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속의 명문장] 법정 스님 '몸이란 그저 잠시 걸친 옷일 뿐'
[책속의 명문장] 법정 스님 '몸이란 그저 잠시 걸친 옷일 뿐'
  • 정미경 기자
  • 승인 2015.11.12 00:3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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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잎이 떨어져도 꽃은 지지 않네> 법정. 최인호 글 / 여백

[화이트페이퍼=정미경 기자] 법정스님과 최인호 작가. 사람들에게 많은 영향을 끼쳤지만 이미 만날 수 없는 분들이다. 법정스님은 2010년 3월에 길상사에서 입적했고, 최인호 작가는 2013년 9월 선종했기 때문이다. 특히 법정 스님은 입적하기 전에 자신이 지은 책을 모두 절판하라는 유언을 남겨서 이를 안타까워하는 독자들이 많다.

올해 초 출간된 <꽃잎이 떨어져도 꽃은 지지 않네>(여백. 2015)는 법정스님과 최인호 작가의 대화 내용을 생생하게 들려주고 있어 반갑다. 이 책은 2003년 4월, 스님과 최작가가 길상사 요사채에서 나눴던 대담을 엮은 것이다. 두 사람은 행복과 사랑, 삶과 죽음, 시대정신과 고독 등 11가지 주제에 대해 생각들을 나눴다.

‘샘터’라는 잡지에 각자 연재물을 쓰면서 처음 만난 이후 30년 동안 두 사람은 열 번 남짓 만났을 뿐이다. 수필가로서, 소설가로서 당대를 대표한 법정과 최인호는 때로는 가까이에서, 때로는 멀리서 서로를 응원하고 독려하기도 했다. 최 작가의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는 불교 소설 <길 없는 길>은 스님의 한마디에서 시작됐다.

"1980년대 초반 스님을 샘터에서 처음 뵈었을 때 앞으로 뭘 쓰겠나고 내게 물었던 적이 있었다. 그때 나는 대답했었지.

“불교에 관한 소설을 쓰고 싶습니다.”

그때 겁도 없었다. 막연히 불교에 대한 초발심적 관심을 갖기 시작하였던 초창기였지. 아직 가톨릭에 귀의하기도 전의 일이었다. 그런데도 스님은 이렇게 말하며 내게 용기를 주지 않았던가.

“쓰고 싶어 하면 언젠가는 쓰게 되겠지요. 업이란 것이 그런 것입니다. 말과 행동이 업이 되어서 결과를 이루게 됩니다.” (p.28~p.29)

모든 것은 받아들기에 따라 행복이 될 수도 있고 고통이 될 수도 있다는 법정의 말을 시작으로 두 사람의 대화는 사랑, 가족, 삶의 자세, 그리고 죽음으로 까지 이어진다. 사랑에 대한 이야기에서도 스님의 무소유 정신이 묻어난다.

“사랑이라는 건 내 마음이 따뜻해지고 풋풋해지고 더 자비스러워지고 저 아이가 좋아하는 게 무엇인가 생각하는 것이지요. 사람이든 물건이든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한데 소유하려고 하기 때문에 고통이 따르는 겁니다.” (p.49)

대화의 끝에 이르러 최인호가 묻는다. “스님, 죽음이 두렵지 않으십니까?” 법정이 답한다. “몸이란 그저 내가 잠시 걸친 옷일 뿐인 걸요. 죽음은 누구나 겸허히 받아들여야 할 자연스러운 생명 현상입니다.” (p.177)

불가의 수행자로, 가톨릭 신자로 각자의 종교관에 바탕을 두고 대화를 풀어나가지만 이들의 이야기는 깊은 울림을 준다. 책은 대화형식으로 쓰여 졌기에 둘의 이야기를 현장에서 직접 듣는 느낌이다. 지금은 고인이 된 두 사람의 향기는 이렇게 한 권의 책으로 우리 곁에 남게 됐다. “꽃잎은 떨어지지만 꽃은 지지 않는다”는 성 프란치스코 살레시오 성인의 금언처럼 말이다.

화이트페이퍼, WHITEPAP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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