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란색과 국화는 어쩌다 프랑스의 상징이 되었을까
파란색과 국화는 어쩌다 프랑스의 상징이 되었을까
  • 박세리 기자
  • 승인 2018.05.14 1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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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돼지에게 살해된 왕> 미셸 파스투로 지음 | 주나미 옮김 | 오롯

[화이트페이퍼=박세리 기자] 파란색과 국화는 어쩌다 프랑스의 상징이 되었을까. 기원은 12세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바로 돼지로 인해 죽은 왕 때문이다.

프랑스 루이 6세의 맏아들인 필리프는 15세 젊은 나이에 죽음을 맞이했다. 1131년 10월 13일 파리 근교에서 돼지 한 마리가 필리프 왕이 탄 말의 다리 사이로 뛰어들며 낙마 사고를 당한 것이다.

슬픔도 잠시, 죽음의 원인이 문제가 됐다. 당시 돼지는 더럽고 불결한 악마의 동물로 여겼다. 돼지 때문에 죽었다는 것은 왕국과 왕조의 명예를 훼손시키는 사건이었다. 사람들은 ‘신이 내린 벌’이라 수군거렸다.

그런데 중세 유럽 역사를 상징사로 해석하는 <돼지에게 살해된 왕>(오롯.2018)은 이 불명예스러운 죽음이 프랑스 상징인 파란 색과 백합꽃들의 기원이 되었다는 흥미로운 이야기를 전한다.

죽은 필리프를 대신해 왕위에 오른 루이 7세는 실정을 거듭했다. 명예 회복을 위해 직접 제2차 십자군에 참여했지만 실패로 끝났고, 이로 인해 알리에노르 왕비와 이혼했다. 그 왕비가 노르망디 공작이었던 헨리 플랜태저넷과 3개월 만에 재혼하며 훗날 백년전쟁이 원인이 되는 일이 벌어진다. 왕비의 영지였던 프랑스 서부의 넓은 영토가 잉글랜드 플랜태저넷 왕가에 넘어가며 분쟁의 씨앗을 남겼다.

게다가 예정대로라면 알리에노르 왕비는 죽은 필리프 왕과 결혼했어야 했다. 사람들은 필리프 왕이 돼지에 살해되지 않았다면 프랑스 역사에서 최악의 재난이라 불리는 루이 7세의 통치를 피할 수 있었을 거란 아쉬움을 지우기 어려웠다. 왕과 왕조는 실추된 명예와 위신을 회복하기 위해 성모 마리아를 프랑스의 여왕으로 삼아 돼지의 흔적을 지우기 시작했다.

성모 마리아의 도상에서 가져온 백합과 파란색을 왕국의 문장으로 사용하기로 하고 프랑스 역대 왕들의 무덤이 있는 수도원 교회의 창을 파란색 유리로 장식했다. 그렇게 1천 년이 지나며 10세기까지만 해도 볼품없는 파랑이 고결한 왕가의 색이 되고 성모를 백합에 빗대며 왕과 왕국의 상징적 정화가 이루어졌다. 책은 이처럼 나라의 문장과 동물, 색이라는 주제를 직조해 프랑스 역사를 흥미롭게 풀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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