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젊은작가]④편혜영 "잔혹한 영화 좋아하냐구요?"
[이젊은작가]④편혜영 "잔혹한 영화 좋아하냐구요?"
  • 북데일리
  • 승인 2007.12.03 0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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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데일리는 한국 문학의 부흥을 위해 ‘젊은 작가 인터뷰’ 시리즈를 시작합니다. 다양한 음율, 색채, 목소리를 내고 있는 새내기 작가들과의 `싱싱한` 만남을 통해 우리 문학의 미래를 가늠해 봅니다. - 편집자 주

[북데일리] 편혜영의 소설은 별스럽다. 그녀는 섬뜩함, 낯설음, 기괴함 같은 어두운 심상에 집착한다. 전작 <아오이 가든>(문학과지성사. 2005)에 이어 최근 발표한 소설집 <사육장 쪽으로>(문학동네. 2007) 역시 그렇다.

차이가 있다면 선혈이 낭자하는 잔혹함의 유무다. 신작에서 극단적인 공포와 추함은 한결 수그러들었다. 그래도 여전히 차갑고 서늘하다. 독자가 이를 태연히 읽어 내려면 적잖은 각오가 필요하다.

이런 일관된 영역 구축은 등단 7년 만에 그녀를 독보적인 존재로 만들었다. 한때 유행했던 ‘엽기’ 코드와 맞물려 오해를 사기도 했던 그녀의 작품세계는 이제 ‘불쾌의 미학’이라는 빛나는 수사가 더해졌다.

문학평론가 김영찬은 편혜영의 소설을 두고 “2000년대 한국소설의 새롭고도 개성적인 발성법 하나를 발명했다.”고 평했다. 최근 중앙일보의 한 기사에서는 “몇 년 사이 편혜영은 문단에서 빠뜨릴 수 없는 작가로 거듭났다.”고 전했다.

지난 달 26일 광화문의 한 카페에서 그녀를 만났다. 싸늘한 문장이 준 상상 속의 이미지와 실제 모습은 많이 틀렸다. 그녀의 첫 인상은 산뜻하고 세련됐다.

 

질)한국일보문학상 수상자로 뽑히셨죠. 축하드립니다.

답)고마워요. 처음으로 받는 상인데, 그게 한국일보문학상이라 더 기뻐요. 젊은 작가들에게 따뜻하게 손 내밀어 주는 그런 느낌이랄까. 지금 시기에 받을 수 있어서 다행이다 싶어요.

질)가족들도 많이 좋아하시죠?

답)그럼요. 돈이 생기는데...(웃음) 농담이고요. 많이 축하해줬어요. 특히 남편이요. 남편은 가장 큰 조력자죠. 사실 내 소설은 독자층이 한정돼있는 편이잖아요. 그걸 안타까워하면서 격려를 많이 해줘요. 작품을 완성하면 늘 가장 먼저 읽고 평가도 해주고요. 재미있다고 말해주면 용기를 얻곤 해요. 그런 응원이 큰 힘이 되죠.

질)직장일도 병행하시죠. 힘들지는 않나요?

답)쉽진 않아요. 시간 조절하는 게 특히 그래요. 남들에 비해 시간에 얽매이다보니까 차분하게 쓸 여유가 없거든요. 그래서 긴 호흡을 가지고 써야 하는 글은 힘들어요. 틈날 때 마다 쓰려니까 호흡이 자꾸 끊기거든요. 그나마 다행이건 아무대서나 글을 쓸 수 있다는 거죠. 유난히 장소를 가리는 분들도 많거든요. 약속시간이 남으면 까페에 앉아서 노트북 꺼내놓고도 쓰고, 메모도 자주 해요.

질)그러면 아예 전업 작가로 나서시지 그러세요.

답)글쎄요. 아직까지는 할만 하니까 이러는 거겠죠. 사실 전업을 안 해서 좋은 점도 있어요. 소설에만 너무 집중하면 지나치게 얽매일 것 같아요. 그러면 멀리 떨어져서 소설을 생각할 수 없을 테고, 글 쓰는 걸 절실하게 여기기도 어렵겠죠. 물론 나중에는 전업으로 할 생각이에요. 정확히 언제인지는 모르겠지만 시기를 고르고 있는 중이고요. 그래도 이거 하나는 분명해요. 다른 일을 하지 않는 대신에 정말 열심히 쓸 자신이 있어야 한다는 거죠.

