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화이트페이퍼=박세리 기자] 혁명은 상황을 전복시킨다는 뜻이다. 이런 현상은 인류가 발전시켜 온 음악에서도 찾을 수 있다. 한 가닥의 선율로 전쟁확산을 막은 이야기다. 음의 혁명이란 이런 일을 두고 하는 말이다.
1992년 5월 동유럽에서 일어난 절망과 희망의 순간. 사회주의 이념으로 뭉쳐 있던 유고슬라비아가 동유럽 공산주의 체제가 무너지면서 내부 분열로 치달을 때였다. ‘민족주의’의 이름으로 유고슬라비아가 여러 나라로 쪼개지면서 내전이 일어났다.
세르비아계 민병대의 폭격으로 보스니아의 중심 도시인 사라예보시민 22명이 사망하는 끔찍한 사건이 발생했다. 그런데 다음 날이었다. 첼로를 든 한 남자가 나타났다. 사라예보 오페라 교향악단에서 수석 첼리스트로 활동하던 스마일로비치였다.
그는 “내겐 첼로가 무기”라며 검은색 정장을 입고 날마다 연주를 했다. 폭격으로 무너진 사라예보의 국립도서관 잔해 위에 비스듬히 서서 홀로 첼로를 연주했다. 희생자들의 장례 연주도 맡았다. 시민들의 동요를 막기 위해 점령군은 저격수에게 그 음악가를 쏘라고 명령했다.
하지만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아무도 총을 쏘지 않았다. 군명을 거역한 저격수 덕분에 연주는 희생당한 사람 숫자인 22일 동안 계속될 수 있었다. ‘사라예보의 첼리스트’로 불리는 그가 연주한 곡, 저격 명령을 이행하지 못할 만큼 감동을 준 곡은 무엇이었을까?
이 이야기를 소개한 <사람은 왜 그림을 그리고 노래를 부르고 시를 쓸까>(낮은산.2015)에 따르면 그 곡은 알비노니의 ‘아디지오’다. 클래식 애호가들이 세상에서 가장 슬픈 음악으로 꼽는 곡이다. 이 사건의 주인공인 스마일로비치는 20년 뒤 이렇게 말한다.
“극한 상황이었지만 음악은 영혼을 위로할 수 있게 해 줬다.”
저격수들이 겨눴던 총구를 내려놓은 이유는 여기에 있었을 것이다. 그의 연주가 미디어를 통해 지구촌으로 퍼지면서 미국의 반전 가수와 비평가들이 사라예보를 방문하고 국제 여론도 평화를 촉구했다. 저자도 그의 용기 있는 연주가 전쟁이 더 확산하는 걸 막는 데 큰 역할을 했다고 평가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