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젊은작가]⑧김경주 "굴욕적 알바, 날 성장시켜"
[이젊은작가]⑧김경주 "굴욕적 알바, 날 성장시켜"
  • 북데일리
  • 승인 2008.02.04 0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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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데일리] 시(詩)가 안 읽히는 시대다. 어렵사리 시집을 내도 초판 1~2천부조차 소화하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 누가 어떤 시집을 냈는지 독자는 관심이 없다. 온몸으로 토해낸 피 같은 한 줄 한 줄은 그저 서점 한 구석을 쓸쓸히 지킬 뿐이다.

이런 형국에서 시인 김경주의 등장은 고무적이다. 2003년 대한매일(현 서울신문) 신춘문예로 등단한 그의 첫 시집 <나는 이 세상에 없는 계절이다>(랜덤하우스. 2006)는 무려 1만부가 넘게 팔렸다. 소위 말하는 ‘대박’이다.

그렇다면 그의 시가 대중적인가. 쉽게 답할 수 없는 문제다. 시인 권혁웅은 이 시집을 두고 “시인으로서의 믿음과 비평가로서의 안목 둘 다를 걸고 말하건대, 이 시집은 한국어로 씌어진 가장 중요한 시집 가운데 한 권이 될 것”이라고 평했지만, 독자에게는 한없이 낯선 글이다.

형식파괴적인 구성과 난해한 언어의 나열은 교과서 시에 익숙한 독자를 숨차게 한다. 그래도 책은 팔리고, 그의 이름은 꾸준히 회자된다. 새로운 감성과 형식을 머리보다는 가슴이 먼저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탓이다.

지난해 여행 산문집 <패스포트>(랜덤하우스. 2007)를 출간하고 소식이 뜸했던 그를 최근 홍대 인근 카페에서 만났다. 치렁치렁했던 긴 머리를 짧게 자른 모습이었다.

질)얼마 전 제주도에 있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답)전시회 때문에요. <패스포트>에 실린 사진을 책 밖으로 내오고 싶었어요. 티양이라는 사진작가가 찍었는데, 제주도에 있는 ‘하루’라는 갤러리에서 전시 중이에요. 4월 말까지 할 예정이고요.

질)왜 하필 제주도죠?

답)<패스포트>가 몽골과 시베리아를 다녀오고 쓴 책이잖아요. 근데 제주도가 몽골 풍습과 비슷한 점이 많아요. 바람 냄새가 나는 것도 닮았고요. 이런 생태적인 측면을 고려해서 장소를 골랐어요. 그쪽 반응도 썩 괜찮네요.

질)여행을 좋아하시는 것 같아요.

답)여행을 하기 위해 글을 쓴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좋아해요. 지난여름에 <패스포트>를 내고 나서 바로 라오스를 갔고, 1월에는 일본엘 다녀왔어요. 작년만 해도 8개국 정도를 찾았고요. 삶 자체가 여행이었어요. 아버지가 군인에서 경찰로 예편하셔서 전근이 많았거든요. 중학교 때부터 지금까지 자취생활만 벌써 20년째고요. 군 시절에는 해군이어서 섬이란 섬은 전부 돌아봤죠. 오지들만 찾아다니는 트레블 게릴라 멤버이기도 해요. 국내에 숨겨진 곳들도 남들보다 많이 알아요.

떠날 때 그 느낌 때문에 여행을 좋아해요. 다음 여행지를 생각하는 설렘이나, 떠날 수 있다는 생각을 하며 짐을 싸는 순간이 좋아요. 일이 너무 고되거든요. ‘추리닝바람’ 사무실을 운영하면서 하루에 2~3시간 밖에 못 자요. 하루 종일 회의 하고 사람을 만나요. 밤에는 글을 쓰고요. 프리랜서다 보니 고정된 수입이 없어서 스트레스도 많이 받아요. 그래서 여행이 큰 힘이 되죠. 2월에는 터키와 그리스를 돌아볼 예정입니다.

질)‘추리닝바람’은 뭐하는 곳이죠?

