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속의 지식] 정조가 사랑했던 주막 일꾼 ‘왕태’
[책속의 지식] 정조가 사랑했던 주막 일꾼 ‘왕태’
  • 박세리 기자
  • 승인 2016.05.03 16:2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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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엔터테이너> 정명섭 지음 | 이데아

[화이트페이퍼=박세리 기자] 학문을 사랑했던 조선 제22대 왕 정조, 조선 27명 왕 가운데 유일하게 문집을 남긴 인물이다. 특히 신분 고하를 막론하고 인재를 등용한 파격인사를 실천한 왕이다. 정조가 사랑했던 주막 일꾼 ‘왕태’와 관련한 이야기도 학문을 사랑한 그의 성정에서 비롯됐다.

왕태는 당시 주막에서 일하는 일꾼 ‘중노미’였다. 끼니를 거르지 않게 숙식을 제공하는 정도로 보수를 대신하는 직업이다. 특이하게도 그는 글을 사랑했다. 중노미 노릇을 하면서도 아궁이 불빛을 전등 삼아 ‘서경’을 읽는 문학도였다.

그러던 어느 날 달빛 아래서 글을 읽던 중 정조의 총애를 받던 관리 윤행임의 눈에 띈다. 윤행임은 왕태와 몇 마디 나누던 중 그가 왕한상이라는 시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알고 보니 왕태가 왕한상이라는 필명으로 쓴 시가 명성을 떨치고 있었던 것.

윤행임은 그를 정조에게 데려간다. 정조는 그에게 시를 짓도록 했고, 왕태는 그 자리에서 멋진 시를 지었다. 그 길로 정조는 왕태를 장용영(壯勇營)의 서리(書吏)로 임명한다. 비록 말단 하급이긴 하지만 사실상 발탁인사였다. 게다가 정조는 특별히 그에게 시험을 치르는 대신 시 한수 짓는 것으로 시험을 대체했다.

그에 대한 정조의 사랑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이후에도 그를 불러 시를 듣고 많은 상을 내렸고 얼마 후에는 성균관 소소 교육기관인 중부학당의 학생으로 삼았다. 양반 제자만 들어갈 수 있는 학당의 학생으로 삼는 파격적인 혜택을 줄 정도로 그를 특별히 아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조선의 엔터테이너>(이데아.2015)는 정조가 먼저 죽은 이후로도 왕태는 시인의 삶을 살았다고 전한다. 아궁이 불빛에 글을 비춰보던 중노미 왕태의 열정도 대단하지만, 그런 인재를 인정하고 가까이에 둬 재량을 펼칠 수 있도록 조치한 왕의 덕목도 돋보인다.

자고로 지도자의 덕목 중 ‘명(明)’은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정사에서 밝게 듣고 밝게 보는 것 즉, ‘明’이야말로 임금다움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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