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타임즈’가 뽑은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경제학자’ 제프리 삭스. 세계적인 석학인 그는 빈곤에 시달리는 가난한 나라에 대한 맞춤 경제 처방으로 유명하다.
1980년대 후반, 4만 퍼센트에 달하는 볼리비아의 살인적인 인플레이션을 10%로 끌어내렸고, 폴란드, 인도, 잠비아 등 세계 100여개 국가의 경제 자문을 맡았다. 1997년 한국의 외환위기 당시 IMF가 내린 고금리 처방을 강력하게 비판해 국내에 더 많이 알려진 인물.
KBS 1TV `TV책을 말하다`는 지난 16일 문화의 달 특집으로 <빈곤의 종말>(21세기북스, 2006)의 저자이자 폴 크루그먼, 로렌스 서머스와 함께 미국 ‘경제학계 3대 슈퍼스타’로 불리는 제프리 삭스와의 단독 인터뷰를 방영해 관심을 모았다.
방송에서 제프리 삭스는 가난한 나라를 도와야 한다는 평소 신념을 다시 한 번 강조했다.
<빈곤의 종말>을 통해 부자 나라의 원조와 절대 빈곤 종식을 외쳤던 그 답게 방송에서도 “가장 가난한 사람을 돕지 못하는 경제학을 어디다 쓰겠냐”며 “경제학은 가장 절실한 곳에 도움을 줘야 한다”고 역설했다.
제프리 삭스가 제 3세계에 관심을 가진 직접적 계기는 인도의 한 가난한 마을을 방문한 후였다. 당시 그는 극단적 빈곤을 보고 그 상황을 개선해야겠다고 다짐했다. 90년대 중반, 아프리카를 찾은 후 그 결심을 더욱 굳혔다.
제프리 삭스는 “질병, 가난, 사회기반시설이 없다는 게 아프리카의 가장 큰 문제점”이라며 “학자로서 해결책이 있을 것이라는 깨달음을 얻었다”고 밝혔다. 그 후 제프리 삭스는 빈곤에 시달리는 국가들의 해결사 노릇을 자임했다.
그가 생각하는 제 3세계 정책의 핵심은 해당 국가에 맞는 경제 처방이다. IMF가 주장하는 일반적인 해결책만으론 절대적 빈곤을 해결할 수 없다는 것.
제프리 삭스는 “지난 20년간 IMF는 산업을 민영화시키고 확장하는 걸 해결책으로 주장했지만 옳지 않았다”며 “가나와 한국, 멕시코, 폴란드는 다르다”고 말했다. 처방에 앞서 각 국가의 특별한 상황을 이해해야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생각은 그가 주장한 ‘임상경제학’과 ‘감별진단’에 잘 나타나 있다. 소아과 의사인 아내를 보며 깨달았다는 이 이론들은 ‘경제학자도 의사처럼 경험을 통한 수련이 필요하고, 각 국가에 맞는 진단과 처방을 내려야 한다’는 게 요지다.
이와 관련된 재미있는 일화가 있다. 89년 폴란드에서 일할 때 제프리 삭스는 시장 자유와 예산 개혁, 무역 자율화를 강조했다. 공산 체제를 막 끝낸 폴란드에선 이러한 조치가 필요하다고 판단했기 때문. 그런데 그가 잠비아에 갔을 때 IMF가 폴란드에서 강조했던 정책을 추진하는 것을 목격했다. 제프리 삭스가 반대하자 IMF 담당자는 “당신이 주장한 이론이 아니냐”고 따져 물었다. 이에 대한 제프리 삭스의 대답은 그의 정책 핵심을 대변한다.
“그건 폴란드에서 했던 말이다, 잠비아는 다르다. 여긴 포장된 도로조차 없다. 기본적인 문제가 전혀 해결되지 않은 곳이다.”
이 같은 제 3세계에 대한 애정은 `세계 시민`이라는 그의 신념과 맞닿아 있다.
제프리 삭스는 “나는 한 국가의 국민이기 이전에 세계시민”이라며 “국수적인 시각만 고집하면 위험하고 안전할 수 없다"고 말했다. 때문에 경제 정책을 입안할 때도 조국 미국이 아닌 각 국가에 맞는 처방을 내릴 수 있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제프리 삭스는 “나는 자유시장을 지지하지만 가난한 사람이 고통받는 자유시장은 지지 하지 않는다”며 평소 신념을 다시 한 번 드러냈다.
한편 ‘TV책을 말하다`는 제프리 삭스에 이어 미래학자 앨빈토플러, 프랑스 석학 자크 아탈리와의 인터뷰를 23, 30일 연속 방영한다.
(사진=1. 빈곤의 종말 2. 제프리 삭스와 ‘TV책을 말하다’ 진행자 왕상한 교수의 대담)[북데일리 진정근 기자]gagoram@yaho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