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 정약용, 200년 뛰어넘는 가르침!
다산 정약용, 200년 뛰어넘는 가르침!
  • 북데일리
  • 승인 2007.02.01 0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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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데일리] 최근 <다산 선생 지식 경영법>(김영사. 2006)이 베스트셀러 순위의 상위를 차지하고 있다. 아마 논술과 인문학의 위기라는 이 시점의 한국 현실에 딱 들어맞는 도서였기 때문이리라. 나도 이 책을 읽었다. 하지만 상업성을 앞세운 제목과 주제, 그리고 내용을 너무 길게 늘어놓음으로 해서 오히려 책값만 비싸진 것 같이 느껴져 기분이 개운치는 않았다.

그리고는 이 책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창비. 2001)를 읽었다. 이 책은 다산의 편지를 그냥 번역해서 편집한 책이고, 정민교수의 책은 다산의 편지 글을 기본으로 나름대로 체계화하여 살을 붙인 책이지만, 이 책이 정민교수의 책보다 훨씬 담백했고 다산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더욱 명확히 느낄 수 있었다. 이 책은 1991년에 초판, 그리고 2001년에 개정판이 나왔으며, 내가 본 책은 개정판 17쇄였으니, 지난 16년간 독자들의 꾸준한 사랑을 받았다는 말이 될 것이다. 이 같은 관심의 배경, 과연 무엇일까?

다산 정약용은 정조 시절 왕의 총애를 받던 신하였다. 조선의 마지막 르네상스 시기였던 정조 치세기에 가장 역점을 둔 부분은 학문의 융성이었다. 이를 위해 규장각을 설치했다. 그리함으로 많은 책들이 청나라로부터 들어왔으며, 조선에서도 많은 책을 출판했던 시기였다. 하지만 정조는 의문의 죽음을 당한다. 그리고 1년 후 다산은 귀양살이를 시작한다. 그 기간이 자그마치 17년간이다. 어떻게 보면 천당에서 지옥으로 간 느낌이 들 것이다.

사회로부터 버림받았다는 박탈감으로 세상에 대한 분노와 사람에 대한 믿음이 깨져있을 상태라고 생각이 되지만, 다산은 이런 와중에 17년간 수많은 책을 집필한다. 저술을 한다는 것은 금방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오랜 기간에 걸쳐 많은 책을 읽고 또 읽은 것들을 자기 것으로 만들어야 만이 글을 쓸 수 있는 것이고 또 문학적 재능이 있어야 한다. 그러니까 다산은 학문을 융성시켰던 정조 시절 이미 지식의 대부분을 준비했다고 볼 수 있고, 그러한 바탕위에 사회에서 강제로 격리된 기간은 오롯이 자기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은 어쩌면 다산에게나 아니면 지금 다산을 읽는 사람에게나 다행스러운 일이다. 물론 조선의 입장에서는 불행한 일이었지만 말이다.

이 책은 전편에 걸쳐 효제(孝悌)가 키워드로 흐르고 있으며, 지금 한국사회에서 없어져 버린 인성교육(人性敎育)의 현장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다산은 가정에서의 교육은 아버지가 그 중심이 되어야 한다고 일갈하고 있는 것 같다. 하지만 지금 대한민국 사회는 어떤가! 아버지는 바깥에서의 일이 바쁘다는 핑계로 엄마에게 아이들의 교육을 일임하고 만다. 이것이 가정 붕괴 원인 중의 하나일 것이다. 집안의 어른으로서 권위는 없어지고 다만 권위적인 모습만 남은 아버지는 이미 아이들에게서 존경을 받지 못하고 있으며, 아내로 부터도 대접을 받지 못하고 있다. 이것이 이혼율 세계 1위 국가로 만든 주요한 이유가 될 것이다.

유교의 가르침 중 대표적인 군사부일체(君師父一體)는 이제 이 땅에서 없어졌다. 이것이 학교를 병들게 했고, 가정을 파탄 내버렸으며, 나라의 지도자까지도 국민들에게 존경받지 못하고 있다.

이 책은 다산이 강진에 유배당했을 때에 아들에게 보낸 편지, 둘째 형님인 정약전에게 보낸 편지 및 제자들에게 보낸 편지로 구성되어 있다.

