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속의 명문장] '분통을 허공에 쏟아 버린 노란 분가루'같은 산수유 꽃
[책속의 명문장] '분통을 허공에 쏟아 버린 노란 분가루'같은 산수유 꽃
  • 정미경 기자
  • 승인 2016.02.04 12:1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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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토록 붉은 사랑> 림태주 지음 | 행성B잎새

[화이트페이퍼=정미경 기자] 입춘이다. 봄이 머지 않았다. 하나 둘 봄꽃들도 곧 피어나리라. 림태주 시인은 산문집 <그토록 붉은 사랑>(행성B잎새. 2015)에서 “봄꽃은 꽃마다 내면을 살펴서 속성대로 섬세하게 구경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에 따르면 가까이에서 보아야 하는 꽃과 멀리서 보아야 하는 꽃이 있다. 복사꽃과 배꽃은 위 다랑논에서 아래 다랑논을 내려다보듯이 바라 보아야 제대로 보인다. 과수원을 통째로 널따랗게 한눈에 담아야 장엄하다.

또 덜 피었을 때 보아야 하는 꽃과 활짝 피었을 때 보아야 하는 꽃이 있다. 벚꽃은 “환한 웃음이 예쁜 꽃”이다. 만개해서야 비로소 모든 근심의 그늘이 사라진다.

“매화는 외유내강의 전범이다. 수줍어하고 부끄러워하나 천성이 단아하다. 치마의 옆트임처럼 보일락 말락 반개했을 때가 매혹적이다. 살포시 미소를 머금고 있을 때 매화는 뇌쇄를 흘린다.

산수유는 무리 지어 군집을 이룰 때 온전한 제 모습을 드러낸다. 산수유 꽃은 차분하지 못한 여자가 분통을 들고 가다 발을 헛디뎌 허공에다 쏟아 버린 노란 분가루다. 백치미를 가진 여자처럼 몽환적이다.

봄꽃은 질 때 삶의 내력을 드러낸다. 목련은 자존의 끝까지 고개를 우아하게 쳐들고 순결을 밝힌다. 누렇게 변색될 때까지 진실을 말하려 애쓴다. 화사했으므로 추한 최후도 마다하지 않는다.

매화는 여리지만 결코 지는 법이 없다. 피어날 뿐 지지 않는다. 스스로 꽃잎을 하나하나를 떼어내 바람에 실어 풍장한다. 흩어져 사라질 뿐 먼지를 덮고 땅에 눕지 않는다.

동백은 참혹하다. 나를 지킬 수 없다면 내 목을 치라고 단호하게 말한다. 계백 장군의 여자다. 구차하게 매달려 애원하는 법이 없다. 선혈을 흘리며 땅에 뒹굴어서야, 분연히 죽어서야 비로소 몸을 더럽힌다.” (34~35쪽)

꽃이 피고 지는 모습을 보는 시인의 감성이 역시 남다르다. 환한 웃음이 예쁜 벚꽃, 외유내강의 매화, 몽환적인 산수유. 이른 봄꽃 이야기가 마음을 달뜨게 한다.

화이트페이퍼, WHITEPAP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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