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젊은작가]⑭김중혁 "문단의 7번 타자 되고 싶다"
[이젊은작가]⑭김중혁 "문단의 7번 타자 되고 싶다"
  • 김대욱 기자
  • 승인 2008.07.25 07: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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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위타선에서 색깔 가지고 쓸 것"...기발한 상상력 빛나

※북데일리는 한국 문학의 부흥을 위해 ‘젊은 작가 인터뷰’ 시리즈를 시작합니다. 다양한 음율, 색채, 목소리를 내고 있는 새내기 작가들과의 `싱싱한` 만남을 통해 우리 문학의 미래를 가늠해 봅니다. - 편집자 주

[북데일리] 소설가 김중혁의 상상력은 기발하다. 그가 지금까지 낸 소설집 두 권에 담긴 단편은 모두 16개. 이중 어느 하나 평범한 게 없다. 하나같이 기상천외한 아이디어로 중무장해 이야기를 펼친다.

그의 작품에서 조금 특이한 소재는 튀지도 못한다. 듣도 보도 못한 물건까지 천연덕스럽게 등장시키니, 약간 별나 봤자 설자리가 없다. 첫 소설집 <펭귄뉴스>(문학과지성사. 2006)를 보자. 몇 페이지 넘기기도 전에 ‘안테나 라디오’라 이름 붙인 사물이 등장한다. 안테나와 라디오를 일체화 시킨 제품으로 세상 어디에도 없는 물건이다.

조금 더 페이지를 뒤적인다. 이번에는 깎아서 쓰는 만년필, 인구제한기, 무인 고해성사실과 같은 엉뚱한 단어가 튀어나온다. 이런 ‘깜짝 쇼’는 마지막 장을 덮는 순간까지 계속된다.

두 번째 소설집 <악기들의 도서관>(문학동네. 2008) 또한 다르지 않다. 여기서는 제품 매뉴얼을 모아 소개하는 잡지사, 악기 본연의 소리만 들려주는 주크박스, 이어폰을 꽂는 위치에 따라 국적이 다른 음악이 들리는 지구 모양의 MP3, 무방향 버스 등 진기한 물건을 볼 수 있다.

소설 속 인물도 유난스럽다. 단편 ‘사백 미터 마라톤’에는 잘 뛰다가 400m만 넘기면 쓰러지는 아이가 나온다. ‘유리 방패’에는 면접 실패를 즐기는 청년이 등장하기도 한다. 그의 작품을 구성하는 이런 요소들을 뽑아 현실에서 구현한다면 박물관도 꿈은 아니다.

그렇다면 그는 유별난 소재만 찾아다니는 ‘소재광(狂)‘인가. 아니다. 작가는 <악기들의 도서관>을 통해 한 단계 ‘진화’했다. 소재에 대한 광적인 집착을 살짝 접고, 인간과 드라마에 눈을 돌렸다.

표제작 ‘엇박자D'가 대표적이다. 이 단편은 음치와 박치들의 합창을 기획하는 ’나‘와 ’D'의 이야기다. 여기서 작가는 사회 부적응자 즉, 뭐든 ’엇나가는’ 인물을 보듬으며 사람 사이의 조화를 노래한다.

이를 두고 김치수 문학평론가는 “인생에서 ‘엇박자’로 살아가는 사람을 설정한 것 자체가 탁월한 아이디어로서 자칫하면 소외시켜버릴 수 있는 사람의 삶을 따뜻한 시선으로 감싸안고 있다”고 평했다. 문단은 이 작품에 제2회 ‘김유정문학상’을 안겨주며 작가의 변신을 반겼다.

최근 홍대 인근 카페에서 그를 만났다. 소설만큼이나 장난기와 호기심 어린 눈을 가진 남자였다.

질)수상 축하드립니다. 처음으로 받은 상이죠. 기분이 어땠어요?

답)죽고 싶었어요(웃음). 농담이고요. 그런 큰 주목을 받은 게 처음인 것 같아요. 사실 왜 나한테 상을 줬는지 의문이 커요. 내 작품에 신뢰가 없거든요. 아마 모든 작가가 그럴 겁니다. 자신이 훌륭하고 좋은 작품을 썼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거든요. 저도 마찬가지고, 자기가 쓴 게 뭔지 잘 모르는 게 보통이에요. 그런데 처음으로 누가 잘 썼다고 말해준 거니까, 느낌이 이상했어요. 부담도 됐고요.

질)상 받은 이후에 변한 게 있나요?

답) 특별히 그런 건 없고요. 최대한 상 받은 사실을 잊으려고 해요. 우쭐해 하지 말고 하던 대로 계속 할 생각입니다.

질)이번 소설집에는 전보다 사람 냄새가 난다는 평이 많습니다.

답)나도 잘 몰랐어요. 나중에 그런 평가를 듣고 왜 그랬을까 생각해봤어요. 그러고 보니 예전에는 등장인물의 성격은 별로 생각 안하고 쓴 것 같더라고요. 그런데 이번에는 고려를 많이 했어요. 그러다보니까 그렇게 읽히는 것 같습니다. 그게 좋은 건지 나쁜 건지는 아직 잘 모르겠어요.

