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속의 명문장] 신영복 선생 명언 '어제의 역사가 생각의 서가에...'
[책속의 명문장] 신영복 선생 명언 '어제의 역사가 생각의 서가에...'
  • 정미경 기자
  • 승인 2016.01.20 10:1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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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처럼> 신영복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화이트페이퍼=정미경 기자] 지난 주말 우리 시대의 어른 한 분이 떠나셨다. 고인의 말과 글은 많은 사람에게 큰 깨달음과 깊은 울림을 남겼다. 신영복 선생의 글 중 ‘찬 벽壁’이 무뎌딘 감성을 일깨워준다.

“기상 시간 전에 옆 사람 깨우지 않도록 조용히 몸을 뽑아 벽 기대어 앉으면, 싸늘한 벽의 냉기가 나를 깨우기 시작합니다. 나에게는 이때가 하루의 가장 맑은 시간입니다. 겪은 일, 읽은 글, 만난 인정, 들은 사정……. 밤의 긴 터널 속에서 여과된 어제의 역사들이 내 생각의 서가書架에 가지런히 정돈되는 시간입니다.

금년도 며칠 남지 않은 오늘 새벽은 눈 뒤끝의 매서운 바람이, 세월의 아픈 채찍이, 불혹의 나이가 준엄한 음성으로 나의 현재를 묻습니다.

손가락을 베이면 그 상처의 통증 때문에 다친 손가락이 각성되고 보호된다는 그 아픔의 참뜻을 모르지 않으면서, 성급한 충동보다는, 한 번의 용맹보다는, 결과로서 수용되는 지혜보다는, 끊임없는 시작이, 매일 매일의 약속이, 과정에 널린 우직한 아픔이 우리의 깊은 내면을,

우리의 높은 정신을 이룩하는 것임을 모르지 않으면서, 스스로 충동에 능能하고, 우연에 승勝하고, 아픔에 겨워하며 매양 매듭 고운 손, 수월한 안거安居에 연연한 채 한 마리 미운 오리새끼로 자신을 가두어 오지 않았는지…….

겨울바람은 겨울 나그네가 가장 먼저 듣는 법. 세모歲暮의 맑은 시간에 나는 내가 가장 먼저 깨달을 수 있는 생각에 정일精一하려고 합니다.” (p.147)

고 신영복 선생의 서화 에세이 <처음처럼>(랜덤하우스코리아. 2007)에 실린 글이다. 흐트러진 생각을 가지런히 정리하게 된다. 우리의 깊은 내면을 들여다보게 한다. 차가운 겨울날을 기꺼이 견딜 수 있는 힘을 주기도 한다.

화이트페이퍼, WHITEPAP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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