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젊은작가]⑫유광수 "장르소설 미덕은 대중과 호흡"
[이젊은작가]⑫유광수 "장르소설 미덕은 대중과 호흡"
  • 북데일리
  • 승인 2008.03.31 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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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데일리는 한국 문학의 부흥을 위해 `젊은 작가 인터뷰` 시리즈를 시작합니다. 다양한 음율, 색채, 목소리를 내고 있는 새내기 작가들과의 `싱싱한` 만남을 통해 우리 문학의 미래를 가늠해 봅니다. - 편집자 주

 

[북데일리] 지난해 출범한 제1회 대한민국뉴웨이브문학상의 경쟁은 치열했다. 6개월간 투고된 작품만 무려 335편. 기존 장편 공모전의 2배가 훌쩍 넘는 열기였다. 새로운 소재와 형식으로 무장한 응모작들은 3개월에 걸쳐 각축을 벌였다. 신인은 물론 기성작가까지 가세한 진검승부였다.

<진시황 프로젝트>(김영사. 2008)의 유광수는 이 사상 전례 없는 혈투에서 최후까지 남은 생존자다. 이 걸출한 신인의 작품은 소위 말하는 장르소설, 즉 대중문학이다.

한때 순수문학의 울타리 밖에서 싸구려로 폄하되던 무협, 팩션, SF, 추리, 판타지가 바로 장르소설이다. 지금은 사정이 달라졌다고 하지만, 예술성과 작품성을 거론할 때 장르소설은 여전히 논외의 대상이다. 독자와 평단의 색안경은 아직 공고하고 꿋꿋하다.

그러나 이 신인의 작품은 기존의 편견을 좀 더 거두고 바라볼 필요가 있다. 한국소설의 지평을 넓힐 단초를 제공해서다.

한중일을 넘나드는 거대한 스케일, 치밀한 구성, 허를 찌르는 반전이 특히 그렇다. 탄탄하게 엮인 사건과 인물간의 갈등은 지루할 틈을 주지 않는다. 여느 외국 소설 못지않은 즐거움이다. 여기에 극단적 민족주의와 인종주의에 대한 경고를 슬며시 집어넣으며 맹목적인 재미 추구에 적당히 선을 그었다.

그래서일까. 소설가 복거일, 구효서, 성석제. 김탁환, 문학평론가 강유정 등으로 이루어진 심사위원단은 찬사로 환대했다.

“이 작품의 가장 큰 장점은, 우리 시대의 세계문학과 공통의 주제를 갖고 있다는 점이다. 한국문학도 이제는 우리만의 잔치에서 벗어나 세계문학과 더불어 호흡하고 고뇌해야 하는 이 시점에, <진시황 프로젝트>는 하나의 가치 있는 시도이자 좋은 시발점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최근 그가 출강하는 연세대학교를 찾았다. 소설쓰기와 문화컨텐츠에 대한 다양한 생각을 들어볼 수 있는 자리였다.

질) 수상 축하드립니다. 좋으시죠? 상금도 1억원이나 되는데요.

답) 사실 부담이 더 커요. 1회라는 게 상징적 의미가 크잖아요. 앞으로 더 훌륭한 분들이 계속 수상할 텐데 제가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차라리 중간에 받았으면 그분들 틈에 묻어갈 수 있을 텐데 말이에요. 그래서 더 잘 써야 겠다는 생각을 많이 해요. 상금은 빚 갚고, 여기저기 조금씩 수상턱을 내고 하니까 남는 게 별로 없네요.

질)주변 반응은 어떤가요?

답) 학생들은 신기해하죠. 매일 보던 사람이 갑자기 신문에 나오니까요. ‘문화컨텐츠와 창조적 상상력‘이라는 강의를 하는데 늘 이런 이야기를 했어요. “우리가 일본, 미국 소설을 많이 읽는데, 우리라고 못하겠느냐, 할 수 있다“고요. 대부분 스스로를 비웃었을 겁니다. ”에이, 우리가 어떻게“ 라면서요. 아마 동기부여가 많이 됐을 것 같아요. 다른 주변 사람들은 많이 의아해 하더라고요. 제가 고전문학 전공자거든요. 고전 문학하는 사람이 소설 쓸 거라고는 아무도 생각 안하잖아요.

