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속의 명문장] 교육의 숙명적 한계 “과거를 살아온 사람이 과거 방식으로 미래 인재 가르치는 것”
[책속의 명문장] 교육의 숙명적 한계 “과거를 살아온 사람이 과거 방식으로 미래 인재 가르치는 것”
  • 박세리 기자
  • 승인 2017.04.14 14:2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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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10년, 대한민국 골든타임> 김경집 지음 | 들녘

[화이트페이퍼=박세리 기자] “교육의 숙명적 한계는 ‘과거를 살아온 사람이 과거의 방식으로 미래를 살아갈 사람들을 가르친다는’ 것이다.”

<앞으로 10년, 대한민국 골든타임>(들녘.2017)의 저자 김경집의 말이다. 그는 어떤 교육이건 그 한계를 벗어날 수는 없지만, 지금은 달라야 한다고 말한다. 과거와 현재, 미래가 큰 변화 없던 시절의 교육이 시시각각 변하는 21세기에는 통용되기 어렵다는 견해에서다.

단적인 예로 저자는 어른들이 ‘당연’하게 여기는 학교 풍경을 살핀다. 특히 교복에 부착된 ‘명찰’은 과연 누구를 위함인지 짚어나가는 대목은 인상적이다. 대다수의 중고등학교 학생들은 교복을 입고 명찰을 단다. 심지어 명찰은 교복에 박아 떼지 못하게 하는 경우도 많다. 그런데 여기서 ‘왜?’라는 질문을 던져보면 좀 다른 문제로 나아간다.

생각해보면 유니폼을 입는 직군 말고 명찰을 다는 집단은 많지 않다. 행사장이라면 모를까. 직장 내 목걸이 명찰도 옷에 박지는 않는다.

저자는 교복에 명찰을 박는 것이 표면적으로는 하나의 ‘관행’일 뿐이지만 속살은 다른 문제를 내포하고 있다고 문제를 제기한다. 어리고 힘이 약한 존재는 자신의 ‘아이디(ID)’를 ‘까는’ 것일 뿐이라는 견해다.

또 옷에 박혀버린 학생 명찰에는 또 다른 문제도 간과됐다. 학교 밖에서도 자신의 이름을 밖으로 드러낸 채 개인정보를 누구에게나 보여줘야 하는 점이다.

그러나 저자가 만난 한 교장은 “학생들이 명찰을 달아야 하는 게 정말 교육적이라고 생각하냐”는 질문에 학생들은 학교에서 단체생활을 하고 질서를 수련하기에 당연히 명찰을 달아야 한다고 답했다. 그러면 교장 선생님도 달아야 하지 않냐는 질문에는 “아니 제가 왜요?”라는 반응이었다.

이런 사고 이면에는 앞서 지적한 어리고 힘이 약한 존재에 대한 비존중이 깃들어 있다. 저자는 어느 정도 질서와 위계의 교육이 필요하다면, 학생들도 교사들의 명찰을 통해 모든 사람은 동등하고 평등하다는 중요한 가치를 배울 수 있진 않을까 반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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