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P칼럼] 특검 遺憾, 삼성 등 재벌이 과연 마녀였나
[WP칼럼] 특검 遺憾, 삼성 등 재벌이 과연 마녀였나
  • 장윤영 대표
  • 승인 2017.03.02 10:1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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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질 벗어난 수사... 애꿎은 기업 희생양 삼고 마무리
▲ 장윤영 화이트페이퍼 대표

#1991년 봄 낙동강 페놀사태가 터졌다. 해당기업을 연일 비판하던 매스컴은 속성상 이슈를 확대재생산시킬 새로운 사냥거리를 찾아헤맸다. 전국의 하천들이 차례로 '오염된 강'리스트에 올려졌고 강 주변에 제조공장을 둔 재벌기업들 역시 경쟁적으로 여론의 뭇매을 맞아야 했다. 그래도 모자랐다. 환경파괴에 대한 국민적 분노를 멈추지 않게 할 또 다른 마녀사냥감이 필요했다. 

 어느 순간 가정에서 버리는 생활하수가 하천오염의 주범이라는 화두가 던져지더니 사회적 관심이 그 쪽으로 확 쏠리기 시작했다. 합성세제가 융단폭격을 맞은 데 이어 느닷없이 샴푸가 단두대 위에 올려졌다. 샴푸가 하천오염에 차지하는 비중이 과연 얼마나 되겠냐는 샴푸업계의 볼멘 소리 따위는 끼어들 틈이 없는 분위기였다.

 때마침 괴담도 나돈다. 샴푸를 쓰면 대머리가 된다는, 아마 전세계인이 들으면 깜짝 놀랄 넌센스적 뉴스가 우리 사회엔 설득력있게 퍼져나갔다. 강남 부촌에선 촉촉한 성분이 가미된 수입 비누가 린스 겸용 비누로 졸지에 둔갑돼 불티나게 팔리기도 했다. 두 달여간 계속된 페놀광풍은 급기야 전국목욕업중앙회 회장들이 한 자리에 모여 삼푸추방 결의대회를 여는 희대의 퍼포먼스로 막을 내렸다. 샴푸는 최후의 마녀였다. 

 그로부터 10 년이 흐른 뒤 당시 논설위원으로 몸담고 있던 언론사에서 '마무리를 못하는 사회'란 제하의 칼럼을 통해 이를 다룬 적이 있다. 웃지못할 촌극의 여진이 그 때까지 이어져 호텔 고급 사우나에서조차 샴푸를 비치하지 못했던 시절이었다. 

#1997년 1월, IMF시대의 운명적 서곡이 된 한보사태가 발발했다. 대마불사의 신화도 깨져야한다는 거창한 명분과 함께 경제당국에 의해 결정된 조치였지만 총수퇴진-제3자 매각이라는 경제당국의 구상은 순진하기 짝이 없었다.

 며칠이 지나면서부터 매스컴은 '정태수회장=로비의 귀재=검은 돈'이란 연결고리를 만들기 시작했고 이후 예기치않은 정치적 스캔들로 들불처럼 번져나갔다. 실체없는 정태수리스트가 나돌더니 당시 소통령으로 불리던 YS의 차남 김현철씨의 한보개입 의혹에 초점이 맞춰지기 시작했다. 비선에서 국정을 농단해왔다는 비판을 받아온 그였지만 한보문제 만큼은 억울한 구석이 있었던 듯 했다. 등에 떠밀려 강도높은 검찰수사를 받았으나 무혐의로 풀려나왔다. 아니나 다를까 국민들의 공분은 더욱 거세졌다. 연말 대선을 앞둔 야권의 공세도 계속돼 이윽고 국회청문회에까지 불려나갔다. 그곳에서도 새로 밝혀진 건 없었다. 

 그해 5월 그는 기어이 쇠고랑을 찼다. 이채로운 건 죄명이 한보그룹 개입문제가 아니라 정치자금에 대한 증여셰 포탈 혐의였다는 점이다. 그가 최후의 마녀역할을 맡고서야 비로소 한보사태는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그 즈음해 당시 검찰총장은 한 언론사와의 인터뷰 말미에 이렇게 토로했다. " 수사 결과 현철씨는 한보특혜 비리와 관련이 없는 것 같다. 그러나 현철씨를 구속하지 않으면 축소수사라는 비난이 나올 수 있기 때문에 한보사건과 무관한 개인비리로 현철씨를 구속시키지 않을 수 없었다..."

#취재기자 시절의 경험적 사실을 새삼 들춰낸 나름의 이유가 있다. 최근 몇 달째 계속되고 있는 최순실게이트의 전개양상과 수습방식에서 그 옛날을 떠올리게 하는 비릿한 기시감이 풍겨나오기 때문이다. 대형이슈가 터질 때마다 격앙된 감정을 분출시키다 이내 문제의 본질을 잊어버리는 고질적인 버릇, 결국엔 사태의 본질적 해법과는 동떨어진 마녀사냥놀이에 골몰하는 모양새는 해와 달이 수천번 바뀌어도 변함이 없는 듯 하다.

