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속의 명문장] 루트비히 명언 “언어의 한계는 세계의 한계”
[책속의 명문장] 루트비히 명언 “언어의 한계는 세계의 한계”
  • 박세리 기자
  • 승인 2019.01.29 13:4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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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어의 사연들> 백우진 지음 | 웨일북

[화이트페이퍼=박세리 기자] “언어의 한계는 세계의 한계다” 철학자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의 명언이다. 또 마르틴 하이데거는 “언어는 존재의 집이다”라 정의했고 미국의 대표적 언어학자 촘스키는 “언어가 사고를 지배한다”고 말했다.

우리말들의 사연을 담은 <단어의 사연들>(웨일북.2018)의 부제 ‘내가 모르는 단어는 내가 모르는 세계다’도 일맥상통한다. 인간은 보고 경험하는 것들 외에도 언어를 매개로 세계를 인식해서다. 어휘의 부제는 세계를 인식하는 범주를 좁힌다는 뜻이 담겼다. 일련의 명언들이 지닌 공통된 의미도 같은 맥락이다.

언어란, 의사소통의 가장 기초적인 체계라는 미시적 의미뿐만 아니라 인간의 사고를 지배하고 문화에도 영향을 준다. 가령 우리말에 ‘잘코사니’란 말이 있다. ‘미운 사람이 불행을 당한 경우에 고소함’을 뜻하고 감탄사로도 쓰인다. 우리가 흔히 “쌤통이다”라고 말하는 것과 비슷하다. 하지만, 영어나 일본어에는 없다. 목욕탕에서 미는 ‘때’에 해당하는 단어도 영어에 없다. 때를 미는 문화가 없어서 이를 표현하려면 문장으로 풀어야 한다.

‘억울하다’는 말도 찾아보기 어렵다. 한국어의 억울하다는 ‘자신의 잘못이 아닌 남의 잘못으로 자신이 안 좋은 일을 당하거나 나쁜 처지에 빠져 화가 나거나 상심하는 것’을 의미한다. 일본어에 ‘쿠야시이’라는 비슷한 말이 있지만, 의미가 다르다. ‘자신이 마음먹은 대로 일이 이루어지지 않거나, 남과의 경쟁에서 패하거나, 남이 자신에게 해코지해 분하거나 유감의 심정이 되는 것’으로 심리 상태가 다르다. 저자는 이 같은 언어의 차이는 사회 구조나 문화적 차이에서 비롯되었다고 설명한다. (본문 중, 일부 수정)

책은 이처럼 우리말에 담긴 이야기를 전하며 어휘가 풍부하다는 것은 세계를 보는 시선이 넓다고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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