(事齊事楚)’에 놓인 증권사, TRS 자금 선회수 할까
‘사제사초(事齊事楚)’에 놓인 증권사, TRS 자금 선회수 할까
  • 장하은 기자
  • 승인 2020.02.26 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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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의적 책임지려다 배임죄 적용될라...증권사, ‘사제사초(事齊事楚)’에 놓여
업계시각 “TRS 제공 증권사들, 결국 자금 선회수 할 것”
전문가들 "라임사태, 금융당국 책임도 없지 않은데...징계만이 해결은 아니다"
라임운용자산의 대규모 환매 중단 사태가 증권사들의 ‘총수익스와프(TRS)’ 자금 회수 설전으로 번지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라임운용자산의 대규모 환매 중단 사태가 증권사들의 ‘총수익스와프(TRS)’ 자금 회수 설전으로 번지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화이트페이퍼=장하은기자] 라임운용자산의 대규모 환매 중단 사태가 증권사들의 ‘총수익스와프(TRS)’ 자금 회수 설전으로 번지면서 이와 관련된 증권사들이 어려운 선택을 해야 하는 ‘사제사초(事齊事楚)’에 놓였다. 투자자들의 손실률을 줄이기 위해선 자금 회수를 하지 않아야 하지만, 자금 회수를 하지 않을 경우 TRS 계약 총책임자에 ‘업무상배임죄’라는 징계가 내려질 수 있기 때문이다.

라임펀드 피해 규모가 점점 불어나고 있는 가운데 판매사 공동대응단 내 몇몇 판매사는 현재 법원에 TRS 자금 재산보존(가압류)을 신청하는 방안을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일각에선 이번 사태가 애초에 관리감독을 제대로 하지 못한 금융당국에도 책임이 있다는 비판 의견도 나온다.

26일 업계에 따르면 최근 대신증권은 라임자산운용에 TRS 계약을 제공한 한국투자증권, KB증권, 신한금융투자에 투자 자금 선회수 중지를 요청하는 ‘내용증명’을 보냈다. 내용증명은 TRS 3사가 라임 펀드 정산분배금을 일반 고객들보다 우선 청구하지 말라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대신증권 관계자는 “TRS 증권사들이 자금 선회수에 나설 시 고객이 감당해야 할 손실률 규모가 늘어날 것을 우려해 내용증명을 전달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3사는 아직까지 내용증명 회신을 하지 않았다. 내용증명은 회신해야 할 의무가 없는데다, TRS 자금 회수와 관련해선 회사 내부에서 아직 논의단계에 있기 때문에 어떤 입장을 낼 수 없다는 게 3사 공통의 의견이다. 라임펀드 사태와 관련된 실사나 검찰 조사들이 마무리 돼야 회사 차원에서도 어떤 결정을 내릴 수 있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대신증권이 법정소송까지 갈 수 있다’는 일부 보도에 대해 대신증권 측은 ‘사실무근’이라며 선을 그었다. 일부 투자자와 판매사들 사이에서 나오는 얘기지만 회사차원에서 진행을 논하지는 않는다는 입장이다. TRS 계약 증권사들은 이에 대해 TRS 자금 선회수를 막을 수 있는 법적 근거가 없고, 소송까지 진행된다면 그에 대해 대응하면 된다는 반응이다.

TRS 계약은 일종의 자금 대출로 증권사가 펀드 자산을 담보로 돈을 빌려주는 형태다. 증권사는 이를 통해 일정 수수료 수익을 거두며, 일반 투자자보다 우선 순위로 자금을 청구할 수 있다.

라임사태의 경우 TRS 제공 증권사들이 결국에는 자금 회수에 나설 것이란 게 업계 중론이다. 자금 회수 미이행시 이는 주주가치를 훼손하는 결과를 초래해 계약 총책임자에게 업무상배임죄가 적용될 가능성이 높다는 의견이다.

