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화이트페이퍼=박세리 기자] 역사의 판도를 바꾼 총성을 울린 두 사람이 있다. 도마 안중근과 가브릴로 프린치프다. <글로벌 한국사, 그날 세계는>(휴머니스트.2016) 한국사와 세계사를 맞대어 두 사건을 흥미롭게 풀었다.
한국이 강제병합이 되기 1년 전 1909년 10월 26일 안중근은 조선 침략의 원흉으로 여겨지는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했다. 을사늑약을 체결하고 외교권의 박탈과 함께 통감부 설치가 병행됐다. 이를 명백한 침략 의도로 간파한 안중근 의사가 초대 통감인 이토의 암살 계획을 실행한 것이다. 안중근의 총성은 민족의 자존심을 지켰고 이후 독립운동에 큰 영향을 미쳤다.
안중근이 하얼빈 역에서 붙잡힌 5년 후, 보스니아에도 안중근 의사처럼 조국 독립을 위해 총성을 울린 젊은 청년이 있다. 1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사라예보의 총성’의 주인공 가브릴로 프린치프다. 1914년 6월 28일 보스니아의 수도 사라예보를 방문한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황태자 부부가 저격당한 사건이다.
보스니아계와 세르비아계 슬라브족으로 구성된 나라인 보스니아는 세르비아와 합병되기를 바랐지만 1908년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으로 합병된다. 이는 세르비아계 보스니아 주님들의 민족주의를 자극해 황태자 부부의 암살로 이어졌다.
비록 세계대전 발발이라는 엄청난 재난으로 바뀌었지만, 잃어버린 나라를 되찾기 위해, 그리고 제국주의에 맞서기 위해 총성을 울린 청년들이라는 점은 닮았다. 만약 그들이 전쟁이 끝날 때까지 살아남았다면, 민족의 영웅으로 당당하게 감옥에서 나올 수 있다는 점도 마찬가지다.
두 열사는 상대편 제국주의자들에게는 테러리스트였을지 모른다. 하지만 프린치프가 감옥벽에 남겼다는 다음 문장은 역사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한다.
“역사는 물 위에 쓴 진실이다.” (본문 중)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