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화학·SK이노, 또 미뤄진 판결…협상 기폭제되나
LG화학·SK이노, 또 미뤄진 판결…협상 기폭제되나
  • 최창민 기자
  • 승인 2020.10.27 1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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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이트페이퍼=최창민 기자] LG화학과 SK이노베이션의 배터리 영업비밀 침해 소송 최종 판결이 또 미뤄졌다. 지난 5일에서 26일로 연기된 데 이어 두 번째다.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가 이례적으로 두 차례 판결을 연기하면서 상황이 안갯속인 가운데 미국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ITC가 의도적으로 판결을 미뤘다는 주장이 제기되는 한편, 결국 양사가 합의에 도달하는 것은 시간문제라는 관측이 나온다.

■ ITC 판결 연기…합의 의사 비친 SK이노베이션

ITC는 26일(현지시각) LG화학과 SK이노베이션의 배터리 영업비밀 침해 소송 최종 판결을 6주 뒤인 12월 10일로 연기한다고 발표했다. 당초 지난 5일 열리기로 했던 최종 판결이 이날로 한 차례 미뤄진 가운데, 또다시 순연된 것이다. ITC는 이번 연기 결정의 배경이나 이유에 대해서는 함구했다.

LG화학과 SK이노베이션 모두 27일 오전 4시경 ITC의 공지를 통해 판결 연기를 통보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양측은 이와 관련한 입장문을 내고 ITC의 연기 결정과는 별개로 소송에 충실하게 임할 것을 밝히는 한편, 연기 이유에 대해서는 상반된 견해를 보이는 모습이다.

사진=연합뉴스
사진=연합뉴스

SK이노베이션은 발표한 입장문에서 “ITC 위원회가 앞서 1차로 연기한 데 이어 추가로 45일이라는 긴 기간을 다시 연장한 사실로 비춰볼 때, 위원회가 본 사건의 쟁점을 심도 있게 살펴보고 있음을 알 수 있다”라면서 “SK이노베이션은 연기와 관계없이 소송에 충실하고 정정당당하게 임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회사 측은 이어 “소송의 장기화에 따른 불확실성을 없앨 수 있도록 양사가 현명하게 판단해 조속히 분쟁을 종료하고 사업 본연에 매진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덧붙였다. SK이노베이션이 이 같은 입장을 발표함에 따라 업계에서는 SK가 먼저 합의에 나설 것이라는 의사를 내비친 것 아니냐는 시각을 내놓고 있다.

SK이노베이션의 입장에서는 이날 패소 결정이 났다면 ITC에 공탁금을 걸고 대통령 거부권 행사 결정 기간인 60일 동안 수입금지 조치 효력을 중단하면서 시간을 벌 수 있었다. 하지만 판결이 45일 연기되면서 쫓기는 입장이 됐다. 또 차후 결과에 따라 연방법원에 항소하더라도 판결이 나오기까지 장기간 수입 금지 조치를 피할 수 없다. 이렇게 되면 SK이노베이션은 장기간의 소송으로 인한 비용과 함께 지난 7월 미국 조지아주에 착공한 배터리 1공장의 건설에도 차질이 빚어질 전망이다. SK이노베이션이 적극적으로 합의에 나설 것이라는 관측이 제기되는 이유다.

사진=연합뉴스
사진=연합뉴스

LG화학도 이날 입장문을 냈다. LG화학은 “ITC 소송에 계속 성실하고 단호하게 임해 나갈 것”이라며 “경쟁사가 진정성을 가지고 소송 문제 해결에 나선다면 대화의 문은 열려있다는 것이 일관된 원칙”이라고 기존 입장을 되풀이했다. LG화학은 최종 판결이 연기된 것과 관련해서는 “최근 2차 연장되는 다른 케이스들이 생기고 있어,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영향 등으로 밀린 것으로 보고 있다”라고 말했다.

■ 조기 패소 뒤집긴 힘들어 vs ‘거부권’ 행사 주목

업계에서는 ITC가 지난 2월 이미 SK이노베이션의 조기 패소로 예비 결정을 내렸고, 이 같은 결정이 뒤집힌 전례가 없었기 때문에 LG화학이 승소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다만, 과거 ITC의 판결을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이 거부한 일이 있어, 논란이 다시 발생하는 것을 피하고자 ITC가 판결을 미국 대선일 이후로 연기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 2013년 오바마 전 대통령은 애플이 삼성의 특허를 침해했다는 ITC의 판결에 거부권을 행사했다. 당시 삼성은 애플이 4건의 특허를 침해했다면서 ITC에 특허 침해를 제소했다. ITC는 이들 가운데 애플의 3G 이동통신 관련 특허 침해를 인정하고 애플 제품의 미국 내 수입을 금지하는 결정을 내렸다. 오바마 전 대통령은 이에 대해 이례적으로 거부권을 행사한 바 있다. 이로 인해 미국의 보호무역이 부활했다는 지적이 제기되기도 했다.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 (사진=연합뉴스)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 (사진=연합뉴스)

이를 두고 미국 언론에서는 이날 ITC가 SK이노베이션에 패소 판결을 내린다는 것을 전제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에 대한 전망이 나오기도 했다.

먼저 SK이노베이션이 패소할 경우, 트럼프 대통령이 SK이노베이션을 옹호하는 유권자들의 표심을 잡기 위해 대선일인 11월 3일 전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다는 시각이다. 이는 ITC 판결을 정치적 목적으로 활용하는 한편, 사실상 무효화하는 것이어서 ITC로서는 맞닥뜨리고 싶지 않은 상황이다. 이 같은 정치적 이용에 대한 의혹을 조기에 차단하기 위해 준사법 기관인 ITC가 판결을 대선 이후인 12월로 미뤘다는 주장이다.

■ 전면 재검토 가능성도…합의 못하면 양측 손실 불가피

한편으로는 SK이노베이션에 조기 패소 결정을 내린 ITC가 추가 검토에 들어간 가운데, LG화학 승소로 먼저 판결하되 미국 내 공익과 경제성 평가를 거쳐 SK이노베이션에 대한 수입 금지 조치는 별도로 판결하거나, ‘수정(Remand)’ 결정을 통해 조기 패소를 전면 재검토 할 수도 있다는 시각도 제기된다. 다만 수정이 결정되면 6개월 이상의 시간이 소요되기 때문에 양사의 소송에 대한 부담감은 더욱 가중될 수 있다. 지난달 기준 양사는 약 4000억원을 소송비용으로 사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결과적으로 양사가 합의에 도달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SK이노베이션은 현재 2조원을 투자해 조지아주에 배터리 공장을 건설 중이다. 이 공장에서 생산되는 전기차 배터리를 미국 완성차 업체인 포드에 공급할 예정이다. 그러나 합의가 불발될 경우, 미국에 배터리 관련 부품 등을 수출할 수 없게 돼, 포드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 등의 문제가 발생한다. LG화학은 소송이 길어질 경우, 오는 12월 앞둔 전지사업부문 분사에 악영향을 피할 수 없게 된다. 양사가 합의를 도출하게 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는 이유다. 업계 관계자는 “ITC의 판결 재연기로 불확실성이 가중해 양사가 12월 전 합의를 하기 위해 다시 본격 논의를 하게 될 것으로 본다”라고 말했다.

일러스트=연합뉴스
일러스트=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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