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화이트페이퍼=정미경 기자] 우리는 보통 어렸을 때 어머니나 할머니로부터 옛날이야기를 들으며 문학적인 감성과 상상력을 키운다. 소설가 김영하의 할머니는 손자들에게 호랑이 얘기를 해주기보다 아예 이야기책 속에 살고 있는 사람처럼 재미난 기억을 남겨 주셨다. 따로 사시던 할머니가 잠시 그의 집에 와 계셨을 때다.
“어느 날, 어머니는 일이 있어 시내에 다녀오게 되었습니다.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어머니는 가마솥에서 뜨거운 김이 펄펄 나는 것을 발견하고는 의아하게 생각했습니다. 밥을 지을 때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궁금한 마음에 솥뚜껑을 연 어머니는 깜짝 놀라 그만 엉덩방아를 찧고 말았습니다. 솥 안에 거대한 벌집이 들어 있었던 겁니다. 벌집을 고아먹으면 몸에 좋다고 믿은 할머니는 산책을 나갔다가 나무 위 벌집을 발견하고는 그걸 떼어다가 삶고 있었던 겁니다.
하지만 도시 출신인 어머니에게 그것은 며느리를 놀래키려는 시어머니의 심술궂은 장난으로밖에는 보이지가 않았습니다. 구멍이 송송 뚫린 벌집은 소름이 돋을 만큼 흉측하게만 보였습니다.
어머니는 연탄집게로 그 벌집을 집어 밖에 내버렸고, 뒤늦게 이 사실을 안 할머니는 너무 화가 나서 당장 고향으로 내려가 버렸습니다. 그 후로 할머니는 단 한 번도 우리집을 찾지 않았고, 그대로 돌아가시고 말았습니다.” (p.123)
작가에 따르면 어머니와 할머니는 너무나 달랐다. 어머니는 그 벌집이 ‘징그럽다’고 몸을 떨었다. 반면 할머니는 ‘몸에 좋은 것 좀 먹어보겠다고 늙은이가 위험을 무릅쓰고 떼 온 벌집을 야박한 며느리가 내버렸다’고 비난했다. 이 사건은 어린 손자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할머니가 손자들에게 호랑이 얘기나 해주는 사람이기 보다 아예 이야기책 속에 살고 있는 마녀에 가까워 보였던 것.
그에게 할머니는 신화의 시대에 속한 사람이었다. 그런 할머니의 기질은 그에게 발현되었다. 그에게 있어 소설이라는 것은 막대기 하나 달랑 들고 숲으로 들어가는 사람들의 세계다. 숲에서 벌집을 발견하고 군침을 흘리는 사람들의 세계다. 그 벌집에 신묘한 약효가 있다고 믿고 그것을 집으로 가져와 삶아먹는 사람들의 세계다. 소설 속의 인물들은 언제나 눈에 보이는 것 너머의 세상을 살아간다.
소설가 김영하의 산문집 <말하다>(문학동네. 2015)에 나오는 내용이다. 그는 2011년 멕시코 과달라하라 국제도서전에서 ‘할머니의 벌집’이라는 제목으로 이 강연을 들려줬다. 한 편의 소설처럼 흥미롭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