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사 해외진출탐구] ② 고객 특성·법규 모른 채 떠났다 낭패 일쑤 ‘왕초보’ 신세
[증권사 해외진출탐구] ② 고객 특성·법규 모른 채 떠났다 낭패 일쑤 ‘왕초보’ 신세
  • 이혜지 기자
  • 승인 2016.06.20 16:2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현지 맞춤 영업 채비 충분히 다져서 떠나고 역량 지닌 금융사 M&A 고려할 만"
▲ 경제성장 잠재력에 혹해서 떠났던 국내 증권사 해외 진출 행태는 전면 수정돼야 한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현지 맞춤 영업 전략과 경쟁력 있는 사업 모델을 갖추려는 노력이 필수라는 공감대가 두터워지고 있다. (사진=네이버)

해외진출에 나선 지 불과 몇 년 만에 철수하는 점포가 속출했다. 손실만 키우느니 과감한 포기가 나을 수 있지만 철저한 사전 조사나 현지 영업력 강화 없이 무리하게 출점한 탓 아니냐는 의구심이 두터워졌다. 국내 증권사 글로벌 경쟁력은 어떻게 갖출 수 있을지 모색하는 시리즈에 들어가는 이유다. <편집자 주>

[화이트페이퍼=이혜지 기자] "국내에서 팔던 금융상품, 서비스 그대로 해외에 내놓으면 반응이 좋을까요? 현지 고객과 어떻게 소통하는 게 좋은지 알아낸 뒤에 입맛에 맞는 상품을 내놔야지요." 

다른 증권사가 잠재력이 큰 시장으로 떠난다는 이야기에 솔깃해 부푼 꿈을 안고 덩달아 나섰다가 현지의 미지근한 반응에 당황했다는 A증권사 관계자의 고백이다.

현지에서 외면 받은 이유가 뭘까?

■ "국내 상품 그대로? 진출국 문화 익히고, 변수 대비해야"

대부분의 증권사가 해외 현지인들의 마음을 움직일만한 상품이나 서비스를 내놓을 역량이 부족하다는 지적이다. 금융투자업은 철저한 내수 비즈니스다. 투자심리가 다르고 경험 또한 다르며 경제여건까지 다른데 국내 상품과 서비스를 그냥 들고 나갔다가는 낭패를 겪기 일쑤다. 

공짜에 가까운 수수료로 국내 고객 쟁탈전을 펼치는데 익숙했던 증권사들은 가자마자 깜짝 놀란다. 현지 금융회사들이 높은 수수료를 챙기는 상황에 적응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B증권사 한 관계자는 "미국의 Bank of America(뱅크오브아메리카)와 같은 IB(투자은행)는 타행으로 이체할 때 건당 2만5000원의 수수료를 물지만 한국에서 1000원내외로 영업했던 국내 증권사들이 이같은 사실을 진출 후 깨닫는다"고 말했다. 

진출할 곳에 대한 시장조사가 부족해 이해도가 떨어진다는 점도 문제다. 이철호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몇몇 증권사들이 현지시장을 제대로 알아보지 않고 성장잠재력만 따져셔 인도네시아로 진출한 사례가 대표적"이라고 말했다.

하나의 사례로 이 연구원은 인도네시아 주식시장을 들었다. 그는 "인도네시아 주식시장 거래량 가운데 인도네시아인 보다 외국인 거래량이 더 많다"고 말했다. 그는 "하지만 이를 제대로 깨닫지 못하는 일부 증권사들은 인도네시아 경제가 성장하면 국민 소득이 느니까 자연히 인도네시아의 주식 투자가 크게 증가할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를 품는다"고 지적했다. 

영업에 뛰어들기 전에 현지법규 이해는 기본중의 기본인데 이조차 소홀했던 사례마저 있다는 뼈아픈 지적도 들린다. 그런데도 아직 무엇을 잘못했는지 깨닫지 못한 게 우리 증권업계 현실이다. C증권사 한 관계자는 "그 나라의 법이나 규제를 사전에 잘못 해석해 업무에 차질을 빚기도 하고 예기치 못한 경제 상황이 발생하기도 한다. 변수들을 미리 다 감지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변명했다.

현지진출에 앞서 현지 법과 제도, 영업 관련 규정을 기본적으로 조사하고 숙지한 뒤에야 진출에 나서는 국내 은행들이나 보험업계와 달리 주먹구구 진출을 하고 있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 "현지 맞춤 영업 전략, 경쟁력 있는 사업 모델 갖춰야"

해외진출에 필수인 '현지 맞춤 영업 전략'을 제대로 짜서 성공한 모범사례를 찾기 어려운 것도 넘어야할 과제다. 은행업계에는 이와 같은 성공사례로 신한은행이 있지만 증권업계는 이렇다할 사례를 언급하기엔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왔다.

또한 증권사들은 어느 시장이 잠재력이 높은지에 주목하곤 한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시장 잠재력과 더불어 현지에서 살아 남을수 있는 영업 전략과 인력 그리고 현지에서 통할 수 있는 상품과 서비스를 갖추는 것이고 질타한다.

최순영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국내 증권사들은 지역의 경제성장 가능성만 보고 베트남, 인도네시아, 싱가포르에 몰린다"고 지적했다. 

이철영 연구원은 "조사에 맞춰야 할 초점은 어떤 국가가 좋은 시장이냐 하는 것이 아니라 현지 투자자와 소통하고 교감할 능력을 어떻게 갖출 것인가, 현지에 최적화된 상품과 서비스를 어떻게 제공할 것인가, 어떻게 리스크를 관리할 것인가 등이다"라고 조언했다. 

최 연구위원은 "현지에서 비용을 절감할 수 있는 사업모델도 고려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그는 "경쟁력 있는 사업모델을 해외에 이미 진출한 이후 늑장 준비하는 것이 아니라 진출 전에 구축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이러한 모범사례로 그는 신한은행을 꼽았다.

■ "인력 육성 필수, 현지 영업력 검증된 금융사 M&A도 대안"

인력에 대한 고민 역시 철저히 이뤄져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이철영 연구원은 "인력이 장시간을 현지에서 보낼 수 있는 사람인지, 순환 근무가 가능한 대체 인력이 있는지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오랜 현지 경험이 있는 전문가를 투입하는 것도 살펴야 한다고 덧붙였다. 

현지 영업력을 갖춘 소규모 해외 금융사 M&A(인수합병)도 검토해 볼 만하다고 권고했다. 자본시장연구원 최 연구위원은 "진출한 국가의 현지 영업 경험이 있고 이 부문에 특화된 역량을 갖춘 회사를 인수하는 것도 검토할 만하다"고 말했다. 

소규모 해외 금융사 M&A 시 배타적인 태도는 금물이라는 권고도 이어졌다. 사전에 이 방법을 시도해 본 회사들이 이러한 몹쓸 태도로 M&A는 물론 해외진출에 적지 않게 실패한 사례가 있기 때문이다. 

최 연구위원은 같은 목표를 바라보고 함께 뛰어도 부족할 판에 회사 내에서 현지 인력을 향한 인종차별 등 배타적인 태도, 현지인들의 역할을 제한하는 몹쓸 관행마저 횡행하고 있는 실정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해외 진출에 성공하기 위해선 현지 인력들을 단기간 이용하려 하지 말고 함께 갈 수 있는 장기적인 비전을 공유한 후 이들에게 같은 배를 탔다는 믿음을 심어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화이트페이퍼, WHITEPAPER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