질)소설을 써야겠다는 생각은 언제부터 했어요?

답)뚜렷한 계기는 없었는데, 고등학교 때부터 글 쓰는 직업을 갖고 싶다는 마음이 있었어요. 그냥 막연하게요. 구체적으로 ‘소설을 써야지’하지는 않았어요. 그러다가 서울예전에 입학했고, 본격적으로 소설을 접했죠. 그때부터 재미를 느꼈어요. 하나의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작업이 매력적이더라고요. 그러면서 소설가에 대한 꿈이 구체화 된 거죠.

질)<아오이 가든>도 그랬고, 이번 <사육장 쪽으로>도 그로테스크한 이미지가 많이 나옵니다.

답)이번 작품도 그로테스크한가요? 섬뜩하긴 해도 그 정도는 아닌 줄 알았는데...

질)그 정도면 충분히 기괴하죠. 늑대 옷을 입은 사람이 밤거리를 배회하고, 벌레와 쥐가 온 집안을 돌아다니는데요.

답)소재가 소재이다 보니 그런 이미지들이 형성되는 거 같아요. 첫 번째 책은 시체 이미지가 자주 등장했죠. 시체는 살아있으면서 죽은 것 같은 무기력한 존재에요. 그걸 떠올리면 음습하고 냄새가 나는 장면을 그리게 되는 거죠. 그냥 자연스럽게요. 또 ‘아오이 가든‘에서 보면 아무도 믿지 못하는 상황이 나오는데, 그런 장면을 묘사하다보면 섬뜩하게 표현되고요.

질)왜 그렇게 무거운 소재만 고르세요?

답)작가가 다양한 분위기의 작품을 쓸 수 있다는 걸 보여주는 것도 나쁘진 않겠죠. 한 권의 소설집에 그로테스크, 코믹, 애잔한 느낌 모두를 담아서요. 한 명이 썼는지 두 명이 썼는지 모를 정도로요. 그런데 난 여러 단편을 같은 기조로 묶는 게 좋아요. 독자들에게 컨셉이나 기획의 산물로 보이고, 똑같은 이미지로 남을 수 있게요. 그래서 전작 같은 경우엔 어울리지 않는 몇 작품을 빼기도 했어요.

질)작품 속 인물들이 참 안타까워요. 발버둥 거리다 극단까지 몰리는 게 슬프기도 합니다.

답)다들 열심히 살려고 하다가 안 되니까 불쌍하죠. 하지만 작품을 쓸 때는 거기까지만 생각해요. 섣부른 위로를 하고 싶은 생각은 없거든요. 그러면 모든 소설이 똑같아지잖아요. 위로가 목적도 아니고요. 위로가 필요하면 다른 소설에서도 충분히 찾을 수 있어요. 내 작품이 주변을 환기되는 느낌만 줄 수 있다면 그걸로 족해요. 그래서 실제 그런 상황에 놓인 사람들한테 미안한 마음이 있어요. 너무 암울하고 불행하게만 보는 것 같아서요. 팍팍한 상황에 처해도 소설처럼 항상 어둡지는 않잖아요. 다른 선택도 가능하고요.

질)나중에 아이가 엄마의 그런 소설을 어떻게 받아들일지 생각해 봤나요?

답)한 번도 생각해본 적은 없는데... 그냥 쿨하게 받아들일 수 있으면 좋겠네요. ‘엄마가 재미있는 소설을 썼구나.‘ 이렇게요. 징그럽다는 뻔한 반응을 보이지 않았으면 싶네요. 그렇다고 일부러 읽힐 생각은 없어요. 책을 선택하는 건 아이 자유니까요.

질)독자들이 “작가도 글이랑 비슷할 꺼야.”라고 상상할 텐데 걱정스럽지 않아요?

답)전혀요. 독자는 내 소설을 읽으며 작가 편혜영을 만나는 거지, 한 개인을 만나는 게 아니잖아요. 물론 작품만 보면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긴 하겠지만, 그런 걸 염려하지는 않아요. 가끔 독자들을 만나면 글을 보고 상상했던 이미지랑은 틀려서 놀라는 분들도 있어요. 그런 충돌을 재미있어 하시더라고요.

질)실제 생활은 어떠세요. 작품처럼 살벌하게 살지는 않을 텐데요.

