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도현의 역작 '내 사랑 백석'
안도현의 역작 '내 사랑 백석'
  • 정미경 기자
  • 승인 2014.08.20 2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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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우상 백석의 생애

 

[북데일리] ““가난한 내가 /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 오늘밤은 푹푹 눈이 나린다”는 표현은 분명히 문장구조의 인과관계를 무시하는 충돌이거나 모순이다. 가히 연애의 달인답다. 여기에 넘어가지 않을 여자는 없을 것이다. 내가 너를 사랑해서 이 우주에 눈이 내린다니! 그리하여 나는 가난하고, 너는 아름답다는 단순한 형용조차 찬란해진다. 첫눈이 내리는 날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고 싶다는 말은 백석 이후에 이미 죽은 문장이 되고 말았다.” (p. 175)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로 유명한 안도현 시인이 <백석 평전>(다산북스. 2014)을 통해 백석의 삶을 정리했다. 백석은 1912년 평안북도 출생으로 속적이면서도 따뜻하고 정감 넘치는 태도로 많은 시와 소설작품을 남겼다. 그는 우리 시대의 시인들에게 큰 영향을 끼친 인물로 평가된다. 대표적으로 시인 신경림은 “내가 시를 좋아하게 된 것도 실은 백석 시인으로 인해서였는지도 모르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윤동주는 백석의 시집을 구하지 못해 발을 동동 굴렀다. (중략) 1937년 8월이 되어서야 윤동주는 도서관에서 <사슴>을 겨우 빌릴 수 있었다. 시집을 빌리자마자 그는 그 자리에서 필사를 하기 시작했다.” (p.136)

책에 따르면 안도현은 스무 살 무렵부터 백석을 '짝사랑'했다. 그의 시는 저자가 힘들 때 쉴 곳이 되어 줬고, 잃어버린 시의 나침반을 찾아 헤맬 때 길을 가르쳐 줬다. 저자는 책에서 백석이 어떤 계기로 시를 쓰게 되었는지부터, 일본에서 유학하며 습작할 때 누구에게 어떤 영향을 받았는지, 북한에서의 말년은 어떠했는지 등을 들려준다.

“백석은 외모만 ‘모던보이’가 아니었다. 일본 유학시절 습작기부터 그는 ‘가장 모던한 것’과 ‘가장 조선적인 것’을 어떻게 결합할 것인가를 고민했다. 백석보다 앞선 주요한이나 정지용은 유학시절부터 일본어로 쓴 시를 발표했다. 그러나 백석은 단 한 편도 일본어로 된 시를 발표하지 않았다. 그는 모더니즘적인 시를 탐독하고 시론을 받아들였지만 조선 사람의 언어를 지키는 시인이고자 했다.” (p. 51)

책은 그간 과장되었거나 소문으로 떠돌던 그의 연애담과 결혼생활까지 사실적으로 설명한다. 또한 백석의 시와 산문에 드러나 있는 내용과 그의 실제 행적을 비교하여 몇 가지 새로운 사실도 밝혀낸다.

1959년 마흔여덟 살의 백석은 ‘생산현장으로 내려가 노동자들과 같이 일하고 호흡하면서 새로운 사람으로 거듭나라‘는 당의 지시를 받게 된다. 당시 평양에서 창작의 자유를 동경하거나 부르주아적 편향을 보이는 작가들은 ‘현지파견’이라는 이름으로 전국으로 흩어지게 되었던 것이다. 이때 백석이 파견된 곳은 북한에서도 최고의 오지이자 제일 추운 곳으로 꼽히는 삼수군이었다. 그곳에서 백석은 축산반에 배치되어 양을 치는 일을 맡는다. 그는 1년 만에 ‘현지 파견 작가 좌담회’ 참석을 위해 평양을 방문하게 된다.

“신인 함영기와 김광섭, 극작가 박혁은 탄광의 광부로 일하다가 왔고, 시인 박근은 어부로 일하고 있었고, 소설가 리춘진은 타이어공장에서, 평론가 박종식은 제강소에서 노동을 하다가 참석했다. 시인 상민은 백석처럼 농업협동조합에 파견되었다가 평양으로 왔다. 카프 출신으로 만주의 '만선일보‘에서 백석과 같이 일하던 이갑기도 현지에서 참석했다.” (p.379~p.330)

하지만 이들 대부분은 평양으로 다시 돌아오지 못했다. 백석에게도 끝내 그 기회가 돌아오지 않았고, 1962년 오십 살이 된 백석은 사실상 시인으로서의 역할이 끝난다. ‘조국이여 바다여’는 그가 북한에서 발표한 마지막 시다. 해방 전 남한에서는 가장 주목받던 시인 중의 하나였지만 해방 후 북한에서 그의 말년은 행복하지 못했다.

“평양에서 삼수군으로 쫓겨날 즈음 백석에게 시는 생활의 문제가 아니라 생존의 문제였다. 시인으로 살아남느냐 마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었다. 한 인간으로서 목숨을 부지할 수 있느냐 없느냐가 백석에게는 더 시급했다. 해방 이후 백석의 북한에서의 작품 활동을 단순히 예술성을 망각하고 시를 정치도구화한 파렴치한 행위로 몰아붙일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우리는 백석이 북한에서 아동문학논쟁을 통해 문학의 자율성과 미학주의를 주장한 마지막 시인 중 한 사람이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p.413)

그간 많은 연구자들이 백석의 생애와 문학 세계에 대해 연구하고 글을 발표했다. 그와 관련한 단행본, 학위논문, 평론, 에세이 등의 연구물이 무려 800여 편이나 된다. 그 중 이 책은 한 인물에 대한 평전답게 분량도 두툼하고 내용도 묵직하다. 시인이자 문학평론가인 이동순이 ‘추천의 글’에 썼듯이, “마치 소설을 읽듯, 전기를 읽듯, 혹은 작품세계에 대한 분석적 연구를 읽듯 여러 방법과 스타일의 혼합적 기법으로 흥미진진하게 펼쳐지고 있다.”

또한 저자 안도현은 “조각조각 단편적으로만 흩어져 있던 백석 시인의 생애를 완전히 하나의 끈으로 꿰어서 보석처럼 아름다운 작품으로 완성”했다. 이 책을 통해 백석의 다양한 시를 접할 수 있는 것도 큰 매력중의 하나다. <정미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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