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젊은작가]⑦김경욱 "물음표 던지는 소설 쓸 터"
[이젊은작가]⑦김경욱 "물음표 던지는 소설 쓸 터"
  • 북데일리
  • 승인 2008.01.21 10:3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북데일리는 한국 문학의 부흥을 위해 `젊은 작가 인터뷰` 시리즈를 시작합니다. 다양한 음율, 색채, 목소리를 내고 있는 새내기 작가들과의 `싱싱한` 만남을 통해 우리 문학의 미래를 가늠해 봅니다. - 편집자 주

[북데일리] 소설가 김경욱은 변신에 능하다. 예상치 못한 소재를 ‘쓱쓱’ 버무려내는 젊은 작가다. 그는 1993년 ‘작가세계’ 신인상에 중편소설 ‘아웃사이더’로 등단했다. 이후 장편 <아크로폴리스>(세계사. 1995)를 시작으로 약 15년간 8권을 책을 내며 다양한 이야기를 선보였다.

특히 2000년대를 기점으로 작가는 널뛰듯 영역을 확장했다. 먼저 역사추리소설 <황금사과>(문학동네. 2002). 문단내에서는 흔치 않은 배경. 중세를 무대로 사실과 상상력을 버무렸다.

소설집 <누가 커트 코베인을 죽였는가>(문학과지성사. 2003)와 <장국영이 죽었다고?>(문학과지성사. 2005)에서는 다시, 현실에 안착했다. 약 천년전 서양의 공포를 바라보던 눈은 현대 사회의 병폐를 낮고 차갑게 노려봤다.

이어 올해 출간된 <천년의 왕국>(문학과지성사. 2007)에서 400여 년 전의 조선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곳에서는 네덜란드에서 온 벨테브레(박연)의 모습으로 이방인의 고독을 노래했다.

이런 그가 현대의 한 개인으로 돌아왔다. 단편 ‘99%’를 통해서다. 얼마 전 유행했던 카카오 함량 99% 초콜릿을 소재로 한 이작품은 “현실은 없고 오직 환상들의 변신만이 연속되면서 현실을 대신하는 이야기”라는 평가를 받으며 제53회 현대문학상을 수상했다. 2004년 제37회 한국일보문학상에 이은 두 번째 쾌거다.

이 변신의 귀재를 홍대 인근 카페에서 만났다. 말끔한 옷차림만큼이나 정돈된 말투였다.

질)이번 수상 축하드립니다. 기분이 어떠세요?

답)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2004년에 한국일보문학상을 받았을 때와는 느낌이 틀려요. 다시 한 번 자신을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고 할까요. 이 시대에 작가로서 살아가는 게 어떤 의미고, 앞으로 무슨 글을 써야 할지를 진지하게 생각하게 됐어요.

질)그러면 결론을 냈나요?

답)글쎄요. 앞으로 작품을 읽어보면 알게 될 겁니다. 작가는 말을 아끼고 글로 이야기해야 맞지 싶어요. 먼저 말해버리면 독자들은 싱거워할 수도 있잖아요. 생각지도 못한 작품으로 의외성을 주는 게 좋습니다. 조금만 기다려 주시면 소설로 지금의 다짐, 각오, 변화를 확인할 수 있을 겁니다.

질)이번 작품 99%는 어떤 소설인가요?

답)광고 회사에 한 엘리트가 영입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에요. 그의 과거 경력에 의심을 품는 주인공 ‘나’의 모습을 그렸죠. 하지만 소설의 의도까지 말하고 싶지는 않아요. 작품은 작가의 손을 떠나 독자 앞에 서는 순간, 별개의 운명을 가진 존재가 되거든요. 독자들이 다양하게 해석을 해주길 바랍니다. 그러면 한 작품이 여러 가지 색깔을 갖게 되거든요. 결국 작품을 완성시키는 건 독자라고 생각합니다.

질)지금까지 써낸 단편의 흐름을 보면 갈수록 어조가 누그러지는 인상입니다.

답)삶이 변해서겠죠. 글이라는 건 작가의 변화를 그대로 보여주거든요. 먼저 결혼을 했어요. 직장도 새로 얻었고(한국예술종합학교 서사창작과 교수), 울산에서 서울로 이사도 했죠. 특히 함께 사는 사람이 있으니까 정서적으로 안정이 되는 것 같아요. 나이를 먹으면서 관대해지기도 했고요. 그래서 글도 예전보다 여유로워진 게 아닐까 싶네요.

질)작품의 스펙트럼이 넓습니다. 비결이 있을까요?

답)아무래도 독서겠죠. 예전에는 음악이나 영화에 관심이 많았어요. 이걸 소재로 소설도 많이 썼고요. 지금은 엉덩이를 붙일 공간만 있으면 책을 읽어요. 문학은 물론이고, 역사, 철학, 자연과학, 인문과학까지 다양하게 보려고 해요. 폭을 넓히고 싶거든요. 최근 <천년의 왕국>도 하멜의 보고서를 읽다가 쓰게 됐어요. 책에서 아이디어와 영감을 많이 얻는 편입니다.

