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이트페이퍼=박세리 기자] 상식을 등진 법 집행은 법에 대한 기본 신뢰마저 무너뜨렸다.
‘논란’으로 끝나거나 솜방망이 처벌로 그치는 사건들이 있다. 정.재계 기득권층의 불법 청탁이나 로비, 비자금 관련 이슈가 그것이다. 번번이 법은 누구에게나 평등한 건 아니다는 것을 각인시켰고, 결국 법에 대한 신뢰와 권위는 바닥을 드러내고 말았다.
<김영란의 열린 법 이야기>(풀빛.2016)는 이런 법에 대한 진지하게 성찰할 기회를 준다. 철학적 식견을 겸비한 김영란 전 대법관이 법을 쉽고 체계적으로 전한다.
이를테면 법의 등장 배경을 설명하는 대목이다. 법이 왜 만들어졌고 무슨 필요가 있는지 <돈키호테>의 산초 판사 이야기로 이해를 돕는다. 돈키호테의 종자 산초가 임시 영주를 맡았을 때 서로 ‘돈을 갚았다. 갚지 않았다’며 채무관계로 얽힌 두 노인의 문제를 산초는 상식에 바탕을 두고 논리적으로 해결했다.
저자는 법이란 어떤 사건의 당사자들과 그 재판을 지켜본 사람들의 상식에 걸맞고 그들 모두를 이해시킬 수 있는 논리여야 한다고 말한다. 결국 법은 분쟁을 해소하고 해결하는 제3의 공정한 잣대로서 등장했다는 것.
이어 상식을 반영한 법에 대한 요구는 어느 시대나 동일하지만 사회마다 정의의 관념은 다르다고 전한다. 법의 기원부터 변화, 발전 과정을 거쳐 우리나라 법의 역사도 서술한다. 특히 법이 그 시대의 상식을 반영하며 불변성의 대상이 아니라는 점을 든 대목은 눈에 띄는 부분이다.
책에 따르면 우리나라 근대법은 일제 식민지 시대의 산물이다. 제헌 헌법에는 영미법을 참고해 시민법적 요소가 상당히 반영되었지만 실질적인 실행력을 가진 하위법은 일제 잔재가 상당히 남았다. 현실과 맞지 않는 왜곡의 대표적 사례 중 동성동본 금혼 규정이나 호주 제도는 현대 상황에 따라 헌법 불합치 결정이 났다.
저자는 이처럼 현실에 맞지 않은 법을 바꾸고 우리 자신의 권리를 제대로 지키려면 적어도 사회적 이슈가 되고 있는 법 조항이라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한다. 법도 낡았다면 재정비해 고칠 일이고, 시대와 맞지 않는다면 바꿀 일이다. 그러기 위해서 법의 주인인 ‘우리’의 관심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