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젊은작가]⑬서유미"다양한 색깔 지닌 글 쓸래요"
[이젊은작가]⑬서유미"다양한 색깔 지닌 글 쓸래요"
  • 북데일리
  • 승인 2008.04.28 1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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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데일리는 한국 문학의 부흥을 위해 ‘젊은 작가 인터뷰’ 시리즈를 시작합니다. 다양한 음율, 색채, 목소리를 내고 있는 새내기 작가들과의 `싱싱한` 만남을 통해 우리 문학의 미래를 가늠해 봅니다. - 편집자 주

[북데일리] 소설가 서유미는 작년 한 해 최고의 시간을 보냈다. 지난 2007년 그녀가 받은 문학상은 모두 2개. 제5회 문학수첩작가상과 제1회 창비장편소설상이 그것이다. 굵직한 공모전을 연달아 휩쓴 작가는 등단 1년 만에 문단 내 기대주로 급부상했다.

이런 그녀의 매력은 이야기를 풀어가는 힘에 있다. 큰 줄기 아래 작은 사건들을 치밀하게 배치한 작가의 소설은 어디 하나 막힘이 없다. 화려한 수사를 배제하고 리듬에만 집중한 문장은 독자의 호흡을 돕는다. 그래서 문학수첩작가상을 받은 <판타스틱 개미지옥>(문학수첩. 2007)과 창비장편소설상을 수상한 <쿨하게 한걸음>(창비. 2008) 모두 쉽고 빠르게 읽힌다.

더욱 반가운 건 그녀의 작품이 단순히 ‘읽는 재미’에만 그치지 않는다는 점이다. 세상을 바라보는 농밀한 시선은 ‘생각하는 재미’ 또한 준다.

먼저 <판타스틱 개미지옥>을 보자. 이 소설은 백화점을 무대로 벌어지는 다양한 일을 그린다. 여기서 작가는 자본주의가 지닌 병폐를 고발하고 인간의 헛된 욕망을 꼬집는다. 하지만 전면에 드러내진 않는다. 슬그머니 드러낼 뿐이다.

33살 실직자 연수와 그녀의 가족, 친구들의 일상을 담은 <쿨하게 한걸음> 역시 마찬가지. 공감 가는 상황 묘사와 대사, 각종 유머로 버무린 이야기는 밝고 따뜻하지만 사회에 대한 문제의식은 무디지 않다. 물론 겉으로 내보이는 건 아니다. <판타스틱 개미지옥>처럼 행간에 슬쩍 숨겨둔다.

이를 주목한 창비장편소설상 심사위원단은 “장편소설이 지녀야 할 가독성과 흡인력을 충분히 확보한 매력적인 작품”이라며 “시대현실을 예민하게 반영하는 문제적 인물들을 내세워 힘 있게 이야기를 끌고 나간다”고 평했다.

최근 홍대 인근 카페에서 그녀를 만났다. 처음 이름을 알렸던 지난해 가을 보다 한결 여유로운 모습이었다.

문)두 번째 수상 축하드립니다. 많이 기쁘시겠어요.

답)과분한 상을 받았어요. 그저 감사할 따름입니다. 사실 처음에는 마음이 붕붕 떠 있었어요. ‘소설을 써야지‘하고 꿈만 꿀 때는 일단 되기만 하면 모든 게 잘 될 꺼라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막상 소설가가 되고 보니까 그렇지 않더라고요. 외로운 싸움이구나 싶어요. 자기관리도 중요한 거 같고요. 예전에는 혼자 쓰기만 하면 됐는데, 지금은 사람들도 만나고 변수가 많아 졌거든요. 그래도 꾸준히 글 쓰는 시간을 가져야 하니까 정신 바짝 차려야 하겠더라고요.

질)순식간에 기대주로 떠올랐는데요.

답)많이 부담스러워요. 처음부터 너무 큰 상을 받고 등단해서 다른 분들 기대에 부응할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얼마 전에 문장 웹진에 단편을 냈어요. 그걸 본 어떤 독자분이 메일을 보냈어요. 재미있게 잘 봤다고요. 직접 그런 소리를 들으니까 부담이 더 커지더라고요. 또 지금까지 낸 책은 전에 써둔 작품이거든요. 이제 새로운 걸 써야 하는데, 전작들에 눌리지는 않을지 걱정 되네요.

