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 '시간선택제' 일자리 늘지만...'경단녀'는 서럽다
은행 '시간선택제' 일자리 늘지만...'경단녀'는 서럽다
  • 이아람 기자
  • 승인 2016.08.24 15:1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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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000명 규모 채용...추가근무 많고 재계약률 낮아
▲ 은행권의 경력단절 여성에 대한 고용의 질이 좋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사진출처=flicker)

[화이트페이퍼=이아람 기자] 여성 일자리 창출의 성공적인 모델로 보였던 경력단절여성(이하 경단녀) 대상 '시간선택제 일자리'에 그늘이 짙다. 육아와 일을 병행할 수 있어서 선택한 일자리였지만 급여만 시간제일 뿐 속내를 들여다보면 말 못할 속사정이 있다. 정규직과 다를 바 없는 업무에 추가근무 시달리며 재계약도 요원하다.

은행권 경단녀 채용 '활발'

은행은 지난해만 1000명이 넘는 경단녀를 채용했다. 올해 역시 경단녀 채용이 활발하다. 올 상반기에도 국민, 신한, 우리 등 시중은행은 경단녀 채용을 진행했다. 상반기 우리은행과 국민은행은 각각 100명, 85명 규모로 채용을 실시했다. 

경단녀는 9시부터 18시까지 하루종일 일하는 경우도 있지만 시간선택제로 반나절만 일하는 경우가 많다. 시간선택제의 경우 보통 12시에 출근해 16시-18시에 퇴근하는 것이 원칙이다. 출근이 늦고 퇴근이 빠르기 때문에 아이를 키우는 여성은 시간선택제로 근무하는 경우가 많다.

시간선택제는 어디로... '추가 근무 요구 거절 못해'

시간선택제 일자리는 경단녀들이 도전하기 좋은 일자리다. 많은 돈은 아니지만 가계에 기여하면서 육아도 병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실제로 경단녀로 일하는 사람들의 목소리는 조금 다르다.

시간제 근로자에게 실적은 정규직과 동일한 수준을 요구하는 곳이 있는가 하면 추가 근무를 부탁하기도 한다. 추가 근무를 한다고 수당을 받진 않지만 거절은 어렵다.

하지만 은행의 경우에도 할 말은 있다. 은행의 경우 단순 창구업무뿐아니라 영업이 끝난 후 처리할 일이 더 많기 때문이다.

농협 은행 관계자는 "모든 근로자가 그렇듯이 사실상 업무가 제시간에 딱딱 끝나기는 어렵다"고 설명했다.

추가근무요구를 거절할 수 없는 이유는 또 있다. 계약직 업무 평가 시스템 때문이다. 시간제 근로자에게 계약기간을 마친 후 종합평가를 통해 계약기간을 연장하거나 무기계약직으로 전환하는 '혜택'을 주는데, 이것이 오히려 경단녀들의 '족쇄'가 되고 있다. 평가를 잘 받기 위해서 무리한 요구를 하더라도 수긍할 수밖에 없는 구조가 된 것이다.

실낱같은 희망을 갖고 회사의 요구를 받아들이는 경단녀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실상 시간선택제 일자리 재계약이 이뤄진 경우는 극히 드물다. 모 은행 관계자는 "정확한 수치를 밝히기는 어렵지만 시간선택제 일자리의 재계약은 거의 없다고 보면 된다"고 실토했다.

은행 시간제 일자리로 근무 중인 한 경단녀는 “평가에 휘둘리면서 스트레스를 받느니 재계약 희망은 버리고 주어진 시간에만 열심히 하는 것이 편하다”고 말했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시간제 근로자는 자신을 파트타이머로 인식하는 경우가 많다. 또한 정규직에 비해 조직에 대한 소속감이나 업무에 대한 책임감을 가지기 어려운 상황이다.

누구를 위한 시간선택제인가

시간선택제 일자리의 재계약이 부진한 이유는 인건비 부담 때문으로 풀이된다. 은행의 경우 임금이 상대적으로 높고 근속년도도 길다.

금융업 전체 10년 이상 근무자 비중은 43.7%였지만 은행은 52.4%였다. 특히 20년 이상 장기 근속자 비율은 36.6%로 다른 금융업종보다 훨씬 높았다. 

은행권에서 연봉 5000만원 이상 인력 비중은 60.9%로 나타났으며 고액 연봉자가 특히 많았다. 1억원 이상 1억 5000만원 미만은 20.0%로 전체 금융업과 비교해도 높은 수치를 보였다.

임금피크제를 도입되면서 상반기에만 700여명의 직원이 희망퇴직으로 은행을 떠났다.

수시채용의 경우 잠시 휴직을 한 직원의 자리를 메꾸는 식으로 일하는 경우가 많다. 해당 직원이 돌아오는 동안만 업무를 대신하는 형식으로 고용이 지속되기는 어렵다.

일각에서는 보여주기식 채용이기 때문이라는 해석을 내놓는다. 수 백 명을 채용하고 내보낸 후 다시 수 백 명을 채용하는 방식으로 고용이 계속되는 듯한 착각을 일으키는 것이 목적이라는 의견도 있다.

은행권 시간제 일자리 문제는 결국 비정규직 문제

정부에서는 경단녀를 위한 시간선택제 일자리를 반기고 있다. 고용노동부에서는 정규직으로 시간선택제 일자리를 제공한 대기업에게 채용 인건비를 1년간 최대 60만원까지 지원한다.

이기권 노동부장관은 24일 오전 서울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주요 경제단체와 시간선택제 운영기업 등과 '경력단절 예방과 저출산 극복을 위한 전환형 시간선택제 확산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정부는 할 말이 있다. 정부에서 장려하는 시간선택제 일자리는 은행권이 현재 하고 있는 계약직 아닌 정규직 고용을 전제로 한다. 정규직-비정규직 고용형태가 아니라 ‘근로시간 형태’로서 ‘전일제’와 대비되는 개념이다. 시중은행 가운데 이 조건에 부합하는 곳은 신한은행이 유일하다.

금융경제연구소 연구위원은 "기업들이 비정규직이나 간접채용을 늘리는 핵심적인 이유는 비용절감과 고용유연성 때문이다"며 "비정규직의 사용사유를 제한하고 간접고용의 사용사업주에 대하여 사용자 책임과 의무를 확대하는 등 법적․ 제도적 장치 마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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