답)그냥 남들과 다를 바 없는 성실한 사회인이에요. 소설처럼 세계관이 암담하지도 않고요. 작품을 쓸 때 필요한 방법일 뿐이지 생활과 일치하지는 않아요. 그래도 세상을 마냥 긍정적으로 보진 않아요. 부정적이고 비판적으로 먼저 생각하는 게 사실이죠. 아름답고 착한 이야기는 별로 좋아하지도 않고요. 성격도 밝은 편은 아니고, 내성적이에요. 낯가림도 심하고요.

질)직장동료들 반응은 어때요?

답)동료들이 재미있어 하고, 신기해 하기도해요. 평범한 직장생활만 보다가 특이한 소설을 읽고는 낯설어 하는 경우도 있고요. 그런데 그것보다는 언제 그렇게 소설까지 쓰는지를 놀라워해요. 드라마를 좋아해서 사람들하고 모이면 꼭 그 얘기거든요. 일하고 드라마까지 챙겨보면서 글까지 쓰는 걸 유별나게 보죠. 항상 물어봐요. 글은 언제 쓰냐고. 그럴 때마다 “마감 때요”. 이렇게 말해요. 가끔 이런 일도 있어요. 종종 엉뚱한 이야기를 할 때가 있거든요. 그럴 때면 보통 농담하듯이 “소설 쓰네” 이렇게 핀잔을 줘요. 그러면 난 이렇게 답하죠. “난 그런 소설 안써.” 그 다음엔 뭐라고 말하겠어요? “아 맞다. 그런 소설 안쓰지.” 이렇게 서로 말장난 하면서 웃어요.

질)드라마 말고 다른 취미는 없나요?

답)강연 가면 학생들이 많이 물어보는 질문인데요. 정말 무취미에요. TV보고, 사람들 만나고, 쇼핑도 하면서 그렇게 평범하게 지내요. 영화도 가끔 보는데 좋아한다는 말은 안 해요. 요즘은 다들 전문적인 시각으로 감상해서 그렇게 말하기가 꺼려져요.

질)혹시 영화도 잔혹한 장면 좋아하세요?

답)많은 분들이 그렇게 예상해요. ‘전기톱 살인사건’같은 영화 좋아하겠구나 하고요. 그런데 사실 피 튀기고 사지가 잘리는 영화는 싫어해요.

질)그건 정말 의외네요.

답)그렇죠. 공포물을 안보는 건 아닌데, 헐리우드식의 하드고어나 일본 괴기물의 잔인한 장면에서 카타르시스를 느끼진 않아요. 오히려 한국식의 귀신 나오는 영화가 좋아요. ‘아카시아’에서 붉은 실타래를 풀어놓는 그런 이미지도 마음에 들고요. ‘킬 빌’처럼 속 시원하게 싸우는 영상에서 신체가 절단되는 장면도 나쁘진 않아요. 근데 공포 영화에서 극단적으로 보여주는 시각적 표현은 별로에요.

질)장편 준비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답)여기저기 말하고 다녀서 걱정이에요. 시작은 했는데 아직 많이 쓰진 못했어요. 내년 발간을 목표로 하고 있어요. 쓰다가 내용이 바뀔 수도 있어서 아직 이렇다고 말할 수준은 아니에요.

질)계획이나 포부가 있다면 들려주세요.

답)거창한 건 없고요. 계속 소설을 쓰고 싶어요. 앞으로 어떤 걸 쓸지는 모르겠지만, 정말 늘 즐겁게 했으면 좋겠어요. 소설을 쓰는 게 힘들고 괴로우면 오랫동안 많이 쓸 수 없잖아요. 상에 연연하지 않고 꾸준하게 열심히 쓰려고 합니다.

말끔한 인상과 정돈된 말은 ‘사무원’이라는 그녀의 직업과 어울렸다. 하지만 따뜻함이 배어있는 목소리와 작품에 대한 확고한 신념은 영락없는 작가의 모습이었다.

한국 문단에 편혜영이 있음은 행운이다. ‘다양성’이라는 이름 석 자를 세우는데 튼실한 버팀목이 되어줘서다. 지난 7년간 그녀는 꿋꿋이 자신만의 빛을 발하며,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공간을 지어냈다.

언제든지 열려있는 그 곳에 들러보자. 그녀가 내오는 별미를 맛볼 수 있다. 비록 달지는 않지만 씹을수록 배어나오는 독특함에 취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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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대욱 기자 purmae33@pimed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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