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신용대출 규제, 구멍하나 메꾸려다 씽크홀 만든다
[기자수첩] 신용대출 규제, 구멍하나 메꾸려다 씽크홀 만든다
  • 장하은 기자
  • 승인 2020.09.28 16:0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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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이트페이퍼=장하은기자] ‘신용대출과 그 외 자본시장에 대한 규제를 조이거나 풀어주는' 역할을 충실히 해내야 하는 것은 분명한 금융당국의 역할이자 의무이다. 금융권 일각에서 발생할 수 있는 폐단을 막기 위해. 하지만 거기엔 분명 현상에 대한 철저한 분석과 현업의 소리에 대한 청취, 그리고 당국의 기준이 있어야 한다. 이를 간과하면 당국은 시장과 동떨어진 기조로 가게 되고 그에 따라 발생하는 피해는 오롯이 금융을 이용하는 고객과 금융사가 지게 된다. ‘지시’만 내리는 금융당국이 그 지시에 따라 나타나는 결과에 대한 책임감의 무게를 가볍게 여겨서는 절대로 안 되는 이유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대유행) 사태가 확산하자 올 초 금융당국은 은행들에 신용대출을 확대하라고 등을 떠밀었다. 코로나19 피해기업을 대상으로 신용등급을 3단계 높여 금리와 한도를 조정하고 일정기간 만기를 연장해주기로 한 시중은행을 추켜세웠다. 해당 은행의 ‘완화된 여신심사 지침’을 따라 적극적으로 대출을 확대하라고 타 은행들에도 권장했다. 부동산 투기를 막겠다는 정부노선에 따라 대출의 모든 절차를 세심히 들여다보고 생활자금으로 받는 신용대출에까지 가해온 깐깐했던 대출 규제를 코로나19 사태 발생과 동시에 하루아침에 대문 열 듯 활짝 열었다.

‘비가 올 때 우산 뺏지 말라’는 당국의 지침대로 은행은 문을 두드리는 자들에게 열심히 돈을 빌려줬다. 그 결과 신용대출은 기하급수적으로 폭증했다. 지난 24일 기준 5대 은행의 신용대출잔액은 126조8863억원으로 이는 역대 규모의 신용대출 잔액이었던 지난달에 비해 2조6116억원이 늘어 또 다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추세대로라면 이달 신용대출 증가액은 3조원을 훌쩍 넘어 사상 최대치를 무난히 갈아치울 전망이다.

신용대출이 매달 역대치를 기록하자 금융당국은 다시 신용대출 조이기에 돌입했다. 은행들의 건전성이 우려된다는 명목이었다. 건전성 관리가 필요하다는 은행들의 외침이 이제야 전달된걸까. 저금리기조에 순이자마진(NIM)이 하락하는 가운데 저신용자들의 대출을 무작정 확대하면 만기유예 이후 대출자들의 상환능력에 따라 은행의 건전성이 악화할 수 있다는 은행권의 우려에 금융당국은 ‘은행의 건전성은 양호하다’고 못을 박았다. 현업에서 ‘노(NO)’라고 해도 당국이 볼 땐 노가 아닌가 보다. 금융당국은 다만 ‘은행 자체적으로 대손충당금은 쌓아두라’고 권고했다. 그러니까 대출부실이 안 날 수도 있지만 날 수도 있으니까 이를 대비해 은행이 벌었던 돈의 일부를 떼어내 대출부실이 나면 막으라는 것이다. 코로나19 사태의 짐을 은행에만 지게 한다는 비판이 나오는 대목이다.

당국이 다시 신용대출을 규제하기로 노선을 변경하자 은행권은 또다시 분주히 움직이고 있다. 최근 은행들은 우대금리로 대출해주는 고액 신용대출자들의 우대금리를 축소하고 한도를 낮추는 쪽으로 방향을 잡고 검토에 들어갔다. 일부 은행들은 우선 직장인 신용대출 최저금리를 상향하고 나섰다. 고신용자들이 우대금리로 돈을 많이 빌려 신용대출이 급증하는데 영향을 미쳤기 때문이라는 금융당국의 진단과 압박에 부랴부랴 행동에 나선 것. 정부는 이들에 대한 금리 혜택의 폭을 줄이면 신용대출 증가를 잡을 수 있다고 보고 있다.

당국의 방침대로 실행에 옮기면서도 의아한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라는 반응이 은행 일각에서 나온다.

신용대출 폭증이 은행들의 경쟁 탓이라는 당국의 특이한 진단은 일단 뒤로하고, 주택담보대출이 막히자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음)로 내 집 마련에 나서는 현상, 부동산을 향한 정부의 각종 규제로 ‘빚투(빚투)’가 늘어나는 현상, 코로나19 사태에 따른 자금 수요 등 각종 현상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며 급증한 신용대출 증가세를 고신용자들의 금리를 올린다고 대출 증가 추세를 잡을 수 있다고 보기가 어렵다는 시각이다.

또한 우량 고객인 고신용자들을 역차별해야 하는 아이러니와 은행의 고유권한이자 영업방식인 우량 고객 금리산정에 대한 간섭까지 그렇다치고, 결과를 볼 때 엉뚱한 부작용이 나타난다는 게 더 문제다. 앞서 금융감독원과 시중은행 여신담당 그룹장급의 화상회의가 열린 지난 14일 이후 16일까지 단 사흘만에 신용대출은 1조1000억원 가까이 불어났다. 금융당국이 신용대출 총량 관리에 들어가자 일명 ‘막차타기’ 열풍이 거세진 것이다.

철저한 익명을 요구한 은행권 관계자는 “금융당국이 하라면 은행은 무조건 할 수밖에 없다. 당국의 압박이 들어오자 대출(신용거래 융자)을 그냥 중단해버리는 증권사들이 솔직히 부러운 측면이 없지 않아 있다”라며 “그렇다고 신용대출 규제를 조이던 풀던 당국 취지에 공감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특히 코로나 사태로 어려움에 처한 소상공인과 자영업자들에 대한 대출을 확대하라는 것에는 더 그렇다”라고 말했다. 다만 "시장이 자연스럽게 흘러가도록 시장에 맡겨야 하는 디테일한 부분들까지 지나치게 간섭하다 보니 자꾸 구멍이 생기는 게 문제다. 하나의 구멍을 막으면 또 다른 구멍이 생기고 매번 주먹구구 ‘땜빵’식으로 메꾸다 보면 씽크홀이 생길 수밖에 없다”라며 “때로는 탁상공론의 한계를 인정하고 현업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모습도 보여줬으면 좋겠다”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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