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쟁점해부]금융권 성과연봉제(상) "동료 월급 뺏는 제로섬 게임"..저성과자 퇴출 악용 우려
[쟁점해부]금융권 성과연봉제(상) "동료 월급 뺏는 제로섬 게임"..저성과자 퇴출 악용 우려
  • 김은성 기자
  • 승인 2016.02.02 10:5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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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산 무기로 군사작전하듯 강행하는 금융위..금융공기업·금융노조 "관치금융의 절정"

[화이트페이퍼=김은성 기자] 은행의 성과연봉제를 둘러싼 갈등이 격화하고 있다. 성과 평가에 대한 객관성을 확보하기 어려운데다 공공성 훼손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우려가 크기 때문이다. 정부의 노동법 개악과 맞물려 저성과자를 쉽게 해고하려는 것으로 보는 공기업과 은행 내부 반발은 누구나 예견했던 일이다.

◆ 정책금융기관 ‘성과’ 기준은?..하달받은 예산 안에서 저성과자 몫 도려내기

2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융위원회가 금융공기업 9곳을 대상으로 호봉제를 폐기하고 연봉제를 전면 도입한다. 간부급에 적용하고 있는 연봉제를 내년부터 최하위 직급(5급)과 기능직을 제외한 전 직원에 적용하겠는 것이다. 이에 따라 같은 팀장이라도 평가에 따라 연봉 격차가 2050만원까지 벌어진다. 금융위는 성과연봉제 도입에 대한 구체적인 방법은 제시하지 않은 상태다. 공기업 9곳은 산업은행, 중소기업은행, 수출입은행 등 국책은행 세 곳을 비롯해 신용보증기금, 기술보증기금, 예금보험공사, 주택금융공사, 예탁결제원, 자산관리공사다. 

해당 공기업 내부에선 반발 정서가 팽배하다. 평가의 객관성과 공정성을 확보할 수 있는 장치조차 아직 마땅하지 않아서다. 정책금융기관과 은행권은 특성상 개인별 성과 측정이 쉽지 않다는 게 중론이다. 업무마다 성격이 다르고 실적 기여 편차도 크다. 나기수 기업은행 노조위원장은 "대출만 해도 창구직원과 점포관리직, 본점심사부 등 여러 직원이 협업해 개인별 기여도를 따질 수 없다"며 "팀으로 일하고 있는 현재 시스템하에서는 개개인에 대한 평가가 불가능하다"고 지적했다.

정책금융기관의 경우 '성과' 척도가 일반 은행과 달라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 정책금융기관 관계자는 “금융공기업은 상업성이 없고 리스크가 커 은행이 하지 못하는 금융서비스를 제공하는 만큼 무엇이 성과인지부터 사회적 합의를 거쳐 기준을 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그는 정부가 제시한 성과연봉제가 ‘제로섬 게임’이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정부가 예산통제로 임금을 억제해 놓고 내부경쟁만 유도하려 하기 때문이다. 그는 “정부가 미리 예산을 정해 놓고 상대평가한다면 누군가는 임금이 반드시 임금이 깎여야만 하는 구조”라며 “동료 월급을 뺏어 인센티브를 받는 구조는 조직문화를 헤쳐 부작용만 키울 것”이라고 꼬집었다. 직무 전문성을 높이는 효과보다 저성과자를 퇴출시키는 도구로 악용될 것이라는 지적이다.

◆ 기업별 경영여건 업무내용 제 각각인데 따지지말고 성과연봉제?..관치금융의 '절정'

정부가 군사작전 하듯 밀어붙이는 것에 대한 반감도 크다. 임종룡 금융위원장은 "필요하다면 노조와 직접 면담하겠다"고 강행 의지를 내비쳤다. 하지만 임금체개 개편은 노사합의 사항으로 정부가 개입할 성질이 아니라는 것이 역사적 통념이다. 금융위가 평가지표 마련을 위해 외부 컨설팅회사를 선정해 노사 TF를 꾸리라고 권고한 이유이기도 하다.

정부는 성과연봉제 첫 시험 대상으로 기업은행을 낙점했다. 국책은행임에도 민간은행과 업무 형태가 비슷해서다. 기업은행 관계자는 "정부가 발표한 가이드라인을 갖고 노조와 논의를 진행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나기수 노조 위원장은 “군사작전 하듯 강행해 이미 답까지 정해준 정부의 안은 논의할 가치가 없다”고 잘라 말했다.

금융공기업 노조 대부분의 상급단체인 금융노조는 2일 간부 결의대회를 시작으로 본격적인 대응에 나선다. 금융노조 관계자는 “정부가 예산을 손에 쥐고 금융기관 인사·보수·교육을 비롯해 모든 것에 관여하는 관치의 극치를 보여 주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기업별로 경영 여건, 인력, 업무 내용 등 임금체계에 미치는 영향이 제 각각인데 국가가 개입해 단일구조의 성과주의 임금체계를 강요하는 것은 민주주의의 근간을 흔드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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