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화이트페이퍼=김재범 기자] 사실 그에 대해 잘 모른다. 아니 별 관심이 없었다. 이 간단한 두 문장에 고개를 끄덕이는 대중들은 주위를 둘러보면 의외로 많다. 물론 그가 만들어 낸 ‘사과’(애플)의 힘을 믿는 이들은 대다수다. 앞선 짧은 두 문장에 수긍했던 이들도 뒤따라 온 ‘사과의 힘’에는 더욱 힘찬 공감을 전할 것이다. 인류 역사상 가장 중요한 사과 3개를 꼽는다면 성경 속 ‘아담과 이브’의 선악과, 아이작 뉴턴에게 만유인력의 법칙을 전한 사과, 그리고 스티브 잡스의 ‘애플’을 꼽을 수 있다. 영화 ‘스티브 잡스’는 세상을 바꾼 사과의 힘을 만들어 낸 한 인간 스티브 잡스의 고뇌와 번민 그리고 아집이 만들어 낸 목표점이다. 물론 이 모든 얘기의 기본은 생전에도 사후에도 찬사와 악평을 동일하게 끌고 다닌 인간 스티브 잡스다.
스티브 잡스에 대한 얘기는 이미 다큐 형식의 ‘스티브 잡스: 미래를 읽는 천재’도 있었다. 삶의 일대기 순으로 그려낸 ‘잡스’란 영화도 공개된 바 있다.

‘스티브 잡스’는 앞선 두 편 영화와는 조금 다른 방식으로 접근한다. 영화에선 세 번의 하루가 등장한다. 각각의 하루가 연결되는 시점이 아니다. 스티브 잡스 일생에 가장 중요했던 세 번의 사건이 일어나기 전 무대 뒤의 고뇌와 번민(사실 신경질에 가깝다)이 그려진다. 1984년 매킨토시 런칭일, 1988년 스티브 잡스가 애플에서 물러난 뒤 만든 넥스트의 큐브 런칭일 그리고 애플 복귀 후 첫 작품인 1998년 아이맥 런칭일이다. 이 세 번의 하루 속에 등장하는 인물은 모두 실존 인물이다. 애플 전 CEO 존 스컬리(제프 다니엘스), 애플 공동창업자 스티브 워즈니악(세스 로건) 마케팅 담당 조안나 호프만(케이트 윈슬렛) 그리고 스티브 잡스의 아내와 딸 리사 잡스다.
세 번의 하루는 모두 런칭 행사를 앞둔 무대 뒤편에서 벌어진 인물들과 충돌이다. 이들 세 번의 하루는 보는 이들의 입장에 따라서 다르게 다가온다. 각자의 입장과 사연은 모두 존재한다. ‘스티브 잡스’ 속에선 우리가 한 번쯤은 들어봤을 인물들과 신화란 단어 외에는 달리 설명할 길이 없는 전 세계 최고 IT기업 ‘애플’의 성공 신화가 양립될 수 없는 대립 속에서 파생된 결과물이었음을 느끼게 한다.

이 모든 얘기는 현실적인 시간과 동일한 느낌을 주는 듯한 구성력으로 만들어 냈다. 보지 않고는 느낄 수 없는 형식미의 완성은 영화적 매체가 가질 수 없는 특이한 느낌이다. 흡사 연극 무대를 보는 듯하다. 속사포처럼 주고받는 인물들의 대사 전쟁과 그 인물들 사이를 휘집고 돌아다니는 카메라 워킹은 착각을 전달한다. ‘영화가 아닌 현재의 시점’으로서 관객을 홀린다. 카메라는 하나의 화면에 한 인물 이상의 시선을 두지 않는다. 거짓을 진짜로 착각하게 만드는 작용이다.
연극 무대로 치자면 첫 번째 ‘맥킨토시 런칭일’은 1막이다. 16㎜ 카메라의 거친 질감이 돋보이는 이 장면에서의 스티브 잡스는 냉혹한 야수와도 같다. 완벽주의는 거의 광기 수준이다. 주변인들은 육식동물 앞에서 선 먹잇감에 불과하다.

