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들의 '전쟁과 사랑' 아픈 추억
그녀들의 '전쟁과 사랑' 아픈 추억
  • 서유경
  • 승인 2009.08.30 2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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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마릴린>... 전란 그린 소설불구 유쾌

  

[북데일리] 김탁환의 <노서아 가비>는 커피와 고종 황제라는 어울리지 않을 조합으로 관심을 불러 모았다. 여기, 또 하나의 엉뚱한 조합을 제법 잘 어울리게 만든 소설이 있다. 이미 영화 <모던보이>의 원작으로 잘 알려진 작가 이지민의 <나와 마릴린>(그책, 2009). 

소설은 두 장의 사진에서 시작되었다. 한 장은 한국전쟁 당시 유엔군과 북한 포로 사이에서 통역을 하던 여자 통역사의 사진이고, 또 한 장은 전쟁 직후 미국 위문공연을 왔던 마릴린 먼로의 사진이다.

전쟁은 삶을 송두리째 뒤바꾼다. 살아남았다 해도, 전쟁으로 인한 상처는 가린다고 가려지지도 않으며 지운다고 지우지지도 않는다. 어떻게든 살아야 한다면, 아마도 여기 한 여자처럼 살아야 했을지도 모른다. 맥주로 머리를 감고, 짙은 화장에 까만 망사 장갑을 낀 여자. 무언가 숨겨진 사연이 있을 법하다. 소설 속 ‘나’는 앨리스다. 본명은 김애순. 그녀는 왜 앨리스가 되었을까. 그리고 한 여자 금발의 머리와 섹시한 미소가 떠오르는 마릴린 먼로. 시간을 교차하며 들려주는 그녀들의 이야기는 흥미롭게 진행된다.

1954년 한국전쟁을 겪은 앨리스는 미군 부대의 타이피스트다. 전쟁에 참전한 미국 군인을 위한 위문공연으로 마릴린 먼로가 한국에 오니 초상화를 그리고 통역을 하라는 상사의 말에 앨리스는 지난 몇 년을 회상한다. 일본 유학으로 그림을 전공했지만  더 이상 그림을 그리지 않는다. 전쟁을 겪은 탓일까. 누구에게나 비밀이 있듯 그녀에게도 말할 수 없는 비밀이 많았다.

1947년 일본 유학에서 돌아온 앨래스는 삼촌의 도움으로 미군정에 취직했고, 계몽 포스터나 홍보물을 그렸다. 해방직후 신여성의 멋진 삶을 살고 있었다. 그러나 운명처럼 사랑을 만났으니 상대는 고향에 조강지처를 둔 유부남 여민환이었다. 그 남자와의 만남이 운명의 시작이었다. 그가 소개한 미국 친구 조셉에게 영어를 배웠고, 결국 그와도 사랑에 빠지고 만다. 관계가 드러나고 셋의 관계는 다시 붙지 않을 깨진 유리가 되고 만다.

 다시 1954년 마릴린과 3박 4일의 동행이 시작되었다. 시대가 꿈꾸던 여인, 병사들은 마릴린의 노래에 환호한다. 화려하게 치장한 만인의 스타였지만, 수면제 없이 잠을 못자고, 아파도 내색 없이 어떤 무대라도 올라야 했다. 아름답게 보여지는 모습 뒤의 마릴린은 앨리스와 닮아있었다.

 운명은 깨진 유리 조각을 한 자리에 불러 모은다. 전쟁 중 북에서 죽은 줄 알았던 여민환과  앨리스라는 이름을 붙여준 조셉이 찾아온다.  딸을 찾아 나선 여민환은 지우고 싶은 기억을 되살린다. 가족을 택한 여민환의 아내에게 치기 어린 편지를 보냈고, 아내와 딸이 찾아오는 바람에 여민환과 엇갈리게 된 것이다. 전쟁 중이라 어쩔 도리가 없었음에도 곁에서 아내와 딸이 죽자 모든 것이 자신 때문이라 자책한다. 

 그 일로 정신을 놓은 앨리스는 피난 길에 미친 여자로 통했고, 뜨거운 불에 손을 집어 넣어 화상을 입고, 자살까지 시도한다. 그때부터 머리가 하얗게 세어 맥주로 머리를 감게 되었고, 흉칙한 손은 장갑을 껴야 했던 것이다. 조셉을 통해 여민환의 배신을 알게 된 앨리스는 자살을 시도하려 할 때, 마릴린의 등장으로 무산된다. 마릴린은 돌아가고,  소설은 대단한 결말을 내지 않는다.

한국 전쟁을 배경으로 했기에 다소 어두운 면이 있을 꺼라는 생각은 할 수 없을 정도로 소설은 유쾌하게 진행된다. 작가 이지민이 여자였기에 통해 전쟁을 겪어내야 해던 여자의 사랑과 삶을 그릴 수 있지 않았나 싶다. 삶의 형태는 다르지만 전쟁이라는 이유만으로도 <나와 마릴린>이라는 소설의 제목처럼 나와 연관되어질 수 있는 여자들의 이야기. 영화로 제작되기를 기대하는 이는 나뿐이 아닐 듯 싶다.

 

 

화이트페이퍼, WHITEPAP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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