답)‘무경계 문화펄프 연구소’라고 부릅니다. 경계 없는 문화의 종이이자 물이 흘러가는 관이라는 뜻이죠. 문화저격수 역할을 해주는 거에요. 시, 연극, 마임, 인디밴드 같은 비주류 문화들이 자기들의 언어를 지킬 수 있도록 서로 도와주는 거죠. 행사를 기획해주거나, 직접 제작도 합니다. 이미 마임 극단 ‘숨은그림‘ 같은 경우는 우리보다 더 유명해졌어요. ’적적해서 그런지’라는 4인조 여성 밴드 역시 마찬가지고요.

질)쉽지 않은 일일 텐데요.

답)어렵습니다. 스케일 때문에요. 지금은 작으면 찾지 않는 시대잖아요. 그래도 누군가는 해야 하는 일이에요. 사회가 점점 비주류 문화를 폭력적으로 몰아가잖아요. 갈수록 살아남기 힘들게 만들죠. 하지만 지켜야 해요. 그래야 대중문화의 밸런스도 형성되고요. 헌데 자본이 없으니까 늘 힘들어요. 그래서 상상력과 기획력을 철저히 갖추려고 하죠. 끊임없는 워크샵으로 감을 잃지 않으려고 노력해요. 대기업에 추리닝을 입고 출근하고, 칸 영화제에 추리닝을 입고 올라갈 수 있는 그날까지 힘써보려고 합니다.(웃음)

질)그렇게 다른 일을 하면서 시는 언제 쓰나요?

답)글은 매일 쓰는데, 시 만큼은 쉽지 않아요. 안될 때는 한 달에 한 편도 안 써져요. 예열도 필요하죠. 그래도 지금 하는 일 중에서 시에 대한 애착이 가장 커요.

질)시가 주는 느낌이 독특합니다. 기괴한 이미지 묘사도 많고요.

답)전반적으로 기형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어요. 가장 집중하는 주제죠. 기형은 진화도 아니고 퇴화도 아닌 일그러져 있는 상태 자체를 말해요. 현실과 지금의 제 모습이기도 하죠. 이걸 직시하고, 직관으로 바라볼 수 있어야 해요. 제 나름의 철학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질)20쪽이 넘는 ‘비정성시’는 시집 후반에 위치했습니다. 배열이 의미가 있나요?

답)음악적으로 배치했어요. 마지막으로 갈수록 절정으로 치닫는 거죠. 시 전체가 음악이라고 생각해요. 전체적인 조화를 이루면서 음악을 듣는 느낌을 주고 싶었어요.

질)음악을 좋아하시죠? 시집하고 산문집 모두 음악에 대한 언급이 많은데요.

답)어렸을 때부터 라디오를 많이 들었어요. DJ는 밤의 선생님이었죠. 학교에서 못 배우는 걸 라디오에서 배웠거든요. 매일 강의를 들은 셈이에요. 고등학교 때는 친구들하고 카피밴드도 했어요. ‘한심한 것들’이라는 이름의 밴드였는데 기타를 연주했어요. 사실 처음 서울에 친구들하고 올라온 목적이 밴드 재결성을 위한 거였어요. 언젠가는 다시 하고 싶어요.

 

질)첫 시집이 1만부를 넘겼습니다. 비결이 있을까요?

답)아마 제 독자가 문학 독자만 있지 않아서 그런 것 같아요. 기본적으로 문화 관련한 일을 많이 하니까, 그쪽 친구들이 많이 읽어준 게 아닐까 싶어요. 사실 영화나 연극을 하는 사람들 대부분이 제 책을 알고 있어요. 또 특이하면서도 시적인 느낌을 주는 매력도 이유겠죠. 개인적으로도 많이 궁금해요. 도대체 누가 이걸 읽고 있는지요. 어쨌건 그렇게 팔렸다는 소식을 듣고 어쩌면 마니아 문화도 승산이 있을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시가 아직 죽지 않았구나 싶기도 했고요.