질) 언제부터 준비한 작품이죠?

답) 한 2년 정도 쓴 소설인데, 어디에 내려고 시작한 건 아니에요. 이런 소설이 필요하지 않을까, 혹은 대세가 되는 시대가 올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 썼죠. 꼭 그렇지 않더라도 그냥 하고 싶은 걸 하면 된다는 마음이었어요. 재미있었으니까요. 그러다가 작년 3월에 뉴웨이브문학상 공고가 났어요. 그때 "아! 이건 내가 쓰는 소설과 맞겠다“ 싶어서 박차를 가했어요. 그래서 빨리 탈고 하고 계속 수정을 했어요.

질) 소설만 10년 정도 썼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답) ‘죽어라’ 쓴 건 아니에요. 응모가 목적은 아니었고, 혼자 즐기는 식이었어요. 장편만 여러 편 썼는데 거론할 수준은 아니에요. 말 그대로 습작이죠. 차후에 보강해서 발표해 볼 생각은 있어요.

질) 10년 전이면 학생이었겠네요.

답) 그렇죠. 학부 때도 쓰긴 했는데, 석사 하면서 본격적으로 시작했죠. 작가가 되겠다는 생각은 없었어요. 전공도 국문학 자체를 공부하겠다는 마음으로 선택한거고요. 소설을 쓴 건 재미 때문이었어요. 또 공부하는데 도움도 됐고요. 소설 연구하는 사람한테는 작가가 어떤 입장에서 작품을 쓸지 아는 건 아주 중요하거든요. 소설가들은 어떻게 창작을 할까 고민하던 와중에 직접 한번 해보는 게 좋은 방법이겠다 싶었어요.

질) 공부까지 병행하려면 힘들지 않나요?

답) 육체적으로 많이 힘들죠. 정말 바쁘거든요. 강의하고 공부에, 학생들 채점, 논문도 써야 하고, 영화 보고, 유행하는 소설도 읽고 분석하려면 몸이 열 개라도 부족하죠. 아프기도 했어요. 꼭 소설 때문에 그런 건 아닌데, 작년에는 한 2주 정도 허리가 아파서 걷지도 못했어요. 고생했죠. 지금은 훈련이 된 상태에요. 시간을 최대한 절약해서 쓰는 게 몸에 익었죠. 그래서 일하는 틈틈이 쓰고 있어요.

질) 왜 그렇게 아프면서까지 소설을 썼어요?

답) 좋으니까요. 포기 할 수 없겠더라고요. 연구하고 작품 쓰는 일이 기막히게 재미있어요. 해야 할 게 많은데도 그것만 생각하면 막 흥분이 돼요. 가끔 몸이 제동을 거니까 아쉽죠. 그래서 몸 관리를 꾸준히 해요. 수영을 한지 6년 정도 됐어요. 언젠가 혈압이 문제가 돼서 너무 아팠어요. “이러다 죽겠구나“ 싶어서 시작했어요. 매일 저녁에 학교수영장가서 1시간 반 정도 하고 와요.

질) 책은 얼마나 읽어요?

답) 정확히는 모르겠어요. 공부 때문에 읽는 거 빼곤 일주일에 두 권 정도 봐요. 22살 때 교회에서 들은 특강 이후로 책을 많이 읽었어요. 어떤 목사님이 책을 만 권 정도 가지고 있다고 하시더라고요. 그 중에 반만 봐도 5천 권이잖아요. 거기서 가만히 헤아려봤어요. 여태 얼마나 읽었는지요. 근데 100권이 안되더라고요. 명색의 국문학관데 심각하다는 생각을 했죠. 그 때부터 최소 일주일에 한 권씩은 읽자는 결심을 했어요. 그러다보니 1년에 100권 이상씩은 보게 되더라고요.

질) 주로 어떤 장르를 많이 봤어요?

