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자가 연인을 죽이고 권총 자살한 까닭
왕자가 연인을 죽이고 권총 자살한 까닭
  • 정미경 기자
  • 승인 2015.12.22 1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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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의 지식] <열아홉번의 사랑> 윤단우 글 / 로제타

[화이트페이퍼=정미경 기자] 1949년 오스트리아 빈 경찰이 60년 전에 발생한 사건에 대한 공식 보고서 ‘마이얼링의 진상Das Mayerling-Original’을 발표했다. 사건이란 1889년 오스트리아 남부에 위치한 궁정 사냥터 마이얼링에서 두 구의 시신이 발견되었던 것. 죽은 사람 중 한 명은 제국의 황위를 물려받을 루돌프 황태자였다. 황실 후계자가 연인을 죽이고 자신도 권총으로 자살한 이 사건은 제국 역사상 가장 비극적이고 가장 미스터리한 죽음이었다.

사랑에 관한 발레 에세이 <열아홉번의 사랑>(로제타. 2015)은 다음과 같이 전한다.

이 치정극은 음모론에 바탕을 둔 소문들이 끊이지 않았다. 황실의 거듭되는 근친혼으로 인한 정신이상설이나 정부를 수시로 갈아치우며 방탕한 생활을 했던 황태자의 변태성욕설이 꾸준히 제기됐다. 또한 벨기에 스테파니 공주와의 애정 없는 결혼생활이나 정치적으로 다른 노선을 주장했던 요제프 황제와의 대립, 황위 계승권자로서의 중압감과 무력감 등 소문은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이 사건 외에도 세기말의 빈에서는 자살이 일종의 유행병처럼 번져가고 있었다.

“19세기에 오스트리아는 유럽에서 가장 자살율이 높은 나라였다. 극작가 페르디난트 라이문트, 소설가 아달베르트 슈티프터, 시인 게오르크 트라클, 사회학자 루트비히 굼플로비치, 철학자 오토 바이닝거, 화가 리하르트 게르스틀, 물리학자 루트비히 볼츠만 등 오스트리아 지식인들의 자살행렬은 끝날 줄 모르고 이어졌다.

오스트리아 사람들에게 죽음에 대한 애정은 각별한 것이었다. 프리메이슨 회원들은 죽음이 삶의 일부라는 신념을 고수했고, 죽음에 대한 숭배는 복잡한 장례의식으로 나타났다. (중략) 향락주의에 빠진 중산층 젊은이들에게 죽음은 무료함으로부터 그들을 구원해줄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이기도 했다. 오스트리아 사람들에게 죽음은 매혹의 또 다른 이름이었다." (p.293~p.294)

이후 루돌프 황태자의 죽음과 관련해서 1983년에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마지막 황후였던 지타 황후가 또다시 인터뷰를 했다. 그의 죽음은 자살이 아니라 암살이라는 충격적인 사실을 100여 년 만에 밝힌 것이다. 불행한 정략결혼과 아름다운 열일곱 살 소녀와의 죽음은 영화와 발레 ‘마이얼링’으로도 만들어졌다. 비극이 아름다운 예술작품으로 승화된 경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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