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우산 쓰면 부정타?... 우산 썼다 집단폭행 당해
[신간] 우산 쓰면 부정타?... 우산 썼다 집단폭행 당해
  • 박세리 기자
  • 승인 2016.04.14 10:4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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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우리 문화> 김진섭 지음 | 지성사

[화이트페이퍼=박세리 기자] 과거 우산을 함부로 썼다가 집단폭행 당하던 시절이 있었다. 우산이 처음 들어온 18세기 중반 무렵이다.

우리나라에는 본래 비를 가리는 행위를 금하는 풍습이 있었다. 농경 사회 문화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데 기후가 농사에 결정적인 역할을 해서다. 당시 사람들은 비가 내릴 때 도구를 써서 의도적으로 비를 가리는 행위는 하늘의 뜻을 거역하는 부도덕한 행위로 여기며, 이를 어겼을 경우 반드시 재앙이 따른다고 믿었다.

물론 모든 비를 고스란히 맞고 다닌 것은 아니지만, 가뭄 직후에는 특히 조심해야 했다. 기록에 따르면 일반인들이 비를 가리는 용도로 우산을 사용하기까지 적지 않은 우여곡절이 있었다.

우산이 도입된 초기 우리나라 사람들은 물론 외국인들도 비 오는 날에 우산 상용을 꺼렸는데 당시 ‘독립신문’에 오랜 가뭄 끝에 비가 내렸을 때 외국인이 우산을 쓰고 거리에 나갔다가 집단 폭행을 당했다는 기사가 실렸을 정도다.

<이야기 우리 문화>(지성사.2016)에 따르면 우산과 관련된 금기는 우산 사용이 사회에 정착된 이후에도 등장했다. 이를테면 민가에서는 방 안에서 우산을 펴는 행위를 금했다. 방 안에서 우산을 펴면 죄를 지어 감옥에 간다는 속설이 있었다. 방안에서 우산을 펴 스스로 빛을 가리는 행위는 햇빛을 보기 힘든 감옥에 들어가는 것과 다름없다는 뜻에서다.

우리 문화 속 속설은 또 있다. 도박이 성행한 마을에는 까치집이 없었는데 노름꾼들 사이에서 도는 이야기 때문이다. 까치집 가운데 가장 굵은 나뭇가지를 골라 흐르는 물에 넣고 거꾸로 밀어 올리면 돈을 딴다고 여겼다. 이 때문에 노름이 성행한 마을에서는 온전하게 남아 있는 까치집이 없었고, 까치집이 보이지 않는 마을은 도박이 성행하는 지역으로 오해를 사기도 했다.

책은 이밖에 우리가 미처 알지 못한 우리 문화 속 풍속과 동물, 인물과 음식 등에 관한 오해와 진실을 흥미롭게 풀어낸다. 까마귀가 왜 길조에서 흉조가 되었는지 계모설화에 왜 항상 ‘아들’이 아닌 ‘딸’이 등장하는지 등 당시 사회상과 함께 설명해 우리 문화를 다양한 스펙트럼으로 바라보도록 돕는다.

화이트페이퍼, WHITEPAP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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