스티브 잡스는 여유란 단어를 허용하지 않는 인물처럼 보인다. 갈등과 충돌은 그의 열정을 불태우는 원동력으로 작용한다. 결국 모든 것을 손에 쥔 그는 먹이사슬 꼭대기 선 포식자로서의 위용을 과시하며 무대에 오른다. 독불장군을 넘어 독재자로서의 스티브 잡스는 딱 그랬다. 아래를 내려다보는 군림으로서 그는 자신의 위치를 즐기고 있었다. 스티브 잡스는 독선과 아집으로 뭉쳐진 독재자의 모습 그대로였다.
이후 시간은 몇 년 뒤로 점프한다. 자신이 만든 애플에서 쫓겨난 스티브 잡스는 복수를 다짐한다. 독재자 스티브 잡스의 자존심은 더욱 온도를 높인다. 2막의 시작이다. 화면은 오히려 톤 다운의 느낌으로 간다. 35mm 필름이 갖는 유려함이 느껴지기 시작한다. 넥스트 큐브의 론칭일은 조금 더 느슨해진 스티브 잡스의 속내를 그려내는 듯 하다. 하지만 아니다. 그는 더욱 치열해졌다. 고요 속의 폭풍처럼 말이다.

1985년 애플에서 해고되는 스티브 잡스와 그의 평생 동업자인 스티브 워즈니악 그리고 존 스컬리와의 대립은 더욱 격해졌다. 테크니컬적인 면에서 전무했던 스티브 잡스를 두고 세상은 천재라고 극찬한다. 그런 평가에서 엔지니어 워즈니악은 소외된 또 하나의 천재로서 뒤를 대신한다. 하나의 선에 머물러 있는 두 남자의 모습은 그렇게 무대 앞과 뒤의 자리를 명확하게 했다. 모든 공을 독차지하는 잡스의 폭주와 그런 잡스의 모습에서 실망과 절망을 경험한 워즈니악의 낙담. 이런 모습을 본 스컬리의 실망은 잡스의 인간됨됨이를 전한다. 그는 자신의 천재성만을 무기로 주변을 돌아보지 않는 그저 폭주하는 천재의 재능만을 탐하고 쫓는 지휘자에 불과했다.
이어 마지막 3막으로 이어진다. 애플로 돌아온 잡스는 아이맥 출시를 앞두고 있다. 잡스는 아직도 그대로다. 독단적이고 독선적이다. 그에게서 모든 것은 그렇다와 아니다 둘 중 하나다. 이번 아이맥 런칭 행사 전에도 잡스는 설전을 벌인다. 맥킨토시 런칭 전 있었던 상황과 똑같다. 워즈니악은 ‘애플2’의 기술 개발자들의 이름을 불러 달라 요구한다. 하지만 잡스는 거절한다. 워즈니악은 실패가 있었기에 지금의 성공도 있는 것이라며 설득한다. 그러나 잡스는 실패는 자랑이나 소개가 아닌 부정할 대상이라고 선을 긋는다.

기술의 진보를 느끼게 하는 3막은 디지털로 촬영됐다. 3막은 행사장을 떠나는 워즈니악의 뒷모습을 바라보다 이내 잡스의 얼굴을 비춘다. 워즈니악은 “휼륭한 재능만큼 그에 걸 맞는 인품도 갖추길 바란다”는 진심어린 조언을 한다. 하지만 끝낸 친구의 부탁을 거절한 잡스는 돌아서는 워즈니악의 모습에서 기묘한 감정의 표출을 한다. 이후 런칭 행사장 화면에는 ‘Think Different’가 뜬다. 그것이 잡스의 대답인지 워즈니악의 대답인지 그것도 아니면 감독의 대답인지는 모른다. 혹은 관객들에겐 전하는 질문인지도 말이다.
스티브 잡스는 최고와 최악이란 극단의 평가 속에서 존재하는 거의 유일한 인물이다. 그는 영화 속 대사처럼 기술력을 진보시키는 테크니컬함은 갖추지 못했었다. 하지만 전 인류가 소비하고 있는 현재의 생활을 이미 수십 년 전 예측하고 접근한 직관적인 추진력을 갖추고 있었다. 그와 동시에 자신의 천재성을 담보로 주변과의 소통에 스스로 부재를 느낀 외로운 남자였다.

영화 마지막 평생의 아픈 상처로 자리했던 딸 리사에게 먼저 다가서 손을 내민 장면. 그리고 그 이후 수많은 관중들의 박수갈채와 스포트라이트 속으로 사라진 스티브 잡스의 모습은 전율의 마지막 한 컷이다. 마치 그의 삶을 압축한 단 한 컷의 드라마처럼 말이다. 그저 스티브 잡스도 모든 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럴 수 밖에 없던 것을 알고 있는 듯했다. 개봉은 오는 21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