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각 없는 자사주 매입, 갑론을박만 언제까지?
소각 없는 자사주 매입, 갑론을박만 언제까지?
  • 고수아 기자
  • 승인 2023.12.05 20:1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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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 상속세 부담 크다엔 한목소리
사진=화이트페이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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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이트페이퍼=고수아 기자] 자사주 제도가 본래 목적과 다르게 이용되고 있다는 지적은 오랜 기간 이어온 논쟁거리로 꼽힌다. 지배주주의 비용이 아닌 회사돈(배당가능이익)을 통해 지배주주만 이득을 보는 구조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현행 자사주 제도와 관련해선 정부 역시 글로벌 스탠다드에 비춰 미흡한 부분을 살펴보고 지혜로운 해법을 찾겠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는데 최근 학계와 업계가 국내 주식시장의 코리아 디스카운트 요인으로 꼽히는 소극적인 자사주 소각 문제를 놓고 거듭 갑론을박을 벌여 눈길을 끌었다.

■ 자사주 논쟁, 대안을 찾는다면
 
최근에도 자사주 논쟁은 학계와 업계에서 다시 한 번 벌어졌다. 고려대 기업지배구조연구소와 자본시장연구원이 공동 주최로 지난달 23일 서울 성북구 고려대 경영대학 현대자동차경영관에서 연 '기업의 주주권과 경영권 정책 세미나'에서다. 
 
이날 '자기주식(자사주) 소각 의무화 논의와 대안'이라는 주제로 발표를 맡은 황 연구위원은 자사주 의무 소각 대신 자사주 보유목적과 상호주 보유현황 명시 등 자사주 관련 공시요건를 대폭 강화하고, 자사주 취득-처분 및 신주발행과 자사주 처분의 입법 균형 등으로 합리적인 대안을 모색할 것을 제안했다. 
 
현행법상 기업이 취득한 자사주의 처분, 소각, 보유 결정은 자유다. 보유기간에 제한이 없고 절세 등의 목적 달성이 가능하다. 대신 상법상 회사가 보유하는 자사주는 모든 권리가 정지된다. 명문으로 자사주는 의결권을 인정하지 않고, 해석상으로는 자익권, 공익권, 무상증자 등에 권리가 없다. 자사주는 발행주식 총수에 산입하지 않고 회계상 자산으로 인정되지도 않는다. 
 
앞선 큰 흐름을 보면 자사주 취득 규제가 완화된 것은 2012년부터다. 개정 전 상법은 특정목적에 의한 자사주 취득만을 허용했으나 이익배당가능액 한도 내에서 자사주 취득이 가능하도록 변경됐다. 당시 상법 개정 취지는 자사주 취득과 보유를 인정해 기업이 얻을 수 있는 장점을 감안, 재무관리의 자율성을 확대해주는 취지가 있었다.
 
하지만 오늘날에 이르러서는 기업의 자사주를 활용해 대주주 지배력을 높이는 (인적분할시) '자사주의 마법' 논란을 비롯해 ▲합병 등 조직재편시 백기사로 자사주를 활용한 사례 ▲상호주 보유를 통한 우호주주 형성과 지배권 강화 등의 문제가 거론된다. 자사주 재원은 주주에게 환원돼야 하는 배당가능이익인데도 꼭 그렇게만 쓰이지는 않아 지배구조 문제, 코리아 디스카운트 요인으로도 묶여 지적되고 있다.
 
게다가 올해 상호주 보유를 통한 지배권 강화 문제와 관련해선 해외의 한 기관으로부터 금융당국에까지 '불만'이 들어간 것으로도 알려졌다. 황 연구위원은 "2023년 아시아기업지배구조협회(ACGA)가 금융위원장에게 서신을 보내면서 상호주 문제가 한국이 심각하다. 좀 개선을 해줘야 지배구조 보고서도 조금 더 한국에 대해 긍정적인 평가를 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고 설명했다.
 
자사주에는 의결권이 없지만 인적분할을 하면 자사주에도 신설회사의 신주가 배정되면서 의결권이 살아난다. 지난 6월 김준석 자본연 선임연구위원의 '인적분할과 자사주 마법' 보고서를 보면 인적분할 전후 지주회사 전환 표본에서 외부주주의 지분율은 모두 유의하게 감소했고, 자기주식 지분율이 높을수록 자사주 마법이 작동하면서 지배주주의 신설회사 지분율이 증가하는 모습이 명확하게 관찰됐다는 대목이 나온다. 
 
인적분할과 자사주 마법(김준석 선임연구위원). 자료=자본연

또 자사주를 제3자에게 매각시 인수자는 보유지분에 대한 의결권을 갖게 된다. 관련해 김소영 금융위 부위원장 역시 지난 6월 "기업이 보유중인 자사주를 우호적인 기업과 맞교환시 사실상 의결권이 부활하게 되는 효과가 발생, 일반주주 지분은 희석되고 건전한 경영권 경쟁도 저해될 우려가 있다"고 언급한 바 있다.

황 연구위원에 따르면 현재 대부분의 상장사는 자사주 5% 미만을 보유하고 있다. 지난 6월 말 기준 전체 유가증권시장·코스닥시장 상장회사의 95%에 해당하는 총 2483곳 중 자사주를 5% 미만 보유한 기업은 81.1%에 해당하는 2013곳으로 집계됐다. 다만 자사주 비중이 5% 이상 10% 미만인 상장사는 10.3%(255곳), 20%를 초과하는 상장사도 2.3%(57곳) 정도가 있다. 
 
