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젊은작가]①김애란 "진정성이 담긴 글 써야죠"
[이젊은작가]①김애란 "진정성이 담긴 글 써야죠"
  • 북데일리
  • 승인 2007.11.12 1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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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데일리는 한국 문학의 부흥을 위해 ‘젊은 작가 인터뷰’ 시리즈를 시작합니다. 다양한 음율, 색채, 목소리를 내고 있는 새내기 작가들과의 `싱싱한` 만남을 통해 우리 문학의 미래를 가늠해 봅니다. - 편집자 주

[북데일리] 소설가 김애란은 이 시대 젊은 작가의 주요한 상징이다. 2005년 한국일보 문학상을 최연소로 수상하며 얻은 ‘문단의 샛별’, ‘무서운 아이’라는 별칭은 이제 옛말이 됐다. 지금 그녀에겐 ‘문단 내 최고 기대주’, ‘20대 대표 작가’, ‘한국문학의 여동생’ 등의 격상된 표현이 따라다닌다.

이는 최근 출간된 소설집 <침이 고인다>(문학과지성사. 2007)에 대한 기사를 보면 좀 더 명확해진다. 언론은 “여전히 빛나는 문장”이라는 찬사와 함께 “역시 김애란”이라며 갈채를 보냈다.

그녀를 이렇게 `환대`한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 어린나이(1980년생)? 침체된 한국문학을 부흥시키기 위한 스타 만들기? 답은 오직 김애란 문학만이 지닌 매력에서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특히 갈수록 농익는 표현력과 나이를 가늠할 수 없는 독특한 시선은 김애란을 주목해야 하는 가장 큰 이유다.

먼저 문장을 보자. 그녀의 글은 간결하고 날렵하다. 군더더기가 없기에 씹을수록 담백하다. 때문에 목구멍에 걸리는 것 하나 없이 매끄럽게 술술 넘어간다.

여기에 기발한 상상력이 넘치는 묘사가 더해진다. 한낱 흔해빠진 일상도 그녀의 손을 거치면 반짝이는 별천지로 변한다. 무기력한 소재에 생동감을 불어넣은 마법 같은 힘이 김애란에겐 있다.

사회의 낮은 곳을 바라보지만 섣부른 동정과 감상을 피하는 점도 그녀의 소설이 지닌 강점이다. 그저 말없이 쓰다듬고 보듬는 작가의 위로에 독자들은 흠뻑 취한다.

최근 경희대 인근 까페에서 그녀를 만났다. 시종 수줍게 웃고 답하는 말투에서 한 문학평론가의 “누가 그녀를 사랑하지 않을 수 있는가”라는 말이 떠올랐다.

질)<침이 고인다>에 대한 반응이 좋습니다. 기분이 어떠세요.

답)물론 좋아요. 달라진 점이 있다면, <달려라 아비>를 냈을 때는 찍힌 발자국만 쳐다봤는데, 이제는 어디로 가고 있는지, 모양은 어떤지를 살피게 됐다는 거 에요. 처음에는 소설을 쓰고 남에게 인정받는다는 게 마냥 좋았거든요. 근데 지금은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잘 하고 있는 건지를 생각해요.

질)이번 작품에서도 여전히 ‘비루한’ 일상을 소재로 하셨더군요. 그런 이야기를 주로 쓰는 특별한 이유라도 있어요.

답)언뜻 시시해보이지만 빤히 들여다보면 이야기가 있거든요. 익숙해서 더욱 공감할 수 있는 그런 거요. 일상에서 느낄 수 있는 아픔과 고민을 그리고 싶었어요. 그렇다고 해서 성급한 위로를 하고 싶지는 않았고요. 누가 원하지도 않았는데 그러는 건 우습잖아요. 또 내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기도 했어요. 소설의 설정은 허구가 많지만 내 자신의 고민도 같이 녹여낸 거랍니다.

질)그럼 그 일상을 표현할 때 다른 곳도 많은데 왜 하필 고시원, 반지하, 독서실, 여인숙, 여관 같은 공간이죠.

답)주인공들 모두 안락한 생활과는 거리가 멀잖아요. 하나같이 쫓겨 다니는 삶을 살죠. 그런 느낌을 표현하기에 적합한 공간이 바로 작고 남루한 방이 아닐까 싶어요. 개인적인 재미 때문이기도 해요. 내용을 구상할 때 방을 조그만 세트로 생각하는 버릇이 있거든요. 그 속에 인물들을 초대하는 거에요. 어떻게 생각하고, 무슨 행동을 하는지를 가만히 들여다봐요. 그렇게 관찰하는 게 아주 흥미진진해요.

질)여태까지 그런 작은 일상만을 다루셨는데요. 거기서 벗어난 ‘큰 이야기’를 소재로 쓰고 싶은 마음이나 계획은 없는지 궁금한데요.

답)거대 서사를 읽는 건 정말 좋아해요. 그런 소설이 사회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도 알고요. 하지만 아직 그런 걸 쓸 생각은 없어요. “과연 내가 진지하게 상대할 수 있는 이야기인가“라고 물으면 자신 있게 대답할 수 없거든요. 나중에 기회가 되면 써볼 수도 있겠는데, 그러려면 먼저 많이 탐구해봐야겠죠. 그래도 역사의식이나 사회의식을 항상 갖추려고 노력한답니다. 소설 속에 조금씩 반영하기도 하고요. 작품 속의 작은 사건들도 따지고 보면 사회적 문제와 연관이 있어요.