질)예전에 작가라면 대중문화를 해석해야 한다고 말했는데요.

답)소설은 당대에 대한 해석이라고 생각합니다. 작가는 살아가고 있는 시대와 사회를 통찰할 수 있어야 해요. 그러려면 대중문화를 읽어내야겠죠. 현재의 욕망이 집약된 게 대중문화거든요. 그래서 관심이 많습니다. 꼼꼼하게 보려고 하죠. 이번 99%같은 경우엔 사람들 사이에서 인기가 있다는 현상을 매체를 통해 접했어요. 왜 사람들이 쓰디 쓴 다크 초콜릿에 열광을 하고, 이면에는 어떤 욕망과 사회적 맥락이 깔려 있는지 궁금했어요. 이렇게 출발해서 상상을 하고 소설이라는 결과물을 만드는 거죠.

질)주로 어떤 방식으로 접하나요?

답)텔레비젼이나 신문, 인터넷을 많이 봐요. 학생들이 뭐에 관심이 있는지 이야기도 종종 하고요. 그런데 요즘 유행하는 미니홈피나 블로그를 하지는 않아요. 직접 경험하지도 않으면서 어떻게 트렌드를 읽어낼 수 있을까라고 반문할 수도 있는데, 오히려 반대에요. 거리를 두는거죠. 이면의 의미를 캐내는 데는 더 유리하다고 생각합니다. 통찰에 필요한 최소한의 거리인 셈이죠.

질)그런 말도 했었죠? 배고플 각오로 순수문학의 길을 가야한다고.

답)취지는 소설만이 가능한 이야기를 해야 한다는 거였어요. 소설은 영화나 드라마에 비해 자본의 제약이 덜하잖아요. 그만큼 자유롭다는 거죠. 그러면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해야죠. 역량의 최대치를 투입해서요. 그래서 질문을 던지는 소설이 많이 나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문제는 그런 소설은 독자를 불편하게 한다는 거죠. 당연히 수십, 수백억이 투자되는 영화에서 하기는 힘들고요. 하지만 적어도 소설만큼은 그렇게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질)그러다 독자에게 외면 받을 수도 있지 않을까요?

답)많은 독자들이 읽으면 행복하겠죠. 그렇다고 해서 자기 뜻을 바꿔야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사실 독자들 반응을 생각하고 쓴다고 해서 잘 팔리는 것도 아니거든요. 창작자라면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는 게 기본적인 태도가 아닐까 싶어요.

질)평소에도 그렇게 뚝심 있게 사는지.

답)삶이라는 게 늘 갖고 있는 불안과 두려움에 맞서는 거 같아요. 실존주의자들이 이렇게 말했잖아요. 존재한다는 것 자체가 불안이고 두려움이라고. 살아가는 동안은 계속 그러겠죠. 중요한 건 대면했을 때 도망가지 말고 똑바로 바라보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이건 글을 쓸 때도 마찬가지에요.

질)글은 언제부터 썼나요?

답)등단을 대학교때 했어요. 그 전까지는 글을 쓰겠다는 생각은 안 해봤어요. 글에 대한 욕심도 없었고, 책도 별로 안 읽었어요. 대학에 들어가서야 보기 시작했죠. 영문과였는데 특별히 문학에 대한 관심도 없었고요. 입학을 하니까 힘들더라고요. 중, 고등학교 때는 빡빡한 제도권에 갇혀서 자신에 대한 생각을 해볼 여유가 없잖아요. 그런데 대학에 오니까 시간이 많아지더라고요. 공백이 생긴 거죠. 그러다보니 생각이 지나치게 많아져서 방황을 했어요. 길을 찾아보려고 책에 손을 댔고요. 그때 읽은 게 까뮈, 쿤데라의 작품이었어요. 이런 세계가 있구나 싶었죠. 그러다 어느 순간 뭔가를 쓰고 있는 자신을 봤어요.

질)너무 이른 나이에 데뷔해서 안 좋았던 점도 있나요?

답)20대에 책을 너무 많이 냈다는 거요.(웃음) 예전 글을 읽으면 얼굴이 붉어져요. 어렸을 때의 치기가 보이거든요. 그때는 왜 그렇게 할 얘기가 많았을까 하는 생각도 들고요. 그래도 그때 쓴 글을 부끄러워하지는 않아요. 미숙했던 시절에 솔직하게 드러낸 글이잖아요. 그 나이가 아니면 쓸 수 없는 그런 글이에요. 의미가 있는 거죠.

질)등단 이후로 계속 써야겠다고 결심한건가요?

답)그렇죠. 무언가를 쓰고 있는 나를 발견했을 때 마음이 평화로웠어요. 그때 깨달은 거죠. 무엇을 하면 즐거운 건가를요. 창조를 하는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결심하게 됐어요. 그래서 젊은 친구들한테는 늘 그런 말을 해요. 학교에서 배우고 해볼 수 있는 건 다 해보라고요. 자신이 누구며, 무엇을 해야 즐거울 수 있는지만 안다면 많은 걸 배운 거라고 이야기해요.

질)학생들하고 접촉이 많아 보여요.