한편으로는 국내 기업들이 지배구조 측면에서 자사주 매입을 통해 지배주주의 경영권 방어 수단으로 활용하고 있다는 측면이 있고, 최근에는 자발적으로 자사주를 소각하는 국내 기업들이 늘고 있다. 황 연구위원에 따르면 올 들어 10월 말까지 91개사가 자사주 소각을 결정했는데, 이는 2021년 대비 2.7배, 작년 한 해 보다 1.4배 증가한 수준이다. 
 
그는 "현행법적 관점에서 보면 자사주는 미발행 주식으로도 보고 자산으로도 보기에 어디에 속하느냐는 필요 없는 논의라고 생각한다. 특이한 점은 인적분할을 할 때 신주배정 사례"라면서도 "현행법상 자사주는 교환사채나 상환사채의 대가, 주식매수청구권 부여, 조직재편시 신주발행 대신 자사주 교부, 자사주에 대한 담보설정, 임직원 성과보상 등에 활용될 수 있다"고 장점을 꼽았다.
 
또한 "회사의 자발적인 자기주식 소각은 시장의 평가를 받아야 하는 부분이지 세제 혜택으로 지원할 분야도 아니고 법적으로 소각을 의무화할 분야는 아니다"면서도 "단, 보유하겠다고 한다면 정확한 정보를 줘야 한다. 좀 더 현실적인 법 개선방안은 자기주식은 아무 권리가 없다는 것을 명문화하는 게 필요하다"고 말했다.
 
사진=자본연
자기주식 소각 의무화 논의와 대안(황현영 연구위원) 자료=자본연

■ "소각 땐 코스피 단숨에 3620 가능"

다만 패널토론에서는 다양한 의견으로 합의에는 이르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패널로는 김중혁 고려대 교수, 강성부 KCGI 대표, 김광일 MBK파트너스 대표, 정우용 한국상장회의협의회 부회장, 정준혁 서울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참석했다.
 
코리아 디스카운트 등 고질적인 정체 상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국내 증시의 특성을 고려해 지금은 기업의 경영권보다 주주권에 힘을 실어야 할 때라는 견해도 나왔다.
 
강성부 KCGI 대표는 "상속세 이슈 다음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게 자사주 이슈"라며 "자사주 소각을 의무화시키든지 그렇게까지 법을 바꾸는 것이 당장 힘들다면 시가총액에서도 자사주를 빼고 신주발행에 준하는 정도의 규제를 받아야 한다"며 "우리나라는 이사의 신의성실의무가 회사가 아닌 주주에 대해서는 지켜지는 나라가 아닐 뿐더러 주주소송도 어렵다"고 말했다.
 
그는 "저희 시뮬레이터에 따르면 자사주 소각 즉시 코스피는 3620포인트까지 약 40% 넘게 주가가 올라갔다"고 덧붙였다. 
 
또, 강 대표는 "국민연금이 국내주식을 15% 정도 들고 있으므로 대략 6% 정도 수익률이 올라가는 것인데 부담률을 1%p 올리면 연금고갈 시기가 2년 정도 늦춰지고 투자수익률을 1%p 올리면 5.2년이 늘어난다. 지난 10년간 코스피 수익률이 20%에 불과한데 그 이전 10년의 3분의 1 수준이다. 국가의 성장을 멈추게 만드는 장치 중의 하나가 자사주가 아니냐는 생각"이라며 "국가 차원에서도 중대한 사안"이라고 강조했다.
 
앞서 한국투자증권에 따르면 지난 2월 말 기준 국내 상장기업이 보유 중인 미소각 자사주는 총 74조원으로(총 34억주)에 달한다. 국내 유가증권시장 및 코스닥 전체 시가총액의 약 3.3%에 해당하는 물량이다. 
 
사진=화이트페이퍼

자사주는 두 가지만 해결하면 된다는 분석도 제기됐다. 정준혁 서울대 법전원 교수는 자사주에 대해서 아무 권리를 인정하지 않는 것이 첫 번째이고 두 번째는 신주 발행과 자사주 처분을 동일하게 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정 교수는 "배당도 안 주고 의결권도 없고 아무 것도 없지만 유독 합병과 분할 시에만 신주를 배정하면 그때는 의결권이 살아있는 걸로 쳐준다"며 "또 아주 오해하는 것 중 하나가 미국은 자사주 매입 후 무조건 소각한다고 알려진 것인데 사실은 틀렸다. 예를 들어 델라웨어나 뉴욕주 회사법을 보면은 자기 주식은 의무소각 아니어서 갖고 있을 수도 있고, 캘리포니아는 의무소각이다. 실제 아마존이나 GE도 자사주를 많이 들고 있다. 하지만 이를 디스카운트 요소로 아무도 생각하지 않는 것은 1번과 2번이 모두 해결된 상태로 소각 없는 자사주 보유가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기 때문에 관심이 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세계 최대인 한국의 상속세 부담이 과하다는 문제에선 공감대가 형성되기도 했다.
 
정우용 한국상장회사협의회 부회장은 "제도가 다 연결된 것인데 어느 하나를 건드리지 않기 위해 자꾸 다른 곳을 건들면 분명 왜곡될 수 밖에 없다. 예를 들어 기업들의 불공정거래나 일감 몰아주기 등은 거의 전부 상속세에서 비롯된 문제"라며 "지금 상속세는 최고 50%에 최대주주인 경우 60%, 여기에 전혀 주식이 없다가 그 회사의 최대주주가 된 경우 취득세와 등록세, 지방세를 내면 65~66% 정도 예상이 된다"고 말했다.
 
한편 지난 6월 김 부위원장은 "자사주 제도가 대주주의 편법적인 지배력 확대수단으로 남용되지 않고, 주주가치 제고라는 본연의 목적으로 활용될 수 있도록 다양한 정책방안을 검토한다"며 "주주 보호와 기업의 실질적 수요를 균형 있게 고려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화이트페이퍼, WHITEPAP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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