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초 책읽기] ‘좋아요’ 때문에 아이 15층에 매달아
[30초 책읽기] ‘좋아요’ 때문에 아이 15층에 매달아
  • 박세리 기자
  • 승인 2017.06.23 11:4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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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롭지 않은 삶을 위한 유대인의 지혜> 마크 카츠 지음 | 곽동훈 옮김 | 책읽는수요일
▲ 창문 밖에 매달린 아기 페이스북 사진 <사진=페이스북 캡쳐>

[화이트페이퍼=박세리 기자] “1천 번의 ‘좋아요’를 클릭해라. 그렇지 않으면 이 아이를 떨어뜨릴 것”이라는 글과 함께 페이스북에 남겨진 사진이다.

지난 20일(현지시각) 아랍권 위성매체 알아라비야 등 매체에 따르면 알제리 법원은 이 남성에게 아동 학대 혐의를 적용해 징역 2년을 선고했다. 아이가 매달려진 높이는 무려 아파트 15층. 도대체 ‘좋아요’가 뭐길래.

인간다운 따뜻한 맛, 인간미(人間味)가 결여된 테크놀로지의 세상 속 기계적인 ‘좋아요’를 얻기 위해 남성은 비인간적인 행위에 스스럼이 없었다. 그는 공감을 표하는 ‘좋아요’로 주목받으려는 심리였을 터다. 그러나 ‘좋아요’와 ‘리트윗’은 만남이 결여된 반쪽짜리 관계 맺기에 다름 아니다. 소셜 미디어의 피폐한 일면을 보여주는 사건이다. 관계 맺기에도 위계가 있다는 다음 대목을 보자.

“만남에도 위계가 있다. 가장 깊이 있는 의사소통은 생각을 전달하기 위해 우리의 모든 감각을 사용할 때 가능하다. 다른 사람을 직접 눈앞에서 만날 때, 우리는 타인의 목소리를 듣고, 그의 에너지를 느끼며, 그의 표정까지 감지한다. 무엇보다도 소셜 미디어에는 진정한 ‘참여’가 결여되어 있다. ‘좋아요’는 결코 포옹이 아니며, ‘리트윗’은 미소가 될 수 없다. 테크놀로지 덕분에 온라인 친구들은 늘어났지만, 우정은 오히려 줄어들고 있다.” (본문 중, 일부 수정)

<외롭지 않은 삶을 위한 유대인의 지혜>(책읽는수요일.2017)에 등장하는 부분이다. ‘좋아요’는 결코 포옹이 아니며 ‘리트윗’은 미소가 될 수 없다는 저자의 말은 옳다. 그 속에는 실체적 존재가 빠졌다. 반쪽짜리 비틀린 관계 맺기로 파생된 도덕성과 상식의 결여는 무엇으로 메꿔야 하는지 안타까울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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