질)독자들이 어떻게 읽어줬으면 하는 기대가 있었나요?

답)읽을 거라는 기대 자체를 안했어요. 단 한 단어도 독자를 고려하고 쓴 게 아니었거든요. 시집을 내기도 힘들었어요. 3년 동안 시 한번 안 쓰다가 원고 들고 책 내달라고 하면 누가 반기겠어요. 계속 대필에 야설만 쓰다가 시 한 번 써보겠다고 2년간 전념했는데, 이 모양이니 짜증나더라고요. 2005년에 대산창작기금 받고도 상황은 비슷했고요. 자존심 하나로 버텼어요. 책을 못 내는 한이 있더라도 원고응 가지고 있겠다 하면서요. 그러다가 주위 사람들한테 원고를 돌리면서 입소문을 탔어요. 결국 출판사에서 연락이 왔죠. 출간일은 생일날로 잡았어요. 내 자신에게 주는 첫 번째 선물이라는 의미에서요.

질)무명 시절 이야기를 좀 더 듣고 싶어요.

답)많이 힘들었어요. 등단을 하고도 도저히 시를 쓸 수 없던 상황이었죠. 돈 때문에요. 대필, 야설, 서브 작가 등 안 해본 게 없어요. 그땐 굴욕적이라는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한동안 숨겼고요. 시간이 지나고 나니깐 서글프기는 해도 성장의 큰 계기가 됐다는 생각을 해요. 글쓰기 연습을 많이 했거든요. 하루에 80작을 썼어요. 거의 2년간 4만매 정도를 쓴 셈이죠. 물론 퀄리티 상관없이요. 그래도 그 정도를 매일 하니까 글쓰기가 많이 늘더라고요. 나중에 ‘시인이 된 야설작가’라는 제목으로 책을 내려고요. 구성작가, 대필작가, 야설작가, 시나리오 서브 작가 같은 마이너리티 작가들에게 부끄러워할 필요 없이 당당하라고 말해주고 싶어요.

질)시인의 역할이 뭐라고 생각하세요?

답)시인은 시대의 징후를 가장 먼저 발견해야 합니다. 그러려면 시는 언어의 최전방을 지키고 있어야 하죠. 최전방은 가장 공포와 고독을 느끼기 쉬운 아슬아슬한 곳입니다. 하지만 누군가는 있어야 하죠. 시는 언어의 전위로서 언어가 제도화되고 트렌드화 될 때 이를 막기 위한 실험을 계속해줘야 해요. 대중에게 낯설 수밖에 없죠. 하지만 굉장히 중요한 역할입니다.

질)그럼에도 불구하고 참 안 팔리는 게 시집입니다.

답)그렇습니다. 제 시집이 1만부 팔려서 대박이라고 해도 대중적으로 성공했다고는 절대 말할 수 없어요. 다른 상업적인 책에 비하면 세발의 피도 안 되죠. 시인이 약 5천명인데, 활동 중인 사람은 200명 정도에 불과합니다. 이성복 선생님의 <뒹구는 돌은 언제 잠 깨는가>라는 시집이 있습니다. 한국시에 한 획을 그은 획기적인 시집이죠. 30년간 60쇄가 나갔어요. 그런데 인세라고 해봤자 2천만 원도 안 되죠. 이게 현실입니다.

질)타개할 방법이 있을까요?

답)우선 외부의 지원이 필요하겠죠. 지금도 국가적 차원 정책지원이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근데 여기선 분배의 문제가 생기죠. 중앙과 지방에 금이 가기 쉬워요. 시를 소설과 같은 가격에 파는 방법도 있어요. 실제 프랑스는 시집이 더 비싸기도 해요. 하지만 출판사 입장에선 쉽지 않죠. 우리와는 너무 먼 이야기이기도 하고요. 그래서 시적인 느낌을 전이 하는 게 필요해요. 장르간의 경계를 허물어서 대중에게 인지도를 높이는 거죠. 이를테면 외국처럼 연극에 시를 넣어서 나중에 이를 모아 출간하는 거죠. 제 시 중에 ‘늑대는 눈알부터 자란다’라고 있어요. 이걸 작년에 연극으로 올렸는데, 다시 손봐서 올해 재공연할 계획이에요. 이것도 시적인 느낌을 전이하려는 활동 중 하나죠. 희곡을 살리려는 노력이기도 하고요.