 마녀사냥의 특징은 일단 한번 지목되면 억울한 사연이 있는 당사자일지라도 꼼짝없이 처형당할 수 밖에 없는 운명에 처해진다는 점이다. 광장의 한복판으로 내몰려 성난 군중의 돌팔매질을 당할 때 누가 감히 그 마녀의 옆에 서서 함께 돌을 맞으며 마녀를 동정하고 비호할 수 있겠느냐는 것은 세상사의 이치다.

 최순실게이트의 전개과정에선 재벌이 마녀사냥의 주요 타깃이 된 듯 하다. 지난달 28일로 종료된 특검이 70일간의 수사 여정을 통해 많은 성과를 거둔 점은 높이 사더라도 그 과정에서 대통령을 뇌물죄로 엮기 위한 승부수로서 삼성 이재용부회장의 구속에 전력을 다하며 재벌을 만악의 근원으로 몰아쳤던 점은 두고두고 아쉬움이 남는다.

 따지고 보면 최순실게이트를 관통하는 핵심적 물줄기는 대통령 주변에서 호가호위하던 비선실세들의 조폭성 갑질이었다. 비협조적인 태도로 인해 미운 털이 박혀 회사도 명예도 잃어버린 한진 조양호 회장을 굳이 떠올리지 않더라도 불이익을 당할까 두려워 협조할 수 밖에 없었던 기업들은 본질적으로 피해자 신분이었다는 재계의 주장은 나름 일리가 있었다. 하지만 재벌이 사건의 공범이냐 피해자냐라는 최소한의 합리적인 토론조차 우리 사회에선 애초부터 불가능했다. 정치권과 일부 시민단체들이 반기업정서를 부추기며 내건 정경유착의 상징이라는 일방적 구호와 강요된 단순문법만이 통용되고 범람했을 뿐이었다. 그들이 내세운 정경유착의 폐해는 탄핵국면의 한 귀퉁이에서 상대적으로 조용히 진행되고 있는 부산 엘시티 비리가 그 본질에 더 맞닿아있는 사건아 아닐까 싶다.     

 대통령에게 뇌물죄를 반드시 적용해야 하는 특검에겐 어차피 처음부터 재벌은 공범이자 희생양이어야 했다. 특검은 그 기본 전제아래 과거지사를 짜깁기하듯 연역적으로 규명해 나갔다. 과거의 잣대로 현재를 논하는 것 만큼 오늘의 달라진 잣대로 어제의 잘잘못을 새롭게 따지는 것에도 심각한 오류가 뒤따르기 마련이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건에 국민연금이 찬성한 사실을 특검은 범죄혐의로 내세웠지만 그 당시는 엘리엇이라는 국제적 투기자본으로부터 국가대표 기업인 삼성을 지켜내자는 공감대가 형성됐던 시절이었다는 점에는 애써 침묵했다. 비단 삼성 뿐이랴. SK가 최태원 회장의 가석방 구명로비 의혹을 받고 있지만 그가 당시 메이저급 그룹총수 가운데서는 최장기 복역수였다는 점과 가석방 요건이 충분했다는 사실은 의도적으로 간과되고있다. 이런 상황이라면 최근 국익우선 논리와 정부 방침에 협조하는 차원에서 사드 부지를 제공해준 롯데그룹도 훗날 새로운 정권이 들어서 사드배치에 대한 과정을 새삼 문제삼는다면 당시 반대급부가 없었겠느냐는 새로운 잣대로 수사를 받게될 처지에 몰릴 지 우려스럽다.

 오너 구속이라는 최악의 유탄을 맞은 삼성이 과연 진정한 마녀였는지, 아니면 억울한 마녀였는 지는 향후 법정에서 가리어질 사안이지만 그 과정에서 한국을 대표하는 글로벌기업이 마녀로 지목되어 치루고 있는 대가는 참담할 정도로 크다. 아니, 특검이 사회 전반의 반기업정서에 편승해 재벌을 손쉽게 마녀집단으로 옭아맨 그 후폭풍은 나라경제 전체에 휘몰아 칠 가능성도 적지 않다. 

 최순실게이트는 대통령 탄핵에 관한 헌재의 결정을 앞두고 정점으로 치닫고 있는 양상이다. 촛불과 태극기로 국론이 분열된 채 온 국민이 정치적 이슈에 함몰되고 있는 사이 피해자임을 강변했다가 공범으로 낙인찍힌 기업들은 의욕과 좌표를 잃은 채 방황하고 있다. 그런 그들이 총성없는 전쟁터인 국제비즈니스 무대를 앞으로 어떻게 헤쳐나갈 지 걱정스럽기만 하다. 그들은 나름의 처절한 노력으로 그 냉혹한 전쟁터에서 버티고 살아남은 한국의 대표적 전사들이었다. 

 어쩌면 우리는 지금 나라경제의 미래를 담보로 한 위험한 도박판을 벌이고 있는 지 모른다. 재벌을 '죄벌'로 단정하고 재벌해체가 정답이라고 목소리를 높여온 백면서생과 선무당의 위험한 칼춤놀이에 나라경제의 운명을 맡길 수는 없는 노릇이다. 잘못되면 그 심각한 대가는 온전히 국민이 치뤄내야 할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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