질)다른 인터뷰에서 얼개를 짜지 않고 첫 문장을 쓰면서 작품을 시작한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답)모든 글을 그렇게 쓰는 건 아니에요. 다른 작가들도 그렇지만 한 가지 방법으로만 글을 쓸 수는 없거든요. 좋아하고 자주 사용하는 방식인건 확실해요. 왜냐하면 앞으로 어떻게 진행될지 모르는 두려움과 설레임을 가장 크게 느낄 수 있거든요. 완성돼 갈수록 “아! 내가 이런 이야기를 하고 싶었구나”하고 발견하는 재미도 크고요. 이번 소설집에서 그런 방법을 가장 많이 활용한 작품이 ‘플라이데이리코더’에요.

질)그래도 글을 쓸 때 어려움에 부딪히는 경우도 종종 있을 것 같은데요.

답)물론 글이 막힐 때야 많죠. 그럴 경우엔 그저 앉아 있어요. 누구도 도와줄 수 없는 문제니까요. 화내지 말고 “지금은 안돼는 구나“하고 인정하고 기다리는 편이에요. 무언가 번쩍 떠오를 때까지요. 정말 힘든 순간도 많은데, 앞으로는 그걸 부끄러워하거나 숨기지 않으려고 해요. 힘들었다는 건 그만큼 진지했다는 거고, 잘 안 써진다는 건 잘 써진 적이 있다는 뜻이니까요. 어떤 문제가 생겨도 모두 온전히 받아들이려고 합니다.

질)그렇다면, 얼마 전 나온 이명원 문학평론가의 혹평도 크게 마음 쓰진 않으시겠어요.

답)글을 직접보진 못하고, 이야기만 들었어요. 중요한 건 주변의 반응에 휩쓸리거나 흔들리지 않는 거 같아요. 비판이건 칭찬이건 내 글에 대한 다양한 반응은 당연하니까요. 늘 중심잡고 살아가려 합니다. 나를 지켜주는 사람은 나 자신 밖에 없다고 생각해서요.

질)칭찬에 대한 부담이나 사명감 같은 것도 없나요? 젊은 작가 중 최고의 기대주로 꼽히고 있는데요.

답)그렇죠. 사실 사명감을 생각해 본적은 없어요. 부담 역시 마찬가지고요. “주변의 기대에 못 따라가면 어쩌나” 하는 걱정 보다는 내 자신을 먼저 생각해요. “슬럼프가 찾아와 아무것도 하고 있지 않으면 어쩌나” 하는 그런 고민이요. 그럴 땐 자연스럽게 선배 작가 분들을 떠올리죠. “그분들은 슬럼프가 오면 어떻게 해결 했을까“하면서요. 내가 이래요. 주변 이야기보다는 내면의 소리에 귀를 더 많이 기울여요.

질)예전에는 직장인이 되고 싶다고 말한 적도 있던데, 지금도 그런 생각 하세요.

답)몇 년 전 인터뷰에서 그런 말을 했었는데요. 오해의 소지가 있었어요. 직장 생활을 취미로 해보겠다는 건 아니었거든요. 다른 분들에겐 말 그대로 생업인데, 내가 그런 발언을 해서 그 세계를 얕보는 것처럼 비춰졌어요. 사실 처음부터 글만 쓰겠다는 계획은 없었어요. 직업을 갖고 일을 하면서 남는 시간에 글을 쓸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거든요. 성인이니까 최소한의 독립은 해야 하잖아요. 사람이 일을 해야 건강해질 수도 있으니까요. 그런데 지금은 글쓰기가 전업이 되어버렸네요. 이제는 원고 생각이 가장 많아요.

질)하루 종일 원고 생각만 하면 힘들 텐데요.

 

답)쉴 때는 주로 좋아하는 사람들과 만나서 대화를 해요. 그저 이야기하는 게 좋을 뿐인데, 놀 줄 모르는 사람처럼 비춰질까봐 걱정도 돼요. 남들에게 자랑할만한 매력적인 취미가 없는 것도 아쉬워요. 가끔 다른 작가 분들이 드럼이나 기타 같은 악기나 스킨 스쿠버처럼 특별한 여가를 즐긴다고 하면 너무 부러워요. 멋있어 보이기도 하고요. 예전에 처음 상을 타서 상금으로 작은 디카를 하나 샀어요. 마음껏 사진을 찍어보려고 했거든요. 그런데 잘 안하게 되더라고요.

질)이제 2007년도 얼마 안 남았습니다. 내년 계획이나 앞으로 어떤 작가로 남길 바라는지 듣고 싶습니다.

답)우선 지금 준비하고 있는 장편에 전력을 쏟으려고요. 택시 이야기인데, 완성된 소설이 내 마음에 들었으면 좋겠어요. 더 멀리는 진심으로 성실한 작가가 되고 싶습니다. 특히 글 쓰는 태도에서요. 꾸준한 작품 활동으로 독자에게 다가서려 합니다. 그렇다고 작품 수만 늘리려는 건 아니에요. 진정이 담긴 글을 써야죠. 지켜봐 주세요.

김애란의 말에는 글에서 선보이던 화려함은 없었다. 꾸미기 보다는 솔직하게 드러내려 했고, 확신이 없으면 단정 짓지 않았다. “언변이 부족하다”는 그녀의 고백은 사실이었다.

그러나 그 쭈뼛거림 뒤에는 한없는 투명함이 엿보였다. 즉흥적으로 내뱉는 말에 의식하지 못한 가식이 덧칠될까 경계하는 모습이었다. 이는 허튼 과장과 감정의 과잉을 절제하는 그녀의 작품세계와 쏙 빼닮았다.

현재 김애란은 장편소설에 도전 중이다. 끊임없이 돌아다니는 택시를 소재로 도시 구석구석을 살필 예정이다. 이번에는 어떤 낡고 초라한 주변 이야기에 꽃을 달고 빛을 비출까. 기다리고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독자들의 마음은 설렌다. 28살의 김애란은 그런 작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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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대욱 기자 purmae33@pimed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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