“독서를 하려면 반드시 먼저 근본을 확립해야 한다. 근본이란 무엇을 일컬음인가. 학문에 뜻을 두지 않으면 독서를 할 수 없으며, 학문에 뜻을 둔다고 했을 때는 반드시 먼저 근본을 확립해야 한다. 근본이란 무엇을 일컬음인가. 오직 효제(孝悌)가 그것이다. 먼저 반드시 효제를 힘써 실천함으로써 근본을 확립해야 하고, 근본이 확립되고 나면 학문은 자연스럽게 몸에 배어들고 넉넉해진다”(38쪽)

위 글은 다산이 두 아들에게 보낸 편지의 내용으로 학문을 함에 있어서도 그 근본이 효제에 있다는 유교의 규범을 말해주고 있다. 공부만 잘하면 어떤 잘못도 용서되는 요즈음의 세태를 생각하게 되는 편지이다. 이외에도 다산은 아들들에게 글을 쓰는 법, 책을 만드는 법, 또 사람이 마땅히 해야 하거나 하지 말아야 할 일들에 대해 끊임없이 편지를 쓰고 있다. 특히 부지런함(勤)과 절약(儉)에 대한 다산의 편지 내용은 고결한 선비로서의 다산의 모습을 볼 수 있어서 절로 고개가 숙여졌다.

“무릇 지도를 제작하는 방법은 언제나 지지(地誌)의 축척법을 준수해야 하니 지구가 둥글다는 올바른 이치를 모르면 아무리 짧은 거리라도 분명치 못하게 되어 결국은 어떻게 할 수 없는 폐단이 있게 됩니다. 경위선(經緯線)을 곤여도(坤與圖)처럼 만든다면 매우 좋습니다만 그렇게 하지 못할 경우에는 천리를 그릴 때마다 그 사각형의 공간을 확정하고는 먼저 지지를 검토하여 4개의 직선이 서로 교차하는 지점의 축척을 바르게 해야 합니다”(202~203쪽)

위 글은 다산의 형인 정약전에게 보낸 편지의 내용으로 다산의 백과사전적 지식을 보여준다. 다산은 지도에 까지도 그의 관심영역을 두고 있었으며, 이러한 노력은 아방강역고(我邦疆域考)라는 지리책을 저술하게 된다. 이 편지 외에도 다산은 형에게 학문적인 논쟁을 벌인 편지들도 수록되어 있는 것으로 봐서는 공부에 있어서는 형에게도 양보하지 않는 학자로서의 자존심을 읽어낼 수 있었다.

저서하는 법에 있어서도 우선은 경학(經學)을 바탕으로 한 경전을 최우선으로 하고 그 다음은 세상을 경륜하고 백성에게 혜택을 베풀어주는 학문이고 국방과 여러 가지 기구에 관한 분야도 소홀히 하지 않아야 한다고 아들에게 말하는 그의 편지 내용은 다산 공부의 핵심이무엇인지를 알게 해준다. 이런 부분을 읽으면서 나는 생물학을 중심으로 인문학까지 통합하려고 했던 에드워드 윌슨의 <통섭>이란 책을 읽는 기분이 들었다. 그러니까 윌슨이 통섭으로 전 세계에 큰 소리를 치기 거의 200년 전에 다산을 그것을 실행한 멀티 사이언티스트 였던 것이다.

닭을 기르려거든 닭에 대해 연구하여 ‘계경(鷄經)’ 같은 책을 저술해 보라고 말하는 다산의 편지글은 가슴에 와 닫는다. 내 눈에 보이는 가장 가까운 것에 의미를 부여하고자 하는 그의 학문에 대한 열정을 느끼며, 이러한 그의 세계관이 무려 500권이나 되는 저서를 남길 수 있었던 원동력이 됐을 것이다.

지금으로부터 200년이나 지난 편지이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도 다산이 말하고자 하는 많은 부분들이 지금도 유효할뿐더러 유익하다는 생각이 든다. 아마 이러한 부분이 이 책을 스테디셀러로 만든 요인이라는 생각이 든다. 정말 권하고 싶은 책이다.

[이동환 시민기자 eehwa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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