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가 되려면? 써, 쓰면 돼!
소설가가 되려면? 써, 쓰면 돼!
  • 북데일리
  • 승인 2007.05.07 0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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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데일리] 지금껏 읽었던 글쓰기론 중에서 가장 감명 깊었던 것은 마루야마 겐지의 <소설가의 각오>다. 문학과 소설을 대하는 저자의 태도는 숨이 막힐 정도로 준엄하고 금욕적이었다. 그의 날카로운 문장들은 게으르고 나약한 문학도 하나쯤 단칼에 쓰러트리고도 남는다.

<뼛속까지 내려가서 써라>(한문화. 2000)는 그와 다르지만, 그에 못지않은 힘을 지닌 책이다. 책은 마루야마 겐지식 글쓰기만이 문학가의 정도(正道)는 아님을 일깨워준다. 쓰기에 임할 때는 무엇보다 긴장을 풀고 자신감을 가질 것. 이것이 ‘뼛속 글쓰기론’의 핵심이다. 글 속에 자기를 놓아줄 때 가장 자연스럽고 글쓴이의 본질에 가까우며 세상에 드러나지 않은 진실을 담은 작품이 탄생한다고.

처음부터 끝까지, 저자는 오직 쓰라고 한다. 쓰라. 거침없이 쓰라. 말하는 대신 쓰라. 손을 쉬게 하지 말라. 너무 많이 생각하지 말라. 편집하려 하지 말라. 지나친 자기부정에서 벗어나라. 당신만 외롭다는 생각에서 눈을 떠 당신처럼 외로울 다른 존재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라. 그리하여 자기 안에 갇히는 글이 아닌 세상 어떤 곳으로든 나아가는 글을 쓰라!

책장을 넘기며 뜨끔했던 순간이 여러 번이다. 문법과 문체의 노예였던 나, 좀처럼 미치지 못했던 나, 말도 안 되는 자기도취나 자기연민에는 곧잘 빠졌던 나, 정작 손은 외롭게 하면서 혀를 괴롭히기에 바빴던 나. 모든 나를 책에서 보았다. 그 벗고 거울과 마주한 듯한 심정이란. 그러나 숨고 싶지는 않았다. 솟아오르고 싶었다. 형편없는 과거의 편린들을 그러모아 돋움으로 받치고, 그 위에 똑바로 서서 있는 힘껏 발을 굴러 가능한 한 높이 떠오르고 싶었다.

저자는 아무것도 강요하지 않는다. 꾸짖지도 않는다. 다만 ‘글’이라는 강으로 인도할 뿐이다. 그리하여 작가 지망생의 감춰져 있던, 게으르고 겁 많고 부끄럼타는 실체와 맞닥뜨리게 한다. 바로 다음 순간, 전폭적인 신뢰와 격려를 보냄으로써 나태함, 두려움, 부끄러움 같은 장애물과 대적케 한다. 유하면서도 열렬한 방식이다.

그의 언어는 폭이 넓은 강과 같아서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무한한 에너지를 싣고 유유히 흐른다. 거기에 빠진 독자는 이내 물결을 탄 채 헤엄치고 싶어질 것이다. 바닥에 가라앉고 싶다는 충동 따위를 느낄 틈은 없을 것이다. 그는 분명 두 팔을 내젓고 물장구질을 하며 간절히 외치게 되리라. 어푸어푸, 나는 헤엄쳐야 해. 반드시 글을 써야만 해!

“달리기와 마찬가지로 글도 많이 쓰면 쓸수록 실력이 향상된다. 장거리 육상선수들이 어느 시점부터 달리기가 힘들고 지겨워져서 내딛는 한 발 한 발에 저항심을 가질 수 있다. 하지만 달리는 행위는 결코 멈추지 않는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원하든 원하지 않든 연습을 하게 된다. 가만히 앉아서 눈부신 영감이 솟아날 때와 계속 달리고 싶게 만드는 깊은 열망이 찾아올 때를 기다리지 않는다. 더구나 열망은 자신이 해야 할 일을 게을리 하거나 회피하는 사람에게 절대 저절로 생기지 않는다.”

내 삶에서 가장 행복했던 시간 중 하나는 재작년 겨울이다. 아주 더디게 완성한 원고를 들고 한 신문사의 문화부를 찾아갔던 날. 아무런 기대 없이 저지른 일이었다. 그저 그것이 내 글쓰기에 대한 최선의 마무리라고 믿었을 뿐. 문화부 안은 훈훈했다. 언젠가 폭발할 것 같은 열기가 잠재해 있었다. 원고를 내고 신문사에서 나오자마자 칼바람이 뼛속까지 파고들었다. 그 차갑고 저돌적인 기세에 웃음이 나왔다. 중요한 건 쓰는 거라고, 나는 돌아오는 길 내내 되뇌었다. 바보여, 지금은 왜 그 때만큼의 행복을 누리지 않는가.

쓰고 싶은데, 써야 하는데 앞이 안 보이고 손마저 결박당한 느낌이 들 때가 있다. 지금이 그런 순간이라고 말하는 당신에게 이 책 <뼛속까지 내려가서 써라>를 권한다. 주저하지 말고 읽기를. 마루야마 겐지의 책도 좋다. 그러나 한꺼번에 보지 말고 바보 같은 순간이 찾아올 때마다 나누어 읽기를 바란다. 자, 고무된 사람들은 다시 시작해야 한다. 아니, 매일 시작해야 한다. 종이 위에서 달려야 한다. 뼛속까지 내려가는 줄도 모르게.

[고은경 시민기자 rad83@naver.com]

화이트페이퍼, WHITEPAP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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