질)<쿨하게 한걸음>이 창비장편소설상을 염두 한 작품은 아닌가 보죠?

답)등단하기 전에 원주에서 2년 동안 살았어요. 도전이었죠. 나중에 후회하지 말고 원 없이 소설 한 번 써보자고 남편하고 같이 내려갔어요. 아무것도 안하고 소설만 썼죠. 그때 쓴 장편 2개 중 하나에요. 사실 다른 공모전에 냈다가 떨어진 작품이에요. 다시 고쳐서 응모한 거죠. 9월 30일이 창비장편소설상 마감이었거든요. 7월 중순에 <판타스틱 개미지옥>으로 당선 연락을 받고 마음이 들떠서 새 작품은 못 쓰겠더라고요. 시간도 부족했고요. 그래서 고쳐서 내기로 한거죠.

질)그러면 왜 <판타스틱 개미지옥>부터 냈나요?

답)사실 <판타스틱 개미지옥>이 더 공모전용이라는 생각을 했어요. 심사위원들이 여러 번 읽는 게 아니잖아요. <쿨하게 한걸음>은 지루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서, 이목을 확 끌 수 있는 게 좋겠다 싶었어요. 또 분량 문제도 있었어요. <판타스틱 개미지옥>같은 경우는 700매 정도로 짧으니까 고칠 시간이 더 넉넉했어요.

질)당선되고 나서 가족들 반응은 어땠나요?

답)물론 기뻐했죠. 그런데 아주 크게 환영해 준 건 아니에요. 좀 무심한 편이거든요. 특히 아버지가요. 이번에 두 작품으로 받은 상금이 합해서 5천 만 원이에요. 저한테는 아주 큰 돈이죠. 그런데 대기업 다니는 친구들 1년 연봉 정도 밖에 안 되는 돈이니까 명예직 아니냐고 말씀도 하세요. 악의가 있다기보다, 딸이 글 쓴다고 고생하니까 안쓰러워서 그러시는 거죠. 남편은 좀 달라요. 크게 축하해줬어요. 늘 응원해주거든요. 소재 찾는 부분부터 도움을 많이 받아요. 대사 같은 것도 남자 들이 잘 쓰는 말인지 꼭 물어봐요. 그럴 때마다 잘 알려주고요.

질)얼마 전에 독자들을 직접 만났다고 들었습니다.

답)북콘서트에 참석했어요. 천운영 작가하고요. 굉장히 많이 떨렸어요. 리허설 할 때까지만 해도 심장이 터지는 줄 알았어요. 그런데 막상 무대에 올라가니까 진정이 되더라고요. 콰르텟 엑스라는 연주자들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하니까 긴장이 풀렸던 거 같아요. 사실 가기 전에는 압박도 대단했어요. 천운영 작가가 저랑은 비교도 안되게 유명하니까, 긴장도 되고 주눅도 들더라고요. 그래서 편집자한테 ‘신인이랑 함께 해서 기분 나빠하진 않을까요’라고 물었더니 그런 거 신경 안 쓰는 분이라고 하더라고요. 실제 만나보니 털털하고 좋은 분이라는 생각을 했어요. 독자들을 절 어떻게 바라보는지 느끼기는 힘들었어요. 아무래도 무대와 객석이 떨어져 있으니까, 느끼기가 쉽지 않더라고요.

질)<쿨하게 한걸음>, 제목이 좋습니다.

답)여러 안을 내고 회의를 계속 했어요. 여러 가지 의견을 합쳐서 만든 제목이에요. ‘한걸음’은 꼭 넣고 싶었어요. 여기서 한걸음은 세상을 향해서 나아가는 건 아니에요. 자신을 탐색하고 한걸음 전진하는 느낌을 주고 싶었어요.

질)어떤 계기로 쓰게 된 작품이죠?

