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도현, 나는 시를 안 써도 시인
안도현, 나는 시를 안 써도 시인
  • 박세리 기자
  • 승인 2015.10.06 14:4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안도현의<잡문>

[화이트페이퍼=북데일리] “바람이 분다. 바람이 분다. 바람이 좋아서 나는 시를 안 써도 시인이다.” -안도현

<잡문>(이야기가있는집.2015)에 실린 안도현 시인의 아릿한 말이다. 시를 안 써도 시인이라는 대목은 그간의 사정을 아는 독자들에게 울컥한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30년이 넘도록 시인이라는 말을 듣고 살았던 안도현 시인은 지난 대선 이후 절필을 선언했다. 그 후 휴대전화마저 쓰지 않는 탓에 싫은 소리를 듣기도 한다며 작가의 말을 통해 이렇게 전했다.

그것이 세계와의 일방적인 단절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소통하는 것을 근원적으로 거부하지 않는다면 소통하는 통로는 얼마든지, 곳곳에 있다. 궁즉통(窮則通)이라는 말을 나는 믿는다. (궁즉통 窮則通- 매우 궁한 처지에 이르면 도리어 펴나갈 방법이 생긴다는 뜻)

책은 2012년부터 작가가 트위터에 일기를 새롭게 쓰는 기분으로, 시를 쓰지 않고 지내는 떫은 시간에 시를 쓰는 마음으로 쓴 글을 추려 모은 것이다. 140자 안쪽으로 글을 써야 하는 트위터의 특성을 생각할 때 어쩌면 이는 시인에게 딱 맞는 선택이었을 것이다. 그만큼 책에 담긴 글들은 가벼이 치부하기에 주는 울림이 일반 글들과 다르다.

‘사랑에 빠진 후배가 오늘밤 연인에게 마지막 문자를 어떻게 보내면 좋겠냐고 물었다. 나는 이렇게 말했다. 바람이 차요, 잘자요.’

‘낙엽을 보며 배우는 것 한 가지. 일생 동안 나는 어떻게 물들어가야 하는 것. 떠날 때 보면 안다.’

‘저녁은 안으로 나를 접어 넣어야 하는 시간이다. 나무들이 그렇게 하는 이야기를 들었다.’

‘저녁이 되니까 바람은 내 겨드랑이를 만지고 나는 바람의 서늘한 머리카락을 만진다.’

‘아무것도 아니라고 여겼던 시간들이 삶을 지배하고 있다는 걸 느낄 때가 있다. 어릴 적 외갓집 마당가에 피어 있던 달리아를 오래 들여다보던 시간이 내게는 그렇다. 그 시간들이 여름이면 내 혈관 속을 쿵쾅거리며 뛰어노는 것이다.’ -본문 중에서

책제목과 같은 잡문이다. 잡문은 글의 길이도 짧고 호흡도 짧다. 그만큼 공감되는 글일수록 주는 여운은 길고 깊다. 이것이 잡문만의 매력이다. 시에서 벗어나 삶과 주변의 소소한 것들을 살피며 담담한 어조로 소통하는 안도현을 만나보자.

화이트페이퍼, WHITEPAPER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