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화이트페이퍼=정미경 기자] 책을 읽지 않는 시대. 그 중 소설에 대한 대중의 홀대는 더 심하다. 특히 성인이 되면 손에서 소설을 놓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소설을 읽어야 할까? 문학평론가이기도 한 이어령 선생이 다섯 편의 소설을 통해 들려주는 <소설로 떠나는 영성순례>(포이에마. 2014)에 그 답이 있다.
“소설은 시처럼 아름답지가 않습니다. 음악처럼 신비한 힘도, 드라마처럼 숨 막히는 스릴도 없습니다. 그렇다고 과학처럼 증명할 수 있는 확실한 팩트나 수학처럼 계산할 수 있는 어떤 공식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소설이 우리를 매혹시키는 까닭은 그것이 바로 ‘거리로 메고 다니는 거울’이기 때문입니다. 지극히 사소하고 일상적인 세상살이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는 그 삶의 민낯을 볼 수 있습니다. 알면서도 숨기고 있었던 것들, 자신도 느끼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차마 용기가 없어 말하지 못한 것들을 소설을 통해 우리는 체험하고 확인합니다. (중략)
“오후 다섯 시의 그림자five o'clock shadow"라는 말을 아십니까. 도시에 사는 사람들은 아침에 수염을 깍고 직장으로 나갑니다. 어제 하던 일과 똑같은 업무를 반복하고 백 번이나 천 번이나 앉았다 일어서는 그 의자 위에서 세상일을 바라봅니다. 그러나 퇴근 시간 오후 다섯 시가 되면 아침에 깎았던 수염이 자라 그 까칠한 자국에 엷은 그림자가 집니다. 그것이 도시인들이 겪는 하루의 변화입니다.
모험도 열정도 아무런 기적도 아닌 하루의 이야기 속에 드리운 그림자일 것입니다. 하지만 놀랍게도 소설은 오후 다섯 시의 그림자 속에서 집으로 돌아가는 오디세우스의 긴 항해와도 같은 이야기, 그리고 이야기 끝에서 인간의 힘으로는 보지 못한 영성의 세계를 찾게 됩니다. 대체로 소설은 오후 다섯 시의 그림자 속에서 자라고 진화합니다.” (p.6~p.7)
저자의 말대로 영웅처럼 보이는 장발장도 빵을 훔친 좀도둑 이야기이고, 장미 가시에 찔려 죽었다는 릴케의 <말테의 수기>도 요오드포름과 튀긴 감자 냄새가 풍기는 파리의 거리 이야기다.
하루 하루 무심하게 출퇴근을 반복하는 도심의 사람들. 소설小說은 말 그대로 ‘소인들의 이야’기다. 바로 우리들의 이야기다. 소설을 통해 우리는 간접 체험을 할 수 있다. 바로 이런 것들이 우리가 소설을 읽어야 할 이유이지 않을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