답)30대가 아니면 쓸 수 없는 걸 써보자는 생각으로 썼어요. 물론 자기 나이대가 아닌 주인공이 등장하는 소설을 쓸 수는 있겠죠. 그런데 정말 내가 호흡하는 것처럼 쓰기는 힘들다는 생각을 해요. 그래서 20대에 등단 못한 게 아쉽죠. 20대 이야기를 쓰기가 쉽지 않을 테니까요.

질)곳곳에 등장하는 유머가 인상적입니다.

답)일부러 유도를 했어요. 가족 이야기니까 내용이 어둡고 처질 수 있잖아요. 그러다보니까 이야기와 이야기를 연결할 때 가볍고 발랄하게 넘어갈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쓸 때도 시간이 많이 걸렸어요. 읽을 때 쉽고 편한 소설이 쓸 때는 힘들겠다는 걸 확실히 깨달았죠.

질)초반에 헤어진 주인공 남자친구가 끝까지 안나오는데, 이유가 있을까요?

답)쓸 때 최대한 로맨스를 배제하고 싶었어요. 실제 살면서 로맨스는 흔하지 않아요. 주변에 3년째 연애 못하는 사람도 널렸고요. 그런데도 30대 이야기에 연애가 안나오면 이야기가 안될 것처럼 생각하는 사람이 많아요. 성장통을 겪는 개인에게만 집중하고 싶었어요. 사실 처음에는 남자친구도 안 넣으려고 했어요. 시작부터 헤어졌다고 하면 재미가 덜 할 것 같아서 헤어지는 장면을 넣은 겁니다. 중간에 만나는 동남하고 로맨스가 없는 것도 같은 이유에요. 철저하게 현실적으로 그리고 싶었어요.

질)동남은 왜 자살을 택하게 만든 거죠?

답)남자들의 경우는 30대 초반이면 학교 졸업하고 막 자리잡아가는 시점이잖아요. 같은 나이 대의 여자보다 더 힘든 때에요. 특히 동남이는 그 나이에 취업 공부까지 하고 있죠. 그런 혼란스러운 느낌을 주고 싶었어요. 그러다 보니 극단적인 방법을 선택한거죠. 사실 처음에는 죽음까지는 고려를 안했어요. 현실성이 떨어질까 봐요. 그런데 그렇지만은 않겠다는 확신이 글을 쓰는 즈음에 들었어요. 신문에서 자살하는 사람이 많다는 뉴스를 읽었거든요. 굳이 여기서 꿋꿋이 이겨나가는 모습을 그릴 필요는 없겠다 싶었어요. 또 이 소설이 절정이 없고 그냥 밋밋하게 흘러가니까 자살 하는 부분에서 포인트를 주고 싶었어요.

질)작가가 생각하는 30대는 어떤 모습인가요?

답)사회생활에서 물이 오르는 나이에요. 그러다보면 매너리즘에 빠지기 쉽고, 인생을 이대로 살아도 좋은지 점검하게 되는 나이라고 생각해요. 어른들이 볼 때는 철없는 성장통이고 방황인데, 이런 게 어른이 되는 과정이지 싶어요. 개인적으로도 그런 고민을 하다가 원주로 가서 소설을 쓰게 된 거고요.

질)원주에서 문체와 내용 중심으로 글쓰기가 바뀌었다고 들었습니다.

답)90년대 학번이에요. 내면 중심인 소설이 유행했던 때죠. 자연스럽게 그런 쪽을 읽고 공부했어요. 그런데 원주에서 책 읽고, 글 쓰고 하면서 알아챘어요. 속도감 있고, 이야기가 탄탄한 작품을 좋아하는데, 막상 쓰는 건 늘어진다는 작품이라는 걸요. 쓸 때도 즐거워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자연스럽게 몰입할 수 있게요. 그때부터 이야기를 만드는 거에 관심을 가졌어요. 그러니까 문장도 자연스럽게 짧아지더라고요. 아무래도 사건 진행을 빨리 해야 하니까요.

질)원주 가기 전에도 소설을 썼나요?