답) 초등학교 때부터 추리소설을 좋아했어요. 탐정이 되고 싶었거든요. 어떤 교수님이 교양국어 1학년 때 이런 말씀을 했어요. “진짜 문학을 하려면 고전부터 쓰레기 저질 포르노소설까지 두루두루 읽을 수 있어야 한다”고요. 그러지 않으면 문학이 뭔지 알 수 없고, 자기만의 문학관도 세울 수 없다고 하셨어요. 다른 건 다 까먹어도 그 말만큼은 기억이 생생해요. 그 분 덕에 닥치는 대로 읽을 수 있었어요. 추리소설, SF, 무협지 등 가리지 않았어요. 물론 순수문학도 많이 봤죠. 지금은 스티븐 킹 작품을 가장 좋아해요. 헌책방 돌아다니면서 절판된 책을 구하러 다닐 정도로요. 글쓰기를 정말 좋아하는 사람이구나 하는 생각을 해요. 요즘 전작이 나오고 있어서 얼마나 좋은지 몰라요.

질) 장르소설의 미덕이 뭐라고 생각하세요?

답) 대중과 호흡해야 하는 것 아닐까요. 보통 그게 쉬울 거라고 생각하지만 직접 해보지 않으면 모른다고 생각해요. 사실 대중성을 폄하하는 경향이 있잖아요. 이건 과거에도 그랬고, 앞으로도 영원하지 않을까 싶어요. 뭐든 민주화, 저변화, 대중화 되면 효용성과 세련미는 떨어진다고 여기니까요. 그래도 대중성을 갖추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에요. 의미 있는 일이고요. 또 시대에 따라 대중소설의 가치는 틀려질 수 있어요. 과거 춘향전이 음란소설이었지만 지금은 고전의 위치에 있잖아요. 제가 박사논문으로 쓴 옥루몽의 경우도 최고의 흥미성과 대중성을 가진 고전소설이에요.

질) <진시황 프로젝트>는 반전이 유독 많은 작품입니다.

답) 문학분석을 할 때 구조분석을 많이 해요. 작품 속에 디테일하게 녹아든 작가적 고안 장치나 어떻게 구조를 짜서 감성을 자극에게 만들었는지 같은 걸 연구하는 거죠.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제 소설에도 반영 됐죠. 반전을 극적으로 하기 위해서 의도적인 표현과 장치를 뒀어요. 사실 반전이라는 게 갑자기 말도 안 되게 하면 안 되잖아요. 영화 ‘식스센스’처럼 사전에 단초를 주고 그걸 제대로 찾지 못했다는 것에 대한 쾌감을 느끼게 만들어야죠. 속았다는 느낌을 주는 건 반전이 아니에요. 그래서 장면에서 나오는 장황한 설명이 쓸데없는 게 아니에요. 나중에 설득력을 주려고 의도적으로 집어넣었어요.

질) 재미적인 측면이 강하니까 민족주의나 인종주의 같은 문제제기는 좀 묻힙니다.

답) 그건 발견의 즐거움이라고 생각해요. 재미있는 걸 읽으면서 그런 문제를 전면에 드러내는 건 우습지 않을까요. 한중일 3국의 우익이 등장하는데, 일단 눈에 보여서 대결구도로 가면 승부가 나야 하잖아요. 누가 옳고 그른지, 얼마나 해악이 되는지요. 그런데 밑에 깔아두면 더 크게 느낄 수 있어요. 그 위험성을요. 이런 걸 찾아내는 건 이 책을 읽는 또 다른 재미죠. 사실 겉으로 내놓는 건 어렵진 않아요. 다만 그렇게 되면 의도와는 다르게 되잖아요. 작품에 흐르듯이 나오게 하고 싶었어요.

질) 영화나 드라마로 만들자는 제의는 없었나요?

답) 수상하고 나서 출간되기도 전에 제의가 많았어요. 그런데 작품 나오고 이야기하자고 주최 측에서 보류했어요. 이제 진행 중이에요. 드라마, 영화, 뮤지컬 등으로 다양하게 재탄생 되리라 봅니다. 실제 대화가 크게 진척된 것도 있어요.

질) 애초에 그런 걸 생각하고 썼나요?

답) 그렇죠. 재가공 쪽에 승부를 걸고 싶었어요. 우리의 스토리텔링과 문화를 세계적으로 알리려면 영화, 드라마, 애니메이션 같은 다른 장르로 가야한다고 생각하거든요. 또 원래 컨텐츠를 변형시키는 작업에 관심이 많아요. 학교에서도 그런 걸 가르치고요.

