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번은 돈에 관한 강연을 하면서 참가한 분들에게는 ‘가계부’를 쓰는 사람들이 있다면 손을 들어보라고 물었다. 꼼꼼히 가계부를 쓰는 남자들은 거의 없었다. 그렇다면 부인들은 어떤 가요라는 질문을 던졌다. ‘아주 꼼꼼하게 쓰고 있는 것 같다’라고 답하는 사람들은 소수에 불과하였다.
가계부란 단어를 생각하면 나는 두 개의 사례가 머리 속에 떠오른다. 하나는 유학 중에 룸메이트를 지냈던 대만 친구이야기다. 필자는 당시에 20대 후반이었고 싱글이었기 때문에 돈 문제에 대해서 그다지 생각이 깊지 않았다. 대만 친구는 직장은 다니다가 유학을 온 경우에 해당하는데,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아주 큼직한 가계부를 규칙적으로 쓴다는 점이다. 마치 비단 가게 왕서방을 연상시키기라도 하듯이 반찬값, 잡비 등 하나 하나 꼼꼼하게 기록하는 것을 본 적이 있다. 당시만 하더라도 ‘참으로 쩨쩨하다’라는 생각을 가졌음은 물론이다.
필자가 본격적으로 가계부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지금부터 5년 전이라고 생각한다. 집 사람이 2년 정도 집을 비웠기 때문에 수입과 지출 모두를 내가 관리해야 하던 시절이었다. 나는 책 사이즈의 평범한 가계부를 한권 구입해서 2년 동안 또박 또박 가계부를 기록해 나갔다. 물론 몇 앞 장에는 금융자산, 실물자산, 부채, 소득 그리고 지출 등과 같이 집의 전체적인 재정 상황을 기록하였음은 물론이다.
당시는 자기 일을 막 시작 한 시점이고 자신이 집안의 재정적인 문제를 모두 책임져야 하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반드시 필요한 일 가운데 하나가 가계부를 적는 일이었다. 당시의 경험이 가르쳐 준 진실 가운데 하나는 수입과 지출은 기록하는 일은 세 가지 선물을 가져다준다는 점이다.
하나는 돈을 아끼도록 동기를 부여하는 점이다. 다른 하나는 자신의 재정 상태를 항상 파악하고 있기 때문에 더 나은 상태를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가를 궁리하도록 만든다는 점이다. 마지막은 자신의 삶을 중요한 한 단면을 기록해 나가는 재미를 준다는 점이다. 젊은 날부터 가계부를 꾸준하게 적을 수 있다면 부자로 가는 좋은 습관 하나를 갖는 셈이다.(1/36)
[공병호 자기경영연구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