답)그렇지는 않았어요. 주로 일을 했죠. 대학교 때 소설가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처음 했어요. 문학회 활동을 4년 내내 했는데 1학년 때는 시를 썼어요. 품평회를 가졌는데 한 선배가 이런 말을 했어요. ‘넌 하고 싶은 이야기가 너무 많아서 시에 담으려니까 터질 것 같다. 소설을 써보는 게 어떠냐’고요. 집에 와서 심각하게 고민해 보고 그때부터 소설을 썼죠. 졸업할 때 쯤 처음 신춘문예에 응모했는데 떨어졌어요. 그런 다음에는 이런저런 일을 하면서 늘 생각만 했죠.

질)두 작품 모두 인물이 많이 나옵니다. 작명도 쉽지 않았을 것 같아요.

답)<쿨하게 한걸음>에는 모두 흔한 인물들이 나와요. 어디에나 있는 사람들이죠. 그러다보니까 평범한 이름 중에서 찾았어요. 예쁘고 유별난 이름은 싫었고요. 실제 그런 이름을 가진 사람이 별로 없거든요. <판타스틱 개미지옥> 같은 경우는 누가 누군지 헛갈린다는 의견이 많아요. 그런데 백화점 직원을 우리는 구별 못하잖아요. 물건만 사면 그만이니까요. 이 사람이 저 사람처럼 느껴져도 상관없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처음에는 이름 자체를 없애려고 했는데 그러면 너무 구별이 안 될까봐 평범한 이름이라도 붙였어요.

질)작품 쓸 때 어디에 주안점을 두나요?

답)상황이나 배경이죠. 뭐든 이야기를 시작할 때 밑바탕을 잘 깔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야 그 위로 주인공과 사건이 잘 걸어갈 수 있거든요. 인물은 취약한 것 같아요. 책을 덮어도 머릿속에서는 인물이 살아 움직일 수 있어야 하잖아요. 그런데 전체적인 내용은 기억해도 특별히 인상 깊은 인물은 없다는 말을 많이 들었어요. 앞으로 그런 점은 보완할 생각입니다.

질)주로 언제 쓰나요?

답)낮에 많이 써요. 직장인들하고 비슷하게 생활해요. 낮에 일하고 밤에 쉬는. 예전에는 올빼미처럼 밤에 쓰기도 했어요. 체력적으로 너무 힘들더라고요. 영감이 더 많이 올지는 모르겠지만 지금 낮이 편해요. 그래서 일하면서 글 쓰는 작가들이 가장 존경스러워요. 지금은 좀 게을러진 편이에요. 원주에서는 훨씬 일찍 일어나고 타이트하게 생활했어요. 좀 해이해진다 싶으면 남편이 특수훈련 해야 한다면서 기상 시간을 한 시간 당기고 한 적도 많아요.

질)어떤 소설가로 남고 싶은지 듣고 싶습니다.

답)꾸준히 변신하는 소설가가 되고 싶어요. 오쿠다 히데오 소설 중에 이런 장면이 나와요. 한 소설가가 어떤 문장을 두고 자신이 쓴 건지 아닌지 찾는 모습이요. 그런 작가가 될 수 있으면 좋겠어요. 정말 자기도 헛갈려할 정도로 다양한 색깔을 가진 글을 쓰는 소설가요. 앞으로 지켜봐 주세요.

그녀의 말에는 윤기가 돌았다. 소설에서 보여준 맛깔 나는 문장과 닮은 말투였다.

서유미는 소설 제목처럼 이제 막 ‘한걸음‘을 내딛었다. 눈물을 삭히고 필사적으로 글을 쓴 ’쿨‘하지 않은 노력의 결과다. 그렇다면 ’두걸음’은 조금 쿨하게 뻗을 수 있을까. 아마 아닐 듯싶다. 전보다 더 치열하고 집요하게 매달려 두걸음을 완성할 것이다.

그때까지 문단과 독자의 꾸준한 관심은 필수적이다. 작가를 두고 “이야기꾼의 풍부한 자질을 갖고 있는 이 작가가 앞으로도 좋은 작품으로 독자들을 계속 만날 수 있기를 바란다”는 심사위원단의 말. 부디 일부의 기대로 그치지 않기를 바란다.

[김대욱 기자 purmae33@pimed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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