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이트페이퍼=정미경 기자] 흰색 말이 허리부분에 안장 대신 줄무늬 천을 덮고 있다. 그 오른쪽에 한 남자가 쭈그리고 앉아 있다. 그는 검은색 모자를 쓰고 정장을 입었다. 그가 말에게 뭔가 말을 하고 있다. 잘못을 혼내는 모양이다. 말은 고개를 숙이고 땅바닥을 바라보고 있다. 잘못을 뉘우치고 있는 듯 혹은 용서해 달라는 듯 꼬리를 흔들고 있다. 이 때문에 유심히 보지 않으면 꼬리가 잘린것으로 생각할 수도 있다.
말이나 사람이나 그리 청결해 보이진 않지만 둘 사이의 교감이 이뤄지고 있는 듯해 푸근한 감정이 느껴진다.
요세프 쿠델카의 작품 중 하나인 'Romania, 1968'이다. 쿠델카는 구 소련의 프라하 침공을 사진으로 기록해 유명해진 사진작가다.
체코 출신인 그는 집시들의 삶과 자취를 기록한 사진가로도 잘 알려져 있다. 그가 60-70년대 동유럽에서 찍은 ‘집시’ 사진전이 송파구의 ‘한미사진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다.
사진은 모두 흑백 이미지로 단순하면서도 강렬한 인상을 준다. 그의 사진에는 소수민족 혹은 인간의 삶과 죽음의 애환이 투사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 자신이 1970년에 체코를 떠나 망명생활을 하며 집시처럼 떠돌이 생활을 했기 때문에 그들의 일상적인 모습을 찍을 수 있었다.
무국적 사진가였던 그는 1971년 매그넘 포토스(magnum photos) 소속 작가가 되어 지금까지 활동 중이다. 1975년 뉴욕현대미술관에서 전시를 하고 그 해에 <집시> 사진집을 출간했다. 당시 이 사진집은 한국의 사진가들에게도 신선한 충격이었다고 전해진다.
그의 사진은 전통적인 르포나 다큐멘터리 범주를 넘어선 것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이내 사라져버릴 집시라는 공동체와 그들 나름의 독특한 문화를 거침없이 사진으로 담았다.
2016년 12월 17일에 시작된 이번 전시는 올 4월 15일까지 계속된다. 이 전시회는 ‘2015-2016 한불 상호교류의 해’를 맞아 진행되는 것으로, 전시 개막 다음날인 12월 18일에는 요세프 쿠델카가 전시 개막 강연에 직접 참석해 관객들과 일문일답의 시간도 가졌다.
20층에서 사진을 감상한 후 바로 아래 층에 있는 건물 라운지에서 커피 한잔 마시고 내려오길 추천한다. 그곳에는 다양한 사진집이 비치되어 있다. 눈 앞이 탁 트인 하늘 아래 푹신한 소파에 앉아 사진전의 여운을 느껴보거나 사진집들을 천천히 넘겨보는 여유를 갖는 것도 좋다. 쿠델카의 말이 이해될 것이다.
“나는 끝나고 있는 것, 즉 이제 곧 더는 존재하지 않을 것에 늘 끌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