업무상배임죄는 업무상 다른 사람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가 그 ‘임무에 위배하는 행위’로써 재산상의 이익을 취득하거나 제3자로 하여금 이를 취득하게 하여 본인에게 손해를 가함으로써 성립하는 범죄를 뜻한다. 임무에 위배하는 행위란 사무의 내용, 성질 등 구체적 상황에 비추어 법률의 규정, 계약의 내용 또는 신의성실의 원리상 당연히 할 것으로 기대되는 행위를 하지 않거나 당연히 하지 않아야 할 것으로 기대되는 행위를 함으로써 본인과 신임관계를 저버리는 일체의 행위를 포함한다.

한 대형 증권사 IB 전문가는 “TRS 자금 회수는 계약서상으로도 분명히 인정되는 권리”라며 “해당 증권사들은 도의적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상황이지만, 선심 쓰듯 포기하면 되는 그런 규모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어 “실제 계약서를 봐야 알겠지만, 회사마다 자기자본 이용시 규모에 따라 책임자가 팀장에서 대표이사로까지 나뉜다. 라임펀드 TRS 계약 수준이라면 책임자가 중책을 맡고 있을 확률이 높다. 선회수 미이행시 라임사태가 종결돼도 회사 내 리스크관리위원회 쪽에서 책임자에게 책임을 묻게 될 텐데, 업무상배임으로 결론이 날 가능성이 높다. 해당 증권사 입장에선 곤혹스러울 것”이라고 덧붙였다.

앞서 은행권을 중심으로 한 16개 판매사는 공동대응단을 만들어 실사 결과가 나오면 소송을 하겠다는 입장을 앞서 밝힌 바 있다. 이 가운데 몇몇 판매사와 투자자들은 TRS 제공 증권사들에 선회수 권리 행사시 법적 조치를 강행 한다는 것으로 알려진다. 이렇게 되면 라임펀드 사태는 판매사와 운용사 간 손실분담 및 투자자와 운용·판매사 간 법적 분쟁으로 뒤얽히게 된다.

금융감독원은 최근 분쟁조정2국, 민원분쟁조사실, 자산운용검사국, 금융투자검사국 등으로 구성된 합동조사단을 꾸린 것으로 전해진다. 합동조사단은 무여금융펀드를 중심으로 라임펀드 불완전 판매와 관련해 조사를 시작한다.

일각에서는 라임사태는 지난 2015년 정부가 사모펀드 활성화를 위해 규제를 대폭 완화해놓고서도 사실상 손을 놓고 있은 금융당국의 책임도 있다는 의견이 나온다. 관리감독을 제대로 하지 못하다가 뒤늦게 대책 마련에 나섰다는 비판이다.

지난 20일 국회 정무위원회 업무보고에서 유동수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금감원이 DLF 문제를 확인하고 별다른 조치를 안 해서 피해를 키웠고, 라임도 지난해 6월 이상징후를 인지했는데 8월 검사에 착수해 중간검사 결과도 지난 14일에야 발표했다”며 “금감원이 소극 대처하면서 시의적절한 대응을 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금융시장 한 전문가는 “최근 금융당국의 방식을 보면 은행, 카드, 보험, 증권 등 업계 구분 없이 문제가 터지면 무조건 고강도 규제 및 징계로 해결하려는 것 같다”면서 “이렇게까지 분위기가 살얼음판이었던 기억이 없다. 이렇게 되면 회사들은 금융당국의 눈치를 살피느라 하던 것만 계속 할 수밖에 없고 결국 국내 자본시장은 크게 위축될 수밖에 없다”고 우려를 나타냈다. 이외 다수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들도 이와 같은 의견을 냈다.

한편, 한국기업평가의 보고서를 보면, 증권사들이 라임자산운용과 맺은 TRS 계약 금액은 총 8700억원인 것으로 추정됐다. 현재 문제가 되고 있는 자(子펀)드의 판매액이 1조6700억여원임을 감안하면, 절반 이상의 금액이 TRS 계약으로 충당된 것으로 분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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