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속의 지식] 일부일처제가 사랑의 결과? 실은 돈 때문
[책속의 지식] 일부일처제가 사랑의 결과? 실은 돈 때문
  • 박세리 기자
  • 승인 2015.12.07 16:5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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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모든 교양, 미술이 묻고 고전이 답하다> 박홍순 글 / 비아북

[화이트페이퍼=박세리 기자] 복혼제가 아닌 국가에서는 일부일처제를 이상적인 결혼 형태로 여긴다. 그림의 특징을 통해 고전을 읽는 <세상의 모든 교양, 미술이 묻고 고전이 답하다>(비아북.2015)는 이에 대한 색다른 주장을 소개한다. 독일 역사가 에두아르트 푹스가 <풍속의 역사>에서 밝힌 견해로 일부일처제는 '사랑의 결과가 아니라 사유재산의 결과로 탄생했다'는 내용이다.

눈부신 발전을 거듭한 오늘날의 모든 문명의 토대는 사유재산이다. 모든 것은 사유재산제 위에 구축되어 있다. (중략) 사유재산의 힘은 성도덕 분야에서도 토대의 형태를 결정하고 형성했다. 이 토대의 형태가 바로 일부일처제다. 일부일처제는 개인적, 성적 사랑의 결과라는 주장이 예로부터 통용되고 있지만 이는 매우 잘못된 견해다. (중략)

일부일처제는 점점 커지는 부가 남자의 수중에 집중되고 따라서 부를 남자의 자식에게 상속시킴으로써 타인의 자식에게 넘겨주지 않으려는 요구에서 발생했다. 적자상속이 최초이자 최후의 목적이었으며 이는 수백 년에 걸친 유일한 목적이었다. -158쪽, 푹스 <풍속의 역사>, 재인용

이어 화가 프랑수아 부셰의 작품을 곁들여 설명한다. 책에 따르면 아래 그림은 가부장에 기초한 전형적인 일부일처제 가정의 모습이다. 세 명의 아이들, 어질러진 집, 쌓여 있는 식사 재료 등은 한 가정에서 주부에게 요구되는 역할을 한 화면 안에 집약시켜 놓았다. 그림에 나타나 있지 않지만 당시는 경제적 권한 또한 남편에게 집중되었다. 여성은 남성이 부여한 범위 내에서만 자기 역할을 수행했다.

                    부셰, <촌락의 아름다운 부인>, 1732년

그림이 그려진 시대처럼 남성의 경제적 이익을 위해 만들어진 일부일처제는 한쪽 성에 의한 다른 성의 억압, 가족 내에서 남성 지배와 여성 억압이라는 결과를 초래할 수밖에 없었다. 푹스는 물질적 이해관계가 문화의 하부구조를 결정한다고 봤다.

책은 이처럼 고전과 미술작품의 교차 해석으로 폭넓은 관점을 제시한다. 책 한 권으로 고전의 18개 핵심 내용과 54점의 그림을 만날 수 있다.

화이트페이퍼, WHITEPAP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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