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얘기 좀 들어주세요”…‘팩스 민원’ 넣는 집주인들
“내 얘기 좀 들어주세요”…‘팩스 민원’ 넣는 집주인들
  • 최창민 기자
  • 승인 2020.09.24 15:5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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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 30일 오후 국회 본회의에서 주택임대차보호법이 통과되자 김태년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의원들과 기뻐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화이트페이퍼=최창민 기자] ##A씨는 일시적 1가구 2주택 소유자다. 전세 만기가 도래함에 따라 집을 처분하기 위해 세입자에게 이를 알렸다. 하지만 세입자가 2년을 연장하는 계약갱신청구권을 행사하겠다고 나오고 있어, 골머리를 앓고 있다. 기존 임차인이 갱신권을 행사할 경우, 새 매수자는 입주할 수 없다는 정부의 '유권해석' 때문이다. 이에 더해 3년 이내에 한 채를 처분하지 못하고 2주택자가 된 후에 팔 경우, A씨는 50%에 달하는 양도소득세를 내야한다. A씨는 “날강도가 따로 없다”며 “내 집을 내 마음대로 처분하지 못한다는 게 억울하다”고 읍소했다.

정부가 임대인과 임차인의 균형 잡힌 관계를 정립한다는 취지로 제정한 임대차 3법이 정작 현실에서는 임대인과 임차인 사이 갈등만 키우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임대차 3법으로 피해를 봤다고 주장하는 임대인들이 모인 단체 대화방과 인터넷 커뮤니티 등에서는 ‘이렇게 당하고 있을 수만은 없다’면서 단체 행동을 이어가는 모양새다.

24일 ‘임대차 3법 소급적용 피해 모임’ 단체 대화방에서는 법무부, 국토교통부 등 관계부처와 여당 소속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국토교통위원회 위원의 의원실 팩스 번호가 공유되고 있었다. 이른바 ‘팩스 민원’이다. 억울함을 직접적으로 호소하자는 취지다. 이들은 아침 일찍부터 오후 늦은 시간까지 의견을 담은 팩스를 발송하고 있었다. 모바일 팩스 발송 앱을 이용하는 모습도 확인됐다. 일부는 팩스 발송 인증을 한다면서 ‘인증샷’을 올리기도 했다.

팩스 발송 '인증샷'을 올린 대화방 참가자
'모바일팩스' 앱을 이용한 발송 인증샷을 올리는 모습.

대화방에 참여하고 있는 B씨는 세입자가 보낸 문자 메시지를 공개하면서 분통을 터뜨리기도 했다. 그는 “집을 팔기로 하고 계약금까지 받았는데 세입자가 실거주 외에는 계약갱신청구권이 우선이라고 들었다면서 막무가내다”라며 “전세를 끼고 매매할지 연락을 달라면서 집값까지 조언하고 있어 어이가 없다”고 썼다.

전날에는 직장인 익명 앱 ‘블라인드’에 올라온 임대차 3법 관련 질문 글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집주인이 8개월 전 집을 처분할 것을 알려왔고 이미 계약금이 오고 간 것으로 아는데, 계약갱신이 가능하냐는 내용이다. 작성자는 말미에 “집을 괜히 보여줬다”면서 “아이 때문에 이 지역에 있어야 하는데 막막하다”고 썼다. 이를 두고 글쓴이를 향한 비난의 댓글이 이어졌다. 댓글을 남긴 D씨는 “안 된다는 걸 좋게 얘기해 주려고 했는데 마지막 부분을 보고 화가 난다”면서 “집주인 입장에서 생각해보라”고 적었다. 다른 이용자 E씨도 “직장명까지 다 공개되는데 왜 이러는지 모르겠다“고 썼다. 현재 이 글은 삭제된 상태다.

■ 김은혜 의원 개정안 처리 촉구 청원, 사흘 만에 5800여명 동의

국회 법사위 소속 김은혜 국민의힘 의원은 지난 18일 이 같은 임대차 3법의 부작용을 막고자 ‘주택임대차보호법 일부개정법률안’을 입법예고했다. 새 매입자가 실거주를 목적으로 주택을 매수할 경우, 등기를 마치지 않았더라도 계약갱신요구를 거절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이다. 김 의원은 “최근 현장에서 잔금을 치르지 않고 등기를 하는 복등기 등 편법 거래가 성행하고 임대인 임차인 간의 갈등이 고조되는 등의 부작용이 지속해서 발생하고 있다”고 제안 이유를 설명했다.

현재 이 법안과 관련한 국민청원은 사흘 만에 5842명의 동의를 받았다.

사진=국민청원 홈페이지 갈무리

■ 정부 ‘유권해석’이 발단…기존 설명과 배치돼

상황이 이렇게까지 흘러간 데에는 정부가 내놓은 유권해석이 원인으로 지목된다. 지난 11일 정부는 세입자가 기존 임대인에게 계약갱신청구권을 행사하면 집을 사려는 매수자는 실거주를 이유로 입주하지 못한다고 밝혔다. 이는 정부의 기존 입장과 배치된다.

앞서 지난달 3일 국토교통부는 임대차 3법 통과를 밝히면서 “개정된 법안이 집주인의 재산권을 침해하지는 않는다”며 “집주인이 임대를 놓은 상황에서 주택을 제3자(매수인)에게 매도하는 것에 아무런 문제가 없으며, 기존 집주인과 임차인의 임대차 계약이 매수인에게 승계된다는 것은 이미 주지의 사실”이라고까지 설명했다.

이는 주택임대차분쟁조정위원회 홈페이지에서도 확인된다. 지난달 21일 이 홈페이지에 게재된 ‘개정 주택임대차보호법 관련 Q&A’에는 “계약갱신청구권이 도입되면 임차인이 거주하는 주택은 매도할 수 없나요”라는 질문과 함께 해당 주택의 매도는 아무런 영향이 없다는 설명이 버젓이 올라와 있다. 정부가 혼란을 자초하고 있다는 목소리가 이어지는 이유다.

이 가운데 정부는 분쟁조정위원회 늘리기에 속도를 내기만 할 뿐, 별다른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다. 법무부에 따르면 월차임 전환율 2.5% 하향 조정 등의 내용이 담긴 주택임대차보호법 개정안이 지난 22일 국무회의를 통과했다. 이에 따라 전국에 분쟁조정위원회 12곳이 추가로 설치된다.

그동안 법률구조공단에서 운영해 온 분쟁조정위원회를 한국토지주택공사(LH)와 한국감정원에 추가 설치한다는 내용이다. 이에 따라 올해 인천·청주·창원(LH)과 서울 북부·전주·춘천(한국감정원) 등에 분쟁조정위원회 6곳이 설치된다. 내년에는 제주·성남·울산(LH)과 고양·세종(대전)·포항(한국감정원) 등이 예정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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