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속의 지식] 이어령의 촌철살인 ‘나나의 비극’
[책속의 지식] 이어령의 촌철살인 ‘나나의 비극’
  • 정미경 기자
  • 승인 2015.11.09 21:4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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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이트페이퍼=정미경 기자] “언제 밥이나 한번 먹자, 차나 한잔 하자, 영화나 한편 볼까?”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흔히 하는 말이다. 이 말이 공수표가 될 확률이 높다는 것은 말을 하는 '나'도 알고 듣고 있는 '너'도 안다.

이어령 선생은 <읽고 싶은 이어령>(여백. 2014)에서 우리가 이렇게 ‘나’ 자를 습관적으로 쓰는 현상을 분석했다. 그의 글은 누구나 알고 있는 평범한 사실을 뒤집어서 새로운 눈으로 바라보게 만드는 힘이 있다. ‘나나의 비극’이라는 글에서 들려주는 일상에서 찾아낸 그의 탁월한 이야기를 들어보자.

“‘나나의 비극’이라고 하면 에밀 졸라의 소설 이야기인줄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여기서 말하는 나나는 순수한 우리말로, 우리가 말끝마다 붙여 쓰기를 좋아하는 말이다. (중략)

“차나 한잔합시다.”, “바둑이나 한 판 둘까?”, “집에나 들어가서 잠이나 자자.”

끝없이 ‘나’, ‘나’가 폭발한다. 어째서 “차를 마십시다”, “바둑을 둡시다”라고 말하지 않고 그런 습관이 들었을까? 별 뜻 없이 무심히 말하는 소리지만, 그것을 분석해보면 우리 잠재의식 속에 그만큼 생활의 불만이 가득히 괴어 있다는 증거다.

“……나”는 소극적인 선택이며 도피적인 언사인 것이다. “집에나 가서 잠이나 잔다”는 것은 다른 데에 가봐야 별 수 없다는 뜻이다. 또 집에 들어가서도 신통한 일이 없으니 잠을 자는 것이 차라리 속 편하다는 불만의 토로다. “집에 가서 참을 자야겠다”는 말과는 그 뉘앙스가 아주 다르다. 결국 “……나”란 말은 소극적인 긍정, 마지못해 하는 행동, 그리고 꿩 아니면 닭이라는 식의 사고를 상징하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말끝마다 ‘나’를 연발하는 것을 욕구 불만을 향해 쏘아 붙이는 기총사격의 소리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따분하고 시시하고 꼴사나운 일들이 많기 때문에 어느 덧 ‘나’는 우리의 한 비극적인 관용사가 되어버린 것이다.

어떻게 하면 ‘나나의 비극’을 극복할 수 있을까? 어려운 일이기는 하나, 자기에게 주어진 것, 소유하고 있는 것이 시원찮은 것이라 해도 그에 전념을 다하는 성실성을 갖는 일이다

자기비하나 자기의 경멸이 사라질 때 ‘나’자의 관용사도 사라지게 되는 것이다. 농부들이 “땅이나 파면서 살아간다”고 하는 것은 자기 직업을 달갑지 않게 생각하는 마음을 가졌기 때문이다.

순간 순간, 주어진 일을 불사르려는 열정, 티끌과 먼지라도 사랑하려는 의지, 이런 능동적인 행동으로 인생을 살 때, 비로소 ‘나나’의 비국에서 해방된다. 100퍼센트의 노력, 100퍼센트의 자의(自意)를 다 바치는 사람은 ‘나’ 자를 쓰지 않는다. 우리 말투에서 ‘나나’의 관습어가 가시는 날, 우리에겐 정말 충족된 생을 살 수 있는 그날이 올 것이다.” (p.194~p.1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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