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속에 이런일이] 피카소 '게르니까 폭격 참상에 오열'... '프랑꼬, 히틀러 손잡고 민간인 학살' 게르니까 벽화 통해 고발
[책속에 이런일이] 피카소 '게르니까 폭격 참상에 오열'... '프랑꼬, 히틀러 손잡고 민간인 학살' 게르니까 벽화 통해 고발
  • 박세리 기자
  • 승인 2016.05.23 15:1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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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마음에 닿다> 박영진 지음 | 마음지기

                             [게르니까] Ⓒ마음지기

[화이트페이퍼=박세리 기자] 스페인 시내 벽에 그려진 피카소의 ‘게르니까’다. 이 그림에 담긴 무게는 남다르다. 스페인 내전 당시 피카소는 프랑꼬의 독재에 항거하는 뜻으로 그림을 통해 프랑꼬 정권의 잔혹함을 표현했다. 그림 속 하늘을 보며 두려워하는 사람들은 스페인 내전으로 죽어가는 민간인들이다. 좌측 죽은 아이를 안고 절규하는 여인의 모습은 폭격의 참상을 여실히 보여준다.

<스페인 마음에 닿다>(마음지기.2016)에 이와 관련한 자세한 설명이 실렸다. 1936년 2월 16일 스페인의 총선거가 시행되고 인민전선파가 승리해 1936년 2월 19일 에스빠냐 제2공화국 인민전선 정부가 수립됐다. 같은 해 7월 17일 공화국 수립에 반대한 프란시스꼬 프랑꼬가 군부 반란을 일으켰고 몇 차례 내전 끝에 결국 반란군의 승리로 끝났다.

게르니까 폭격은 한창 내전 중이던 1937년 4월 26일에 일어났다. 프랑꼬를 지원하던 나치군이 평와로웠던 게르니까에 43대 폭격기를 투입했고 이로 공식적 사망자만 1,654명, 부상자는 889명이었다. 게르니까 폭격이 훗날 세계적인 비판을 면치 못하는 이유는 희생자 대부분이 어린이와 여성이었기 때문이다.

왜 하필 이 작은 마을이어야 했을까. 프랑꼬에게 있어 민족주의가 강한 바스꼬 민족은 눈엣가시였고 내전 후 진정한 통일을 위해서 바스꼬 세력을 약화해야 했다. 또한, 히틀러는 신무기들을 시험해 볼 장소가 필요했다. 두 독재자의 이익이 맞물려 민간인들의 학살이 자행된 것.

당시 피카소는 프랑스에서 만국 박람회의 스페인관 벽화를 그려달라는 요청을 받았고 게르니까 참상을 접하고 오열했다. 그는 5월 1일부터 6월 4일까지 무려 한 달에 걸쳐 무채색으로 뒤덮인 대작 ‘게르니까’를 완성한다. 불과 80년 전 일어났던 일이다. (본문 중) 일부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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