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에겐 '청춘의 문장' 있습니까
당신에겐 '청춘의 문장' 있습니까
  • 정미경 기자
  • 승인 2014.06.11 23:1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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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시 10년 후가 기대되는 김연수

[북데일리] “책이 하나의 물질로서 어떤 사람의 인생에 개입했다는 말을 들을 때는 기쁩니다. 예를 들어 '<청춘의 문장들>을 읽으면 대학 신입생 시절 기숙사로 올라가던 언덕길의 아카시아 향기가 떠오릅니다'라고 내게 말해준 독자가 있었는데, 이런 말은 너무 멋진 말이에요. 제 책이 누군가의 인생에서 그런 물질로, 아카시아 꽃 같은 것으로 남는다면 정말 어마어마한 일이 되겠죠. 그 때문에 자꾸만 좋은 책을 내고 싶은 거죠. 그들이 일단 갖고 싶어야 그런 책이 될 수 있으니까요.” (p.182~p.183)

<청춘의 문장들+>(마음산책. 2014)는 2004년에 출간된 김연수의 <청춘의 문장들> 이후 10년 만에 선보이는 그의 새로운 산문집이다. ‘청춘’, ‘우연과 재능과 간절함’, ‘책을 읽는다는 것’ 등 10개의 주제로 쓴 산문이 실렸다. 더불어 한 편의 글이 끝날 때 마다 작가가 평론가 금정연과 나눈 대담도 함께 소개된다.

책에서 작가는 직장 시절 박완서 작가와 관련된 에피소드도 들려준다. 10년 전 <출판저널>이란 잡지사에서 말단 기자로 있을 때의 일이다. 당시 박완서 선생이 <너무도 쓸쓸한 당신>을 출판했고 저자가 인터뷰를 하게 됐다. 그에게는 어른들이 너무 어렵게만 느껴지던 시절이었다.

“갑자기 선생이 “그럼 <노인과 바다>는 노인들만 읽으라는 법이라도 있답디까?”라고 반문했다. 무슨 질문을 던졌기에 선생이 그렇게 대답한 것인지는 가물가물하고 그 말씀만 어제 들은 것처럼 선명하게 기억난다. (중략) 그 말씀을 하실 때, 선생의 얼굴을 바라보는데 그 얼굴이 나보다 더 어리게 보이더라. 무슨 전설에나 나올 거짓말 같은데, 진짜 그랬다.” (p.85)

그때는 <너무도 쓸쓸한 당신>이 노년의 삶을 다룬 작품들을 모았다는 평이 많았다. 아마 “젊은 사람들은 그 소설들을 읽기 어렵지 않을까요” 같은 정도의 질문을 했던 듯하다. 선생의 위 이야기를 듣고 저자는 민망하고 무안한 가운데서도 자신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고. <노인과 바다>를 노인들과 바다들만 읽으라는 법은 없으니까.

그 덕분에 저자는 어른들을 어려워하던 습관을 조금이나마 버릴 수 있게 됐다고 말한다. 인터뷰 기사에다 선생이 ‘꼭 서울에 유학 갔다가 방학 맞아 고향에 내려온 열일곱 여고생 갔다’고 썼고, 편집위원으로부터 참 잘 썼다는 칭찬을 받았다는 후일담도 전한다.

다음은 그가 <청춘의 문장들>이 독자들에게 무엇이었으면 싶은지에 대한 이야기다.

“너무 잘 살아보려고 하지 마세요. 그런 건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사람들에게나 어울리는 거잖아요. 젊었을 때는 천 년을 살 수 있는 사람처럼 살았으면 해요. 하고 싶은 거 다 하고, 보고 싶은 거 다 보고요. 하지만 그런 낮을 보낸 날에도 밤은 어김없이 찾아올 것이고, 그 밤에 대개 우리는 혼자겠죠. 그런 밤이면 아마 시간이 너무 많아서 버겁다는 생각이 들기도 할 거예요. 맞아요. 그래서 청춘은 무거워요. 빨리 늙었으면 싶기도 하고요.

그럴 때 저는 저보다 먼저 살았던 사람들의 책을 읽었어요. 그러다가 마음이 동하면 잘 알지도 못하는 문장들에 줄을 그었죠. 그렇게 책에다 몇 번 밑줄을 긋다가 잠들고 나면, 또 새로운 날이 시작됐죠. 역시 어마어마하게 많이 남은 나날 중의 첫 번째 날. 누군가에게 <청춘의 문장들>은 그 새로운 날에 돌이켜보는, 지난밤의 밑줄 그은 문장 같은 것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p.197)

책 말미에 실린 김애란 작가의 발문도 좋다. <청춘의 문장들>에 등장했던 김연수 작가의 딸 ‘열무’ 이야기도 나온다. 덕분에 10년 전의 기억을 공유하는 독자들에게 아련한 추억을 선사하기도 한다. 꽃잎은 지고 봄날도 무심히 가고 있다. 김연수의 글이 있어 좋다. 작가님, “10년 후에 다시 뵙죠.”

책을 덮고, 10년 전 그가 썼던 <청춘의 문장들>을 다시 펼쳐본다. 책 중간 우연히 펼쳐진 곳에서 발견한 문장. “청춘은 들고양이처럼 재빨리 지나가고 그 그림자는 오래도록 영혼에 그늘을 드리운다.” (p.141) 책을 처음부터 다시 살펴보려 첫 페이지를 열었더니 이 문장이 또 적혀 있다. 기막힌 우연이다. <정미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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