질) 혹시 영화로 만들 때 주인공으로 어울린다고 생각하는 배우가 있나요?

답) 개인적으로는 있지만 밝히기는 어렵습니다. 영화를 만드는 분들의 상상력이 따로 있잖아요. 그걸 구체화 시키는 게 드라마나 영화에요. 그런데 제가 말해버리면 선입견이 될 수 있고, 그 분들이 가진 상상력의 얼개를 흔들어 버릴 수 있어요. 나중에 작업할 때도 터치할 생각은 전혀 없습니다. 그건 호흡이 아니에요. 내가 만든 거니까 따르라고 하는 건 옳지 않죠. 애초에 제가 의도한 거랑 달리 만들어질 수도 있어요. 그래도 그것 나름대로 의미와 재미가 있겠지 싶어요.

질) 학자와 소설가 중 어떤 직업에 더 애착이 가나요?

답) 둘 다 열심히 하고 싶어요. 많이 부족해서 갈 길이 멀긴 하지만요. 사실 욕심을 하나 더 내고 싶어요. 문화산업이요. 외국에서 만들어진 영화나 만화에서 잘 알려지지 않은 가치를 가져오고 리모델링해서 완전한 새 제품을 만들어내는 일을 했으면 해요. 그래서 지금도 늘 보면서 연구해요. 어떻게 해야 통하는지요. 그러려면 문화적 전통, 미적 베이스, 그들의 사고를 익히고 공부해야죠.

질) 1회 수상자로서 앞으로 뉴웨이브문학상에게 바라는 점이 있을 것 같은데요.

답) 일본의 나오키 상 수준 이상의 작품과 작가를 발굴했으면 합니다. 물론 그럴 수 있으리라 믿고 있어요. 제 작품이 그 수준에 올라있다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미래에 대한 바람이에요. 단순히 대중적이지만은 않은, 삶을 녹여내는 작품이 이 상을 통해서 많이 나왔으면 좋겠어요.

질) 어떤 작가로 남고 싶은지 듣고 싶습니다.

답) 내 자신이 재미있어하는 소설가가 되어야겠죠. 지금 수준에서 최선을 다했다는 작품을 쓰고 싶어요. 떠밀려서 양산하는 게 아니라. 더 이상은 못 하겠다 할 정도로 최선을 다하는 거요. 걱정스러운 점도 있어요. 제 취향과 세련미를 생각하다가 대중과 유리될 수 있잖아요. 이해받지 못하는 걸 대중이 무지하다고 말하는 건 폭력적이지 싶어요. 늘 대중과 같이 호흡하고 작품과 전반적인 대중의 수준이 함께 올라가는 게 옳다고 생각해요. 그러려면 저 스스로도 노력을 많이 해야겠죠. 열심히 하겠습니다. 지켜봐 주세요.

작가는 쉴 새 없이 많은 말을 쏟아냈다. 정연한 논리에 역사와 예술을 아우르는 답변이었다. 공부를 향한 열정이나 문화컨텐츠에 대한 깊은 식견, 각종 분야를 파고드는 관심은 강단과 연구실에서의 그의 모습을 짐작케 했다.

‘원 소스 멀티 유스(one source multi-use)’의 시대다. 누구도 양질의 컨텐츠가 한 곳에 묶이기를 바라지 않는다. 장르간의 벽과 그 안에서의 고립은 더 이상 환영받지 못한다.

유광수의 출현은 그래서 반갑고 의미 있다. 2차 생산에 대한 그의 폭넓은 이해와 적극성은 한국문학의 새로운 활로를 뚫는 촉발제가 될 수 있다. 물론 그러기 위해서는 그 자신의 꾸준하고 성실한 저작활동이 담보돼야 한다. 다른 작가들 역시 마찬가지. 각 분야의 지원과 관심도 필수적이다.

소설가 유광수는 이제 시작이다. 앞으로 그가 문화산업 확장의 선봉이 될 지는 아직 미지수다. 하지만 첫 작품에서 보여준 기획력과 상상력, 야심은 기대를 갖게 만든다. 눈 부릅뜨고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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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대욱 기자 purmae33@pimedia.co.kr] (사진 - 김대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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