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P사설] 거버넌스 약한 국민연금, 기업 거버넌스 손 대나?
[WP사설] 거버넌스 약한 국민연금, 기업 거버넌스 손 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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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9.01.14 1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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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는 16일 기금운용위, 한진칼•대한항공 주주권 적극 행사 여부 검토
연금사회주의 신호탄 되어선 안 돼

[WP사설] 현대 경영학의 창시자로 불리는 피터 드러커가 염려했던 연금사회주의는 현실화되진 않았다. 그가 1976년 <보이지 않는 혁명-연•기금 사회주의는 어떻게 미국에서 왔는가(The Unseen Revolution: How Pension Fund Socialism Came to America>라는 책에서 언급한 것처럼 80년대 중반 연•기금이 미국 주요 기업의 주요 주주는 되었지만, 현실에선 지배구조 개선을 내세우진 않았다. 오히려 미국 연•기금은 수익률 극대화를 위해 배당 정책, 자사주 매입 등에 더 신경을 써 기업의 장기 발전을 막는다는 비판을 받기까지 했다. 노동자들의 돈으로 자본가(주주)가 되어 투기 자본가처럼 행동했던 셈이다.

연금사회주의는 세계 최초로 대한민국 땅에서 현실화될 우려가 더 크다. 거버넌스가 약한 국민연금이 기업의 거버넌스(지배구조)를 바꾸기 위한 행동에 나서려 하기 때문이다.

정부가 우선 법적 정비를 했다. 연•기금 등이 자산운용사에 의결권을 위임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자본시장법 시행령 개정안이 지난 8일 국무회의를 통과했다. 국민연금은 지난해 7월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 천명 이후 기금운용지침을 고쳤고 최근엔 하위 규범인 운용 규정도 손봤다. 조직도 정비했다. 불과 몇 개월 전에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장(CIO) 인선에 청와대가 개입한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온 것을 기억한다. 국민연금의 거버넌스에 대한 심각한 우려가 존재하는 가운데 일련의 준비 작업들이 진행되니 기업들을 정권 입맛에 맞게 길들이는 시작점이 될까 우려된다.

사실 국민연금이 가장 신경 써야 하는 것은 중장기 수익률 개선이다. 자명하다. 국민 노후 쌈짓돈 아닌가. 그런데, 지난해엔 10년 만에 처음으로 마이너스 수익률을 기록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국민연금 설계가 잘못 되어 미래 세대의 부담이 점점 커지고 있지만, 연금 개혁엔 손도 못 대고 있는데, 수익률마저 떨어지면 미래 세대의 부담은 더 커질 수밖에 없다.

수익률을 높이는 여러 기준 가운데 중요한 것은 분산 투자다. 상장사의 주요 주주 기준인 5% 이하 수준에서 투자해야 한다는 목소리까지 나온다. 현실에선 그러나 국민연금이 5% 이상 지분을 가진 기업이 300개에 달한다. 10% 이상 가지고 있는 기업도 100개에 육박한다. 한국을 대표하는 삼성전자, 현대차, SK하이닉스, LG화학 등의 대주주가 되어 있다. 잿밥에만 관심이 생겨버린 것이 아니냐는 걱정이 앞선다.

일각에선 기업 지배구조 개선이 국민연금의 수익률을 높일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연금이 기업 지배구조를 개선해 중장기적으로 주가가 올랐다는 연구는 아직 없다. 개선이 개선인지도 사실 의문이다.

국민연금은 오는 16일 기금운용에 관한 최고의사결정기구인 기금운용위원회를 열고 한진칼과 대한항공에 대한 주주권 적극 행사 여부를 의논할 예정이다. 국민연금은 한진칼 지분을 7.34% 보유한 3대 주주이고, 대한항공 지분은 12.45%를 가진 2대 주주다.

돈을 맡긴 국민들을 위해 집사처럼 충실히 역할을 수행해나가겠다는 다짐인 스튜어트십 코드를 정권을 위해 연금사회주의로 가는 문을 여는 열쇠로 오용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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