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속의 포스트잇] 재빨리 잊어버려? 세월호 비극 뒤의 잔인한 냉소 '아들 먹어치우는 사투르누스 같아'
[책속의 포스트잇] 재빨리 잊어버려? 세월호 비극 뒤의 잔인한 냉소 '아들 먹어치우는 사투르누스 같아'
  • 박세리 기자
  • 승인 2015.10.22 15:2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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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야간비행>

                  출처 : wikimedia commons

[화이트페이퍼=박세리 기자] 스페인의 거장 프란시스코 데 고야의 <검은 그림 (pinturas negras)> 연작 가운데 소위 <아들을 먹어치우는 사투르누스>라는 작품이다. 고야가 말년에 그린 그림으로 인간의 사악한 본성을 폭로한다.

그림에 등장하는 사투르누스는 고대 로마의 농경신이다. 신화에 따르면 아들 중 한 명에게 왕좌를 빼앗길 것이라는 예언을 듣고 자기 아들을 잡아먹는다. 괴기스럽기까지 한 이 그림을 <스페인 야간비행>(북노마드.2015)의 저자 정혜윤은 꿈에서 두 번이나 보게 된다. 책에 따르면 지난봄, 세월호 침몰 이후 프란시스코 고야의 그림이 꿈에 나오는 경험을 했다. 그녀는 고야의 그림과 우리 현실과 잇대어 이렇게 해석한다.

‘나는 고야의 그림을 두 번째로 보면서 우리 시대를 생각할 수밖에 없었어. 자식을 잡아먹는 거인의 눈 역시 공포에 사로잡혀 있어. 눈은 튀어나올 것 같아. 상황은 비극적이야. 최소한 잡아먹히기 직전의 상황도 지나가 버린 거야.

그런데 문제는 우리 시대가 비극을 싫어한다는 점이야. 당신은 노력하면 얼마든지 당신이 원하는 것이 될 수 있다, 라고 외치는 자기계발시대는 부정적인 것에 계속 마음을 두는 것을 의지박약으로 취급하고 미워해. 비극과 상관없이 살기를 원하기 때문에 비극을 참지 못해.

우리 시대는 쾌락적이고 뭐든지 끊임없이 빨리, 과잉 적응해. 오류와 실패에 맞서 싸울 것이 아니라 어서 빨리 지나보내자고 말해. 역사는 재빨리 잊는 것이 좋다고 말해. 비극의 빈자리를 재빨리 차지한 것은 상투적인 이데올로기나 냉소주의나 무관심, 잔인함이야. 마치 후안 라몬 히메네스의 시 <바다> 같아.’

실로 유감이다, 나의 배가 저 깊은 바닷속에서 뭔가 거대한 것과 충돌했다니

그러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아무 일도…… 정적…… 파도들……

-아무 일도 없었던 것인가, 혹은 이제 모두 정리되어, 우린 이미 새로운 것에 조용히 적응된 것인가?

-히메네스의 시 '바다'

저자는 고야의 그림에는 있고 우리 시대엔 없는 것은 ‘분노’라 일갈했다.

화이트페이퍼, WHITEPAP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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