답)이야기를 많이 하는 편이죠. 학교에서는 함께 책을 읽고 토론도 자주 하거든요. 그때 많이 배워요. 생각지도 못한 이야기를 학생들이 하거든요. 그래서 내가 일방적으로 가르친다는 생각을 절대 하지 않아요.

질)글쓰기와 병행하려면 힘들 것 같은데요.

답)그렇지는 않아요. 물론 절대적인 시간은 부족하죠. 그래도 지금 강의한지가 오래되서 몸에 익숙해진 거 같아요. 학생들과 이야기하고 따로 글을 쓰는 리듬이 몸에 밴 거죠. 또 시간이 넉넉하다고 해서 많이 쓰거나 글이 좋아지진 않거든요. 가끔 체력적으로 힘들 때도 있습니다. 그럴 때는 집에서 멍하게 스타크래프트 채널을 봐요. 정신을 무장해제 하는 거죠. 주말에 핸드폰을 꺼놓고, 인터넷이나 TV를 안보는 날을 따로 정해놓고 생활하기도 해요. 얽매이는 걸 줄이는 거죠. 그렇게 여백을 가지면 도움이 됩니다.

질)독서 인구가 많이 줄었습니다. 이유가 있을까요?

답)즐길 수 있는 다른 매체가 많아진 것 같아요. 지하철만 봐도 책 읽는 사람 찾기가 힘들어요. 요즘엔 걸어 다니면서 TV까지 볼 수 있는 세상이죠. 삶이 번잡하고 힘들어진 점도 들 수 있겠죠. 사실 독서라는 게 다른 거에 비해서 진지하고 심각한 행위잖아요. 많이 힘들어하는 거 같아요. 편하고 무겁지 않은 걸 선호하는 거죠.

질)젊은 작가들이 독자들과 만날 기회가 적은데요.

답)작가는 혼자 글을 쓰는 것 같지만 중요한 건 독자와의 소통이에요. 평가받을 기회조차 얻지 못하는 현상은 없어야 하죠. 문학의 가장 큰 미덕은 다양성입니다. 그래야 문학이 건강해져요. 쏠림 현상이 생기면 위험하죠. 나이와 상관없이 새로운 세계를 열어가고 자기 목소리를 내는 작가들에게 독자들과 만날 기회를 자주 줘야 해요.

질)다음 작품도 장편인가요?

답)소재를 찾는 중이에요. 올 봄에 그동안 썼던 단편을 모은 창작집이 먼저 나올 예정이에요. 그 다음에는 다시 장편으로 만날 계획입니다.

질)어떤 소설가로 남길 바라는지 듣고 싶어요.

답)작가에게 가장 큰 칭찬은 ‘옛날보다 나아졌다’라는 말 같아요. 항상 스스로 자기 갱신을 하려고 합니다. 그래서 최근작이 대표작이 될 수 있는 작가가 되고 싶어요.

‘청산유수’. 그의 언변에 어울릴만한 말이다. 단절 없이 시원하게 흘러가는 이야기는 ‘소설가이기 전에 교수’라는 직분을 실감케 했다. 특히 자신의 작품세계와 삶의 태도에 대한 생각에서 보다 견고하고 자신감 있게 이어졌다.

이따금 독자들은 “한국문학은 외국문학에 비해 다양성이 부족해 재미없다”고 말한다. 일견 맞는 이야기다. 하지만 조금만 눈을 돌려 젊은 작가들의 작품을 살펴보면 상황은 틀려진다. 저마다의 손놀림으로 빚어낸 새롭고 독특한 소설이 많다. 아직 덜 알려져 만나지 못했을 뿐이다.

김경욱의 작품 역시 그 중 하나다. 오늘도 그는 부지런히 책장을 넘기고, 주변을 둘러본다. 새로운 가면을 찾기 위해서다. 이런 노력이 빛을 발할 소통의 장이 보다 넓혀져야 한다. 다른 신진작가들에게도 마찬가지다. 그래야 문단의 생동감이 죽지 않는다.

 

  • [이젊은작가①] 김애란 "진정성이 담긴 글 써야죠"
  • [이젊은작가②] 정한아"뜨거운 내 청춘... 빨리 갔으면..."
  • [이젊은작가③] 박금산 "노벨상 주면 거절은 않겠어요"
  • [이젊은작가④] 편혜영 "잔혹한 영화 좋아하냐구요?"
  • [이젊은작가⑤] 이기호 “시간의 검증 통과한 작품 읽어라"
  • [이젊은작가⑥]“반복하라 김연수처럼”
  • [이젊은작가⑧] 김경주 "굴욕적 알바, 날 성장시켜"
  • [이젊은작가⑨] 김미월 "상처입은 사라에 왜 끌리죠?"
  • [이젊은작가⑩] 신용목 "시인의 눈은 별, 발은 땅에..."
  • [이젊은작가⑪] 김사과 "실험, 지금부터가 시작"
  • [이젊은작가⑫] 유광수 "장르소설 미덕은 대중과 호흡"

    [김대욱 기자 purmae33@pimedia.co.kr]

     

  • 화이트페이퍼, WHITEPAPER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