질)희곡 활동도 활발히 한다고 들었습니다.

답)사실 시 보다 희곡을 먼저 썼어요. 세 번째 대학 다닐 때 국문과였어요. 연극하는 친구들과 선배가 많았죠. 쫓아다니면서 자연스럽게 대본을 보게 되니까 희곡을 써보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어요. 그런데 잘 안되더라고요. 그러다가 희곡이 시적이라는 걸 느꼈어요. 이때부터는 시를 병행했죠. 항상 희곡과 시를 동시에 보냈는데 시로 등단을 하게 됐어요. 그런데 희곡에 대한 열망은 못 버려서 꾸준히 쓰고 무대에 올리고 있어요.

질)희곡에 몰두하는 이유가 있나요?

답)희곡은 문학의 정수라고 생각합니다. 역사적으로 가장 오래됐고, 그 안에 서사적인 탄탄함과 시적인 느낌이 공존하죠. 글쓰기 훈련에는 최고에요. 주어진 시간과 공간과의 싸움이거든요. 그 안에 작가의 상상력을 모조리 쏟아 붇는 몸부림이죠. 입체적이고 생생한 질감이 느껴져야 합니다. 그러려면 서사가 다른 어떤 장르보다 탄탄해야 해요. 단 1초만 어긋나도 바로 관객들에게 반응이 와요. 다른 장르와는 비교가 안 되죠. 희곡을 잘 쓰면 다른 어떤 장르도 쓸 수 있어요.

질)다른 종류의 글을 쓸 생각은 없나요? 이를 테면 소설 같은.

답)소설을 쓸 생각은 아직 없습니다. 언젠가는 쓸 수도 있겠죠. 기본적으로 작가라면 무엇이든 다 쓸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칸막이가 있어선 안돼요. 또 작가는 확실한 문체 하나를 가지는 것도 중요하지만, 수많은 문체를 가질 필요가 있다고 봐요. 배우가 다양한 캐릭터를 소화하듯이 말이에요. 작가는 지면의 배우에요. 하나의 주제의식과 성향을 가지고 여러 가지 색깔로 표현하는 진검승부를 해야죠.

질)어떤 시인으로 남고 싶으세요?

답)그저 계속 시를 쓸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어떤 식으로든 제가 시에 지친다면 많은 사람들이 쓸쓸해 할 것 같아요. 저도 주변에서 누가 절필한다고 하면 그렇게 쓸쓸할 수가 없더라고요. 시를 쓰고 읽는 사람들은 하나의 종족인데, 자기 종족하나가 죽는 걸 지켜보는 심정이 오죽하겠어요. 올해도 정말 바쁠 것 같습니다. 지켜봐 주세요.

그의 입에선 무수히 많은 말이 쏟아졌다. 전방위적 활동과 비주류 문화에 대한 폭넓은 식견은 그의 본업을 되묻고 싶을 정도였다.

지금 비주류 문화는 숨을 헐떡이고 있다. 자본에 죽거나, 포획돼 근근이 살아가야 할 처지에 놓였다. 시 역시 비슷한 위기를 맞고 있다. 그간 쌓은 문학적 위상에 훨씬 못 미치는 대접은 시를 사망선고 직전까지 몰고 갔다.

 

이런 상황에서 김경주의 전천후 활약은 더없이 반갑다. 언어를 무기로 종횡무진하며 경계를 허무는 모습은 흡사 괴물과도 같다.

독자와 문단은 그 날랜 움직임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열정이 식지 않게 뒤를 든든히 해줘야 한다. 만약 그가 생존의 문제로 또 다시 시가 아닌 야설을 쓰게 된다면, 문학은 서럽게 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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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대욱 기자 purmae33@pimed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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