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 약국에서 1조원대 제약사로...임성기 한미약품 회장 별세
동네 약국에서 1조원대 제약사로...임성기 한미약품 회장 별세
  • 김새봄 기자
  • 승인 2020.08.03 09:1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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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일 새벽 숙환으로 타계
(제공=한미약품)
(제공=한미약품)

[화이트페이퍼=김새봄 기자] 1967년 서울 동대문 ’임성기 약국‘은 서울 시내에서 ’3대 약국‘으로 꼽힐 정도로 유명했다. 약국은 당시 유행했던 매독 등 성병 치료에 매진했다. 그리고 ’임성기 약국‘은 성병 전문약국으로 유명해졌다. 소위 대박이났다. 그리고 27살 중앙대학교 약대 출신 임성기씨는 그 돈을 모아 1973년 ’임성기제약‘을 창업했다. 한 달 뒤 동료 약사들이 합류하면서 ’한미약품공업‘으로 사명을 바꿨다. 그 회사는 이후 매출 1조원이 넘는 제약사로 발돋움했다. 또 복제약이 일색이던 국내 제약업계에 신약개발을 불러 일으켰다.

3일 한미약품에 따르면, 창업주 임성기 회장이 지난 2일 새벽 숙환으로 타계했다. 향년 80세다.

고(故) 임성기 회장은 평소 “신약 개발은 내 목숨”이라는 말을 신념으로 삼았다. 한미약품은 매년 매출액의 최대 20%에 이르는 금액을 혁신 신약 개발에 투자했다. 한미약품이 최근 20여년간 R&D에 투자한 누적 금액은 약 2조원에 달한다. 2010년 창사 이래 첫 적자에도 R&D를 향한 투자 의지를 굽히지 않았다. 2016년 기술 반환된 폐암 치료 혁신신약 ’올무티닙‘의 개발이 어려워졌을 때도 임 회장은 “신약 개발에는 위험이 따르지만 나를 믿고 R&D에 더 매진해 달라”고 직원들을 독려했다.

고(故) 임 회장은 복제약(제네릭) 개발이 일색이던 국내 제약업계에 신약개발 바람을 일으켰다. 지난 2015년 한미약품은 해외 제약사들에 자체 신약개발 물질들을 약 8조원대 규모 기술수출했다. 총 7건의 대형 신약 라이선스 계약을 글로벌 제약 기업에 잇따라 성사시켰다. 이 때부터 기술수출이 국내 제약업계에 수익모델로 자리잡았다. 덩치가 작은 국내 제약회사들은 수천억원이 드는 임상3상까지 끌고가는 것이 사실상 어렵다. 그러나 한미약품의 기술수출 성과가 많은 바이오벤처사들에게 자신감을 주었다. 그 결과 2015년 이후 ’제2의 바이오 바람‘이 불어 현재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한미약품은 1989년 업계 최초로 기술수출에 성공했다. 다국적제약사 로슈에 항생제 ’세프트리악손‘의 개량 제법 기술을 수출했다. 1997년에는 글로벌 제약사 노바티스에 ’마이크로에멀젼‘ 제제 기술을 6300만 달러(약 750억원)에 이전했다. 당시 최고 규모다. 2009년에는 국내최초 복합 개량신약 고혈압치료제 ’아모잘탄‘의 국내 허가를 받았다.

개량신약은 여러 성분을 복합하거나, 기존 성분을 새로운 제형으로 바꿔 개발하는 의약품을 일컫는다. 개량신약 개발 기술은 한미약품이 업계에서 가장 선도하는 것으로 정평이 나있다.

임 회장의 유족으로는 부인 송영숙씨와 아들 임종윤·임종훈씨, 딸 임주현씨가 있다. 장남인 임종윤씨는 현재 한미약품그룹 지주사인 한미사이언스 대표이사다. 둘째인 임주현씨는 현재 한미약품 부사장직을 맡고 있고, 차남인 임종훈씨는 지난 2017년 한미약품 사내이사로 선임돼 현재 경영기획 부사장직을 맡고 있다. 임종훈 부사장은 그룹 관계사 한미헬스케어와 벤처캐핕탈 한미벤쳐스의 상근 대표도 역임중이다.

고(故) 임성기 회장의 장례는 고인과 유족들의 뜻에 따라 가족장으로 치른다. 빈소는 확정되는 대로 추후 알릴 예정이다. 발인은 8월 6일 오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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