질)아이디어는 여전히 기발해요.

답)어떤 사람은 이런 말을 해요. 소재주의라고. 그런데 난 소재주의가 좋아요. 어떤 중요한 것 하나를 가지고 장난치고 부풀려가는 일이 재미있거든요. 그러다보니 내 모든 소설이 첫 문장을 수습하는 과정 같다는 생각을 해요. 첫 문장을 떠올리고, 다음 문장으로 그 첫 문장을 책임지는 거죠. 단편 쓸 때는 전체적인 얼개도 짜지 않아요. 그렇게 하면 소설 쓰는 재미가 없어지는 것 같아요. 스스로도 다음 이야기가 궁금해야 쓸 맛도 나거든요.

질)그런 방식이면 막힐 때도 자주 있지 않나요?

답)그렇게 되지 않으려고 첫 문장에 공을 많이 들여요. 한 3번째 문장까지 쓰는 작업이 정말 어려워요. 그래도 앞의 설정을 잘 해놔야 뒤에 편하기 때문에 신경을 더 쓰죠. 아니면 엉뚱한 소재를 꺼내 와서 그런 게 ‘있다고 치자‘ 하는 경우도 있어요. 사실 불가사의한 힘이나 말도 안 되는 소재를 불러오는 걸 소설에서는 기피대상으로 여기잖아요. 그런데 그런 게 재미있어요. 일단 뭐든 있다고 치고 그걸 최대한 녹아들어가게 하는 것. 그게 바로 나만의 글 쓰는 스타일이에요.

질)그런 소재는 어떻게 찾나요?

답)상상이죠. 취재 같은 건 잘 하지 않아요. 예전에 잡지사 기자 할 때는 정말 많이 돌아다녔죠. 그런데 취재를 많이 한다고 좋은 소설이 나오는지는 의문이에요. 그냥 가만히 생각을 해요. 예를 들어 매뉴얼만 소개하는 잡지가 있다고 가상하고, 벌어지는 일을 상상해보는 거죠. 만약에 어떤 회사에 가서 벌어지는 일을 직접 취재하고 소설에 반영하면 오히려 관습적인 이야기가 나올 가능성이 크다고 봐요.

질)온전히 상상에만 의지하면 리얼리티가 떨어질 수도 있지 않을까요?

답)소설에서 리얼리티는 좀 다르다고 생각해요. 외부와 연결된 리얼리티가 중요한 게 아니거든요. 소설 내부에서 얼마나 완벽하게 현실감을 줄 수 있는지가 관건인 것 같아요. 독자가 소설가의 말을 믿어버리면 성공한 리얼리티죠. 예를 들어 작품을 읽었을 때 독자들이 ‘작가가 디자인 일을 했나봐’, ‘이런 연구소가 정말 있는 걸까’하고 생각하면 소설의 리얼리티가 완성되는 게 아닐까요.

질)취미가 많이 있죠?

답)정말 많아요. 그림, 기타연주, 디자인 등 이것저것 즐기는 게 많은데, 특별히 잘하는 건 하나도 없어요. 그래도 못하지만 하는 건 좋은 것 같아요. 시도해보는 게 중요하거든요. 안 해보고 재능이 없다고 단정 짓는 사람도 많잖아요. 커트 코베인(미국 락 가수) 책에도 나오는 이야기인데, 잘 못해도 무언가 만들어 내는 건 큰 행위에요. 세상에 없는 시, 멜로디, 연애편지 같이 세상에 없는 걸 만들어내는 거요. 그러면서 세상이 조금씩 바뀐다고 생각해요. 아마추어의 창작물일지라도요.

질)작품에 음악 관련한 이야기가 많이 나오는데요. 왜 하필 음악이죠?

답)일단 음악을 정말 좋아해요. 그리고 음악이 예술장르 중에서 가장 불가해한 것 같아요. 다른 예술은 눈에 보이는 재료로 만드는데, 음악은 그렇지 않잖아요. 음악은 재료와 상관없이 공기로서 나를 압도하는 느낌이 들어요. 그래서 음악을 들으면 늘 신기하고 궁금하고요. 날 압도하는 이 힘은 뭔지 문학으로 풀어보고 싶었어요. 그런데 좋아하기만 하지 재능은 별로 없어요. 기타를 연주하는데 완전 아마추어 수준이에요.

질)작품 속에서 ‘비트’라는 단어가 많이 등장합니다.

답)별 의미는 없어요. 처음부터 어떤 의미를 둬야지 생각하고 쓰는 작가는 없을 거예요. 책으로 묶어 내서 돌아보니 ‘이런 걸 많이 사용했네’ 이런 거죠. ‘비트’가 나한테는 자주 쓰는 말투나 좋아하는 단어 중 하나에요. 거시기 아시죠? 거시기가 여러 의미로 쓰이잖아요. 비트도 마땅히 설명하기 힘들 때 쓴 단어에요.

질)수집도 취미인가요? 수집광이라는 말이 있던데요.

답)잘못 알려진 사실입니다. 그런 이야기를 듣고 사람들이 집에 오고 싶어 해요. 그런데 집에 별거 없어요. 소설 속 인물하고 착각하는 거예요. DVD 몇 장, CD 몇 장이 전부에요. 소설에서는 LP가 등장하는데 집에는 없어요. 사실 별로 안 좋아하고, 남들처럼 MP3 자주 들어요. 그저 LP를 사랑하는 사람을 보여주면서 우리가 놓치고 있는 감성을 생각하게 하고 싶어서 쓴 거예요. 글쓰기의 방법일 뿐이죠. 다른 사람들하고 별반 다를 게 없어요.

질)문학에는 언제부터 관심을 가진 건가요?

답)잘 모르겠어요. 아마 그걸 정확하게 기억하는 작가는 아무도 없을 겁니다. 세상을 바라보고 해석하는 방법은 다양하잖아요. 난 글을 쓰면 세상을 조금 이해하는 것 같다는 착각을 할 때가 있어요. 아마 그런 거에 매력을 느껴서 시작했지 싶어요. 완벽한 허구의 이야기를 시작해서 결론을 내려보고 싶었어요.

질)전업 작가로 살 생각은 없나요?

답)아직까지는 없어요. 전업작가라면 소설로 먹고 살아야 하잖아요. 그렇게 되면 소설 쓰는 게 재미가 없어질 것 같아요. 소설은 내가 제일 좋아하는 작업인데, 이걸 돈을 벌기 위해 한다면 시시해지지 않을까 싶네요. 객원기자로 일하거나 카툰을 그리는 건 소설을 쓰기 위해서 하는 일이에요. 소설이 아닌 다른 걸로 돈을 버는 거죠. 모든 경험이 소설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일테면 맛집 취재를 하고 당장 소설에 써먹지는 않거든요. 그래도 나중에 도움이 되겠지 하는 막연한 마음은 가지고 있습니다.

질)연필로 작품을 쓴다고 하던데, 사실인가요?

답)얼마 전까지는 그랬어요. 지금은 그럴 때도 있고, 안 그럴 때도 있어요. 연필은 이렇게 사용해요. 먼저 A4 용지에 제목을 크게 써요. 거기에 첫 문장을 쓰고, 그림도 그려요. 주인공을 그리거나, 인물 관계도도 적고요. 머리를 풀기 위한 일종의 낙서에요. 그렇게 낙서를 많이 할 수 있어서 연필을 사용해요. 또 그런 낙서를 정리해서 프린트 해놓으면 약간 소설 같거든요. 거기에 이어서 쓰면 누군가 써놓은 걸 이어가는 기분이 들어요.

질)혹시 지금까지 쓴 단편 중에 드라마나 영화로 만들어보자는 제의 받은 작품은 없었나요?

답)없었어요. 와도 안 한려고요. 예전에 라디오 드라마로 만들어 진 작품이 있었어요. 못 들어주겠더라고요. 문장을 읽고 상상 하면 그럴싸한데, 현실로 형상화 시키니까 유치하다는 생각을 했어요. 난 이야기꾼은 아닌 거 같아요. 그렇게 되고 싶지도 않고요. 체질적인 것 같아요. 이런 소설을 쓰고 싶어요. 이야기가 진행되다가 주인공이 갑자기 한 숨 쉬면서 내 뱉는 말에 밑줄 긋게 만드는 작품. 그러면 그 책이 할 수 있는 모든 걸 다했다고 할 수도 있지 않을까요. 이야기 사이의 빈 공간, 정적의 순간에 뭔가 느낄 수 있는 그런 소설을 쓰고 싶어요.

질)앞으로 어떤 소설가로 남고 싶은지 듣고 싶습니다.

답)얼마 전에 낭독회를 했는데, ‘한국문학의 4번타자‘라는 카피를 썼더라고요. 그런데 4번 타자는 정말 싫어요. 7번이나 9번이 편해요. 구석에서 조용하게 있다가 사람들이 생각하지 못하는 상태에서 감동을 주는 거죠. 이런 말이 듣고 싶어요. ’쟤는 전부터 저러고 있더니, 아직도 저러고 있네, 대단하다‘라는 말이요. 하위타선에서 자기 색깔 가지고 재미있게 쓰려고 합니다.

약 1시간 반 동안 진행된 인터뷰는 시종 유쾌했다. 재치 넘치는 대답과 유머는 그의 소설과 닮아 있었다.

김중혁의 다음 도전은 장편소설이다. 좀비를 다룰 작품으로 그리 유별난 소재는 아니다. 그렇다면 평범한 좀비 이야기가 나올까.

아마 아닐 듯싶다. 좀비는 어디까지나 뿌리일 뿐, 작품을 완성시킬 가지와 이파리들은 생경한 요소를 그러모아 꾸미리라 본다. 거기에 자신만의 색도 한층 두텁게 입힐 것이다. 이런 새로움에 대한 기대를 갖게 만드는 작가, 그가 바로 김중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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