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속의 명문장] 안도현 “석류나무는 밥 냄새 맡고 자라”
[책속의 명문장] 안도현 “석류나무는 밥 냄새 맡고 자라”
  • 정미경 기자
  • 승인 2015.11.05 07:4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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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이트페이퍼=정미경 기자] 빠알갛게 속살을 드러내는 석류를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입에 침이 고인다. 그 붉은 빛과 향은 매혹적이다 못해 탱고 춤을 추는 화려한 여인네가 떠오르기도 한다.

안도현 시인은 <사람 사람>(신원문화사. 2015)이라는 산문집에서 석류이야기를 통해 어머니와 자식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역시 시인은 다르다.

“어머니는 석류나무를 가리켰다. 얘야, 석류나무는 부엌 앞에다 심는 거란다. 그래요, 옛날 우리 외갓집 부엌 앞에도 석류나무가 하나 있었지요? 그랬었지. 옛날 어른들이, 석류나무는 밥 냄새를 맡아야 열매가 잘 열린다, 이렇게 말씀하셨는데 그 이유가 뭘꼬?

문득 내 머릿속에 파란 불이 켜졌다. 나는 이따금 어머니로부터 노트에 적어 두고 싶은 이야기를 들을 때가 있다. 이번에도 나는 궁금해졌다. 석류나무가 밥 냄새를 맡고 자란다고 한 이유가 뭘까요? 글쎄다. 아주 옛날에 들은 말이라서……. 원래 석류는 다산의 상징이라는 말을 나도 들은 적이 있다. 그래서 어머니께 다시 여쭈었다. 석류는 열매 안에 씨앗이 많이 들어 있기 때문에 아들을 많이 낳고 싶은 집에서 심는다고 하던데요? 외갓집 부엌 앞에 석류나무가 있었기 때문에 외할머니는 쌍둥이를 포함해서 아들을 넷 낳았던 게 아닐까요? 나도 그래서 아들을 넷이나 낳았나? 우리는 웃었다.

석류나무가 왜 밥 냄새를 맡고 자라는지, 그 이유를 시원스레 알지는 못했지만, 그 말을 어머니한테 들은 것으로도 나는 기분이 좋았다. (중략)

석류나무는 절대로 저 혼자 자라지 않는다. 그걸 보고 사람들은 말한다. 석류나무는 어린 새끼들을 데리고 함께 자란다고. 키가 고만고만한 여린 줄기들이 나무 밑동에 오종종 모여 있는 석류나무를 보는 일은 때로 슬프다. 먹여 살려야 할 식솔이 많이 딸린 가장을 보는 것 같기 때문이다. 그 새끼들은 어미의 뿌리에서 나온 것들인데, 어미가 취해야 할 양분을 빨아먹고 자란다. 인간 세상이든 나무의 세상이든 도대체 자식들이란 그렇게 ‘싸가지 없는’ 행동을 하는 경우가 많은 것이다. 그래서 어미 석류나무한테서 실한 열매를 얻으려면 그 어린것들을 이따금 잘라 주어야 한다. 매정하고 아까운 일이지만 할 수가